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제17칙 덕산작마 2

[評唱 2]

至來日山出浴 其僧過茶與山 山撫僧背一下 這僧孟八? 却道 “這老漢方始瞥地” 直饒浪擊千尋 爭奈龍王不顧. 雪竇是作家鉗鎚 大凡拈古 須平將秤稱斗量了 然後批判. 他雖恁?拈 不許人恁?會. 雪竇拈道 “精金百煉 須要本分鉗鎚”

다음날, 덕산이 목욕하고 나오는데 그 스님이 덕산에게 차를 건네주자 덕산이 스님의 등을 한 번 어루만졌다. 이 스님은 맹팔랑이라 도리어 말하기를 “이 노장이 이제야 막 눈치를 챘다”고 했는데, 설사 물결을 천 번을 치더라도 용왕이 돌아보지 않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설두에게는 작가의 집게와 쇠망치(作家鉗鎚, 작가의 솜씨)가 있었으니, 무릇 고칙에 염(拈古)을 할 때에는 모름지기 저울(秤)로 달아보고 말(斗)로 재보고 그런 다음 비판을 해야 한다. 그는 비록 이렇게 염을 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아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설두가 염하기를 “쇠를 충분히 단련하려면 모름지기 본분의 집게와 쇠망치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只如 德山前頭也休去 後頭也休去 未審作?生是精金百煉. 德山?是惡手脚 見這僧不是受鉗鎚底人. 所以休去. 雪竇云 “德山?以己方人 這僧還同受屈” 德山如戴角大?. 何故 却以己方人. 且道此意作?生 若是具眼者 必不可言句上走.

그건 그렇고, 덕산이 앞에서도 쉬고 뒤에서도 쉬었는데, 어떤 것이 쇠를 충분히 단련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덕산에게는 정말로 험악한 수단이 있었지만, 이 스님이 집게와 쇠망치의 단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덕산이) 쉬었던(=그만 두었던) 것이다.

설두가 말하기를 “덕산은 자기 자신에 비추어 남을 평가했으니, 이 스님도 함께 굴욕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덕산은 마치 뿔 달린 호랑이와 같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 비추어 남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자, 말해보라! 이 뜻이 무엇인가? 만약 안목을 갖춘 자라면 반드시 언구 상에서 달리지 말아야 한다.

雪竇以?杖一?云 “適來公案且置” 他?什?却拈放一邊 却道 “從上諸聖向什?處去也” 大?擬議 一時打? 到這裏合作?生商量. 看 諸人皮下還有血?.

설두가 주장자로 한 획을 그으며 말하기를 “좀 전에 공안은 놔두고”라고 했는데, 그는 어째서 도리어 염하는 것을 한 쪽으로 내놓고, (또)다시 말하기를 “모든 옛 성인은 어디로 갔는가?”라고 하고, 대중이 머뭇거리자 한꺼번에 쳐서 쫒아버렸는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따져야 맞겠는가?

보라! 여러분은 가죽아래 피가 흐르고 있는가? 〈끝〉

 

일 년 동안 〈격절록〉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또한 100칙 모두를 소개하지 못한 불찰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100칙 모두를 소개하는 책자로 그간의 다하지 못함에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올 한해 그 어느 해보다 남녀·노소·남북·동서·빈부 등의 대립과 갈등으로 뜨거웠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경자년에는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감싸주고 등 두드려주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부설거사의 팔죽시(八竹詩)로 마무리 인사를 드립니다.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 대로 /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나오는 대로 /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대로
손님 맞는 것은 집안 형편대로 / 시정의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세상만사 내 맘 같지 않으니, /그러면 그렇지 그렇지 하며 세상 따라 세월을 보낸다.”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粥粥飯飯生此竹 是是非非看彼竹
貧客接待家勢竹 市政買賣歲月竹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덕우 강승욱 법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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