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시간,?누군가를 위한?자비행은 펼쳐진다

을지로입구역 바깥에는 단속으로 인해 쫒겨난 노숙인들이 영하의 날씨에도 침낭 하나에 의지에 새벽잠을 자고 있었다. 간식봉지를 건네던 탄경 스님이 한 노숙인을 깨워 겨울옷을 주며 ‘몸 좀 챙기라’며 말을 건네고 있다. 이 노숙인은 새해 소원이 ‘스님의 건강’이라며 밝게 웃었다.노덕현 기자을지로입구역 바깥에는 단속으로 인해 쫒겨난 노숙인들이 영하의 날씨에도 침낭 하나에 의지에 새벽잠을 자고 있었다. 간식봉지를 건네던 탄경 스님이 한 노숙인을 깨워 겨울옷을 주며 ‘몸 좀 챙기라’며 말을 건네고 있다. 이 노숙인은 새해 소원이 ‘스님의 건강’이라며 밝게 웃었다.

자비보살들의 하루는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에 시작된다. 새해 맞이 새벽 취재를 위해 서울 종로에 위치한 사단법인 다나의 작은 법당에 등을 대고 누웠다. 다나의 작은 법당은 쌀과 물, 라면 등의 물품으로 법당인지 창고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작은 사무실에는 봉사자로 동참한 대학생 2명이 쪽잠을 자고 있었다. 매주 토요일 새벽 3시면 시작되는 노숙인 보살핌을 위해서다.

잠시 몸을 뒤척이고 시계를 보자 어느새 새벽 2시 40분이다. 다나 대표인 탄경 스님은 이미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스님이 먼저 주섬주섬 작은 손수레에 준비한 음식을 싣자 작은 방에 있던 학생들이 나와 스님을 돕는다. 하얀 봉지 안에는 컵라면 한 개와 주스, 초코파이 100개가 들어있다.

한파가 몰아친 구랍 21일 토요일 새벽 3시, 거리에서 잠시 기다리니 멀리서 온 이들이 합류했다. 네팔 이주민법당에 있는 네팔인 스님과 네팔인 자원봉사자, 그리고 진해에서 올라온 해군 출신 정의정 씨다. 탄경 스님을 필두로 6명의 불자들은 카트 2대에 물품을 나눠 담아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새해 거리로 나섰다.

라면·주스 등 봉지 담아
매주 토요일 노숙인 전달
뜨끈한 국물 보시가 소원

스님의 작은 법당은 노숙인들을 위한 물품으로 창고인지 법당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스님은 기거하며 노숙인들을 돕는다.

스님의 노숙인 먹거리 배달은 2016년 5월 시작됐다. 스님이 2005년 파키스탄 지진 때 현지에서 봉사하며 나눔의 기쁨을 느끼면서 부터다. 이후 네팔이주노동자 공동체를 돕고 진해 대광사에서 주지로 있을 때의 인연으로 오늘의 일행이 모였다.

이날 새벽 서울의 체감 온도는 영하 10도. 여느 때 같았으면 술자리를 파한 후 택시 잡는 이들로 붐볐겠지만 강추위에 광화문 일대는 연말임에도 사람 한명 볼 수 없이 조용했다.

일행은 먼저 조계사 인근 오피스텔에서 출발해 광화문역 지하로 향했다. 매주 진행하는 만큼 손수레를 끄는 모습이 매우 익숙해 보였다. 광화문 우체국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이미 깨어있는 노숙인 2명이 일행을 반겼다. 스님과 간단한 안부인사를 건넨 이들은 박스를 걷어 24시간 ATM부스 안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대학생 봉사자들이 스님을 도와 손수레에 짐을 싣고 있다.

“지금 만난 분은 그래도 깨끗한 분이에요. 머, 이른바 자기관리를 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죠.”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광화문 지하도에 도착하자 종이상자 10여 개가 눈길을 끌었다. 노숙인들이 바람을 피하기 위해 만든 작은 안식처다. 행여나 잠이나 깰까 스님과 봉사자들은 그들의 발밑에 먹거리 봉지를 조용히 놓았다.

“받는 분들도 부끄러움이 있을 수 있잖아요. 모르게 갖다 주는게 제일 좋아요. 괜히 소란스럽게 하면 이분들 주무시는데 방해되니 그만 얼른 갑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에 이들이 깰까 조심스러워지는 찰나 스님이 길을 재촉했다. 광화문역 지하를 거쳐 일행은 다시 종각역으로 향했다.

네팔인 봉사자와 정의정 씨가 스님을 도와 보시행을 펼치고 있다.

종각역 입구에는 스님 일행을 기다리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바로 신문배달원들이다. 기다렸던 이들은 스님을 만나 간식 봉지를 받는다. 사람이 없이 쌓인 신문더미 위에도 간식 봉지를 놓는다.

종각역을 거처 을지로입구역으로 일행은 이동했다. 을지로입구역에 가자 많은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스님은 “아마 단속이 떠서 지하철역에서 쫓겨난 모양”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이들은 봄여름가을에 벌어서 겨울에는 쪽방촌이라도 찾아서 들어간다. 겨울에 이렇게 지하철역 등에 있는 분들은 상황이 매우 어려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다른 곳과 다르게 자고 있는 한 노숙인을 깨웠다. 오랜 인연이어서인지 그 노숙인은 스님을 보자마자 웃었다. 스님이 손수레에서 꺼낸 것은 두꺼운 겨울옷. 전에 부탁한 옷이라고 말한 스님은 “어디다 팔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며 길을 재촉했다. 스님의 등을 향해 노숙인은 “스님, 새해에도 건강하세요”라고 말했다.

이날 먹거리 배달은 남인사동 마당에서 끝이 났다. 인사동 마당에서 일행은 테이블을 폈다. 손수레에 싣고 온 쌀과 칫솔 등 생필품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청소노동자를 비롯해 폐지를 줍는 노숙인들 등이 모여 저마다 필요한 것들을 가져갔다.

스님은 “처음에 술취한 노숙인에게 ‘조심하시라’고 하자 들려온 말은 ‘당신이나 잘해’라는 말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도 한답니다”고 말했다.

LIG넥스원에 근무 중인 정의정 씨는 해군 제대 후에 잠시 노숙을 했다. 정씨는 “노숙 기간 스님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의 경험으로 노숙인 보살핌 봉사를 하다가 이제는 아예 정이 들어버렸다”고 털어놨다.

스님의 새해 꿈은 작은 국밥집을 여는 것이다.

“노숙인분들이 아무 때나 와서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아닌 뜨끈한 국밥을 대접하고 싶어요. 교구본사에서 포교국장을 할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주변 어려운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할 때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요?”

 

종각역 노숙인 발밑에 놓은 간식 봉지.
남인사마당에서 쌀과 칫솔 등을 노숙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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