죽음 기다리며 ‘행복’을 찾다?

영적돌봄가 능인 스님과 의료진 및 자원봉사자가 환자를 돌보고 있는 모습. 죽음을 앞둔 환자지만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돌보고 있다.

24시간 임종의 순간
마지막 죽음의 순간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처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도 짐작만 가능할 뿐 정확한 시간은 알 수가 없다. 방금 전 눈을 뜨고 바라보았던 환자가 새벽에 갑자기 죽음을 마주하듯 영적돌봄가 스님들의 일상은 항시 죽음을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새벽이든 어두운 밤이든 죽음이 선택한 시간에 환자의 임종을 마중하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야 했다. 

하루를 알아보고자 방문했던 영적돌봄가 스님들의 일상은 그래서 어떤 의미로 보면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휴가는 말할 것도 없고 잠자는 것 조차 반납한지 오래다. 
그래도 들어본 스님들의 첫 하루 시작은 새벽 4시 쯤이라고 했다. 정토마을자재요양병원 바로 앞에 위치한 기숙사가 스님들의 처소이다. 하숙집처럼 잠만 자는 곳이라 표현했다. 일어나자마자 공양을 하고 나면 도시락 두 개를 쌌다. 점심과 저녁 공양을 하기 위해 기숙사를 찾기엔 멀다고 했다. 고작 100미터 가량 되어 보이는 거리지만 영적 돌봄가 능인 스님은 마음의 거리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기숙사를 찾아 공양을 먹으면 작게라도 일어나는 게으른 마음을 경계하기 위해서 라고 설명했다. 

정식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다. 그 전에 능인 스님은 하루 자신을 지켜줄 가장 중요한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바로 법문을 듣는 것이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며 수행하는 시간을 빼먹지 않는다. 영적돌봄의 삶은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하기에 부처님이 주는 가르침으로 자신을 무장했다. 

영적돌봄은 24시간 지속
새벽 4시 출근해 대기해
죽음 인식 변화가 ‘행복’

손가락이 하나 없는 장애 환자의 손을 잡고 있는 자원봉사자의 손.

그렇게 찾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우선 오전 8시에 출근하는 의료진을 만나 호스피스 환자들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 동안 수십 차례 달라지는 환자들의 감정선을 파악하며 우울감이 있는 환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환자를 위해 구체적인 해결안을 연구했다. 우선 우울감이 높은 환자가 있으면 환자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동안 찍어 둔 사진과 영상으로 동영상을 편집해 환자가 직접 가족을 위해 남길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환자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사연에 맞는 정보를 수집하고 스님은 독학으로 익힌 영상 제작에 나섰다.  

이벤트 제작을 위해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능인 스님은 업체에 맡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환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풀어내기 위해서이다. 

능인 스님은 “환자 가족들에게 적절한 언어로 환자의 마음을 전하는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인데, 일반 업체에 맡기면 정확한 의도로 만들 수가 없었다”며 “또 갑자기 발생하는 임종에 맞춰 그 전문업자들을 불러내기도 힘든 여건이라 직접 이벤트를 준비하고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를 위한 이벤트 준비를 마치면 의료진과 직원 상담도 진행했다. 죽음을 마주하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의료진을 향해 따뜻한 돌봄은 이어졌다. 호스피스 환자들은 말을 잘 전달 할 수 없어도 후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이 예민한 상태이기에 능인 스님은 ‘마음이 전달되는 곳’이라 고했다. 손길 하나, 목소리 톤 하나에도 마음을 알아차리는 환자들이란 설명이다. 에너지가 소진되어 있는 의료진과 봉사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갈 때가 있어 그들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도록 돕는 것도 스님들의 몫이었다.  
환자와 의료진들 돌봄에 이어 환자 가족들을 위한 돌봄과 상담도 이어졌다. 영적돌봄가 가운데 능행 스님(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장)은 “환자들이 죽어 가면 그 가족들도 죽음을 마주 한다”며 “환자와 같은 수준의 고통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은 고통과 불안에 완전히 압도당하며 두려움에 놓이게 되고, 가족들도 마찬가지의 고통 속에 빠지게 되고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마저도 쉽게 에너지가 소진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모두가 영적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영적돌봄가 능인 스님이 폐암 환자와 생을 회고하며 의미있는 삶이었다며 격려하는 모습.

죽어가는 사람의 존엄
12월 19일 호스피스 병동을 찾은 기자는 방문하자마자 임종을 맞는 가족과 환자를 만났다. 침대에 누워 영적돌봄가 능행 스님의 말씀에 따라 임종을 맞는 할머니의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가족들도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임종하는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능행 스님은 환자에게 “정말 열심히 잘 살았다”며 다독거렸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임종 전에 병원에서는 미리 영적돌봄가 스님들과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임종 전에 다리 끝에서 올라오는 청색증과 물을 한모금도 마실 수 없는 장폐색 등 여러 임종 신호를 파악한 의료진들은 차분히 죽음을 준비 했다. 

가족들이 달려오면 영적돌봄가 스님들이 가족들을 먼저 만났다. 환자의 상황을 설명해주며 감정을 한번 정리할 수 있도록 돕고 환자를 마주하도록 했다. 한번 마음을 차분하게 한 가족들은 고요하게 임종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못 다한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8시간을 머물게 했다. 바로 시신을 옮기지 않도록 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편의대로 급하게 장례를 치르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환자의 죽음이 존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능행 스님은 “죽음이라는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마음을 다뤄야 하기에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람을 영적돌봄가라고 한다”라고 정의 했다.   
이렇게 중요한 불교계 영적돌봄가 스님은 10명뿐이다. 그래서 인재를 더 양성하기 위해 영적돌봄가 스님들은 교육도 담당한다. 세미나 및 교육 등을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영적돌봄가를 양성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갠다. 

능행 스님은 2020년 새로운 한해를 마주하는 독자들에게 ‘죽음’을 기억해 ‘행복한 삶’을 알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년 한 해 동안은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루에 한 번씩 꼭 사유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삶의 질이 좋아지고 행복해 집니다” 

자원봉사자가 아로마테라피 요법으로 환자의 발을 마사지하고 있다. 
한국불교호스피스 협회장 능행 스님(오른쪽)이 임종하신 스님을 배웅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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