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삼중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모두 사형제 폐지에 많은 노력을 한 종교인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에 드신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아마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누구보다 애통해 하던 이들은 전국 교도소 사형수들일 것이다. 김 추기경이 그동안 사형 집행을 막아온 측면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선종 당시 대다수 언론은 추모 행렬을 조명하며 ‘김수환 신드롬’ ‘명동의 기적’이라 표현하며 그의 숭고한 가르침과 못다 이룬 큰 뜻을 조명했다. 그러나 김 추기경이 생애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 쏟았던 한 가지 주제는 크게 조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사형 집행 반대와 사형제 폐지다. 김 추기경이 평생 낮은 데로 임한 곳은 달동네 등 소외된 이웃만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 안구까지 기증하며 생명 존중과 사랑을 실천했던 그의 생전 행선지 가운데는 사형수들이 수감된 교도소가 포함돼 있다.

구상 시인의 소개로 첫 인연돼
외국인 사형수 함께 살려내기도
‘사실상 사형 폐지국’ 이뤄내다

김 추기경은 1993년 평화방송의 신년 특별대담을 통해서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 여의도 질주범으로 인해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그 범인을 용서한다는데 왜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꼭 집행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의도 차량 질주범은 1997년 사형이 집행됐다.

생전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서울구치소를 자주 방문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 전 대규모 사형을 집행하자 김 추기경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법무부와 청와대를 오가며 줄기차게 사형 집행과 사형제도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호소했다. 1999년 7월2일, 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신부의 안내로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처음으로 사형수들을 집단 면담한 김 추기경은 이어 2001년 10월 26일에도 서울구치소 사형수들을 찾아가 미사를 집전했다. 김 추기경은 이 자리에서 법무부 교정국 간부들을 상대로 이렇게 말했다.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의 찬반 논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이때 생명 존중 사상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면 사형 제도를 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추기경의 사형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범종교적이었다. 21세기는 ‘생명의 문화’가 세상을 주도해야 한다고 늘 설파한 그는 2000년에 불교·개신교계 원로 지도자들과 연대해 ‘사형폐지 촉구 3대 종단 공동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이후 김 추기경은 사형 집행을 중지하게 하고 이를 통한 ‘사실상 사형 폐지국’을 이끌어내는 데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사형제를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팽팽하다가도 굵직한 흉악범 사건이 터지면 분노한 여론이 ‘모든 사형수들에 대한 즉각 사형 집행’ 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현실을 늘 안타까워했다. 이 과정에서 김 추기경은 천주교 서울 대교구 산하 사회교정사목위원회를 통해 사형수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 가족을 보듬는 데도 힘썼다.

1990년대 중반 서울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 사건으로 피해자를 입은 유가족 중에는 어린 손자를 잃은 서윤범 할머니가 있었다. 천주교의 주선으로 할머니는 가해자인 사형수를 만난 뒤 그가 가난하고 냉대받는 사회 환경에서 자라나 결국 세상에 대한 분노를 그런 끔찍한 방법으로 표출했다는 것을 알고 사형수를 양아들로 삼았다. 김추기경은 서 할머니의 사례를 ‘진정한 용서’로 보고 사형 집행 중지를 요청했지만 당시 정부는 묵살했다. 범인이 사형집행 당한 뒤에도 피해자인 서 할머니는 매년 사형수 기일이면 연미사를 올리는 방법으로 ‘거룩한 사랑’을 실천해 큰 감동을 일으켰다.

사형 폐지를 주창하면서도 이처럼 사형수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김 추기경은 2006년부터 교구 내에 ‘피해자 모임’을 만들도록 했다. 사형수에게 가족을 잃고 숨죽여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문 심리치료 상담과 후원을 받게도 했다. 사형수 피해자 모임을 접견한 김수환 추기경은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여러분께 감사하다”라는 말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끔찍한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에게 정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이렇다 할 치유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 추기경이 지원한 이 모임은 ‘죽은 이와 제대로 이별하는 연습’을 해주는 치료 프로그램인 셈이다. 김 추기경의 뜻에 따라 천주교에서 운영해온 사형수 피해자 모임의 사연은 다큐멘터리 <용서>로도 개봉돼 잔잔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종교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산 김수환을 처음 만난 곳은 나의 절친인 구상 시인의 시비 제막식에서였다. 평소 강을 좋아했던 구상 시인은 한강이 보이는 여의도에 살았다. 그래서 한강변에 그의 시 <강>을 시비로 만들었는데, 이때 구상의 소개로 인사를 했다.

천주교 신자인 구상 시인과 김수환 추기경은 동경 유학을 함께한 인연으로 깊은 친분이 있었다. 김 추기경은 나를 보자마자 서울구치소 사형수 교화할 때 몇 번 뵙고 언론에서도 자주 봐서 무척 낯이 있다고 웃으며 반가워 했다.

이후 김 추기경과 나는 파키스탄 사형수를 함께 살린 기억이 있다. 명동성당으로 찾아가 외국인 사형수의 억울함을 알리자, 김 추기경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구명 운동을 해주셔서 결국 풀려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번 교유하며 사형수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한 번은 경주 불국사 석굴암을 찾아오신 적도 있는데, 내가 안내해 드린 기억도 있다. 마지막으로 김 추기경을 뵌 것은 구상 시인의 명동성당 장례 미사에서였다. 맨 앞에 서 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언제 뵈도 겸손하시고 만면의 미소를 띤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맞은 연말연시 그 분의 따뜻한 미소가 너무 보고 싶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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