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인생응원가

정찬주 지음 / 다연 펴냄 / 1만 5천원

이 책은 법정 스님의 재가제자 정찬주 작가가 2020년 입적 10주기를 맞아 스님을 추모하며 당신의 말씀과 생전 일화를 암자 같은 저자의 남도산중 산방에서 담백하게 담아낸 인생 에세이이자 명상록이다.

이제 인생의 향기 은은한 법정 스님의 말씀과 침묵을 통해 명상하며 맑고 향기로운 차를 음미하듯 ‘다연(茶宴)’ 같은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법정스님 ‘말과 침묵’ 통해 명상 속 초대

마음 티끌 쓸어준 풍경소리 같은 명상록

그동안 발간하신 스님의 산문집 중 스님의 사상이 드러난 구절들만 뽑아 책을 한 권 만들어보겠습니다.”

이는 법정 스님의 재가제자 정찬주 작가가 샘터사 편집자 시절, 길상사 행지실에서 차담 중에 스님의 동의 아래 다짐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회오리 바람처럼 거칠게 지나갔고, 정 작가는 끝내 스님 책을 만들어 드리지 못한 채 스님을 먼 길로 떠나 보냈다.

그리고 또 10여 년 세월이 전생의 시간처럼 아득히 멀어진 지금, 2020년 3월 11일 입적 10주기를 즈음해 그날의 말씀을 조심스럽게 실현했다.

사실, 법정 스님에 관한 여러 권의 인연 이야기, 자기계발서는 스님의 글과 말씀을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다루며 독자들을 명언쯤의 지식 대상으로 접근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생전에 ‘좋은 말에서 해방되기’를 원한 스님은 “내 책을 징검다리로 삼아 침묵하면서 지혜를 얻어라. 왜 좋은 말만 좇느냐” 하셨던 만큼 이 책은 그 뜻에 걸맞은 진실한 명상의 시간을, 스님의 참뜻을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의 중압감과 물욕으로 말미암은 상실감에 허덕이며 고단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위안과 더불어 진정한 행복의 길을 밝혀줄 것이다. 이 책으로 법정스님을 다시 만나 스님의 사상을 음미하며 다시금 신산한 삶을 사는 데 힘을 내보자. 그래서 ‘법정스님 인생응원가’다.

이 책의 핵심은 작가가 연필로 표시하거나 메모해 두었던 스님의 글 혹은 말씀 구절들이다. 작가 자신에게 명상의 주제와 가르침이 되었을 뿐 애석하게도 스님을 흠모하는 사람들과 공유할 기회를 잃어버린 만큼, 작가는 오랜 숙고의 시간을 들여 글 형식을 자신의 방식대로 하여 독자들과 함께할 명상록을 집필했다.

‘명상, 스님의 공감언어’ ‘명상, 스님의 공감법어’ ‘명상, 스님의 명동성당 특별강론’ 등 총 3부로 구성했는데, 이 책의 주요 구성은 ‘마중물 생각’ ‘스님의 말씀과 침묵’ ‘갈무리 생각’으로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취했다. ‘마중물 생각’은 스님의 가르침을 청하는 청법(請法)의 글이라는 의미에서, ‘스님의 말씀과 침묵’은 스님의 가르침은 물론 그 너머 스님의 침묵까지 헤아리라는 뜻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갈무리 생각’은 스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연상해낸 작가 상념이나 단상, 작가 삶의 흔적을 명상한 글이자 작가의 고백이다.

특별히 책 표지에 공개된 법정 스님의 흑백사진은 불일암 덕조 스님이 소장한 것인데, 50대 후반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 사진이다. 스님의 선의지와 깐깐한 지성이 미소 속에 묻어 있는데 영락없는 평소 얼굴인 것이다. 이제 법정 스님 입적 10주기를 즈음하여, 다시금 스님을 추억하고 그 말씀으로 명상하며 이 세상과 내 인생을 잠잠히 들여다보자.

책 속의 밑줄 긋기

“스님께서는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주시면서 ‘저잣거리에 살되 물들지 말라’며 짧은 법문을 해주셨다. 이후 나의 법명은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됐다. 산중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인데 가끔씩 돌아가신 스님의 말씀이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스님의 말씀은 깊은 산의 메아리처럼 울림이 크다. 저물녘에 눕는 산 그림자같이 여운이 길다. 산이 품고 있는 오래된 침묵에 응답하는 메아리 같다. 나는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침묵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빛을 잃어가는 내 영혼이 시나브로 맑게 닦이는 듯하다.”

“가난에 덕(德)이 있다니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다! 풍요의 반대인 결핍의 가치라고나 할까. 가난의 덕을 가난이 주는 혜택이라고 바꾸어보니 가난과 동거하고 싶어진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열린 눈’이란 ‘본래의 눈’일 것이다. 우리는 본래의 눈에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의 색안경을 끼고 사니까 말이다. 잔이 비어 있는 것은 채우기 위해서이다. 버리고 떠나기도 마찬가지. 그러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새로운 삶의 출발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저자 정찬주 작가는?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상명여대부속여고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 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 스님에게서 받은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마음에 품고서,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2002년부터 자연을 스승 삼아 벗 삼아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암자로 가는 길〉(전 3권)을 비롯해 이 땅에 수행자가 존재하는 의미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수십 권의 저서를 펴냈다. 장편소설로는 〈이순신의 7년〉(전 7권) 〈천강에 비친 달〉 등이 있고, 산문집 〈법정스님의 뒷모습〉 등이 있다. 또한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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