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이색천도재… 노동자 고통 위로하려

웹 콘텐츠 제작회사 ‘닌겐’
정토종 스님 집전으로 봉행
유급휴가 받지 못한 사연에
정당한 권리 알리고자 기획

사라진 유급휴가들을 천도하는 천도재의 모습. 사진출처=IT 미디어 비즈니스

직장인들이 끝내 쓰지 못하고 사라진 유급휴가를 위한 천도재. 바쁜 현대인의 고달픔을 위로하는 이색 천도재가 일본 도쿄에서 봉행돼 화제다. 1213, 일본의 산케이 뉴스‘IT 미디어 비즈니스는 이 독특한 소식을 특집 보도했다.

유급휴가 천도재는 일본의 근로자 감사의 날1123일과 그 전일인 22일 양일에 걸쳐 봉행될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인해 중지, 지난 1210일 오사카 시내에서 다시 봉행됐다. 천도재를 주최한 웹 콘텐츠 제작회사 닌겐(人間)’유급휴가를 영혼에 비유해 소리 없이 스러진 유급휴가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봉행 취지를 밝혔다.

주최 측은 천도재 봉행에 앞서 웹사이트를 통해 유급휴가를 받지 못해 힘들었던 경험을 공모했다. 모집된 수많은 후기들 중 300여건의 후기를 엄선, 사연을 종이에 써 등불로 밝혔다. 또 등을 밝히는 영가의 이름에는 유급휴가를 받지 못한 이유가 써졌다.

후기 중엔 가족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와 같은 사연은 물론 유급휴가의 9할을 쓰지 못한 채 정년퇴임했다는 사연도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주최 측은 받지 못한 유급휴가는 어딘가로 떠나거나 집에서 편안히 쉬는 등의 모습이 존재한다. 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사라진 유급휴가의 존귀함을 등불이라는 모습으로 가시화했다300여개의 등불을 밝힌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우천으로 중지됐던 천도재를 다시 한 달여 만에 다시 봉행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사연을 확실히 위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모든 천도재를 정성껏 지내겠다고 밝혔다.

천도재는 정토종 사이넨지(西念寺)의 사야마 세키로 스님의 집전으로 진행됐다. 300여 개의 등불이 줄지어 켜진 가운데 사야마 스님의 독경이 울려 퍼지고, 각 영가들의 이름인 사연의 제목들이 스크린에 흘러갔다.

사야마 스님은 천도재를 지내면서 나 역시 출가 전 회사원 시절, 유급휴가를 받지 못한 채 월 200시간 이상 잔업을 했던 경험이 있다며 이번 천도재의 취지에 깊이 공감했다. 스님은 불교에서는 싸움이 끊이지 않는 세계를 수라계라고 한다. 이러한 노동과 삶속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진정 수라계의 고통을 받는 사람이라며 천도재를 통해 수라의 삶을 사는 이들이 위안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주최 측은 유급휴가를 받아낸 사연도 함께 모아 이를 기반으로 휴가를 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운세 제비뽑기를 참가자들에게 제공했다. 이에 참가자들은 유급휴가를 어떻게든 받아내고 말겠다” “정당한 권리가 이렇게 사라진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니 웃기면서도 서글펐다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천도재를 기획한 닌겐 담당자는 일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아무래도 직설적으로 전하기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오히려 희화화하는 게 더 쉽게 전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일본에서는 지난봄부터 사측이 연 5일간의 유급휴가를 주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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