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동서 문명 교차로 파키스탄을 가다
③ 목숨 건 전법 여정, 길기트

구법승들의 실크로드 간직한
파키스탄 최북단지역 길기트
7~8000m급 고봉이 산재하고
히말라야·힌두쿠시·카라코람
세계 산맥 만나는 천혜의 비경
바람계곡 훈자, 가슴을 울린다

대한불교조계종은 파키스탄 정부 초청으로 1117일부터 23일까지 파키스탄 내 불교 유적을 순례했다. 특집기획 마지막 순서는 옛 실크로드가 남아있는 길기트·훈자다.

파키스탄 북부에 자리한 길기트·훈자는 만년설산에 둘러싸인 요새 같은 마을이다. 북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와한, 북동쪽으로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남동쪽으로 인도와 마찰을 빚는 잠무 카슈미르와 맞닿는다. 특히 이곳은 카라코람과 히말라야, 힌두쿠시 3개의 산맥이 만나는 지역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중 하나인 K2와 낭가파르바트 등이 있다. 해발 7000~8000m급 산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곳, 사람의 발길이 드문 천혜의 자연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길기트에서 훈자로 향하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잇는 이 도로는 그 길이가 1200㎞에 달한다. 길기트·훈자에서는 이 길을 이동하며 수많은 설산과 에메랄드빛 강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바람도 쉬어가는 계곡에 빠지다

새벽 4, 호텔 모닝콜이 선잠을 깨운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영어가 무슨 뜻인지 알 필요도, 대답할 이유도 없었지만 반사적으로 “OK”를 외치며 눈을 비볐다. 출장 3일차, 파키스탄에서의 숙박이 두 번째인 1118. 전날 라호르박물관에서 고행상을 친견하고 버스로 5시간을 달려 밤늦게 도착한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선 몇 시간 눈도 못 붙인 채 떠날 채비를 했다. 파키스탄에 오기 전 유일하게 다큐멘터리로 본 훈자로 떠나기 위해서다.

훈자는 에콰도르 빌카밤바, 불가리아 스몰랸, 러시아 코카서스와 함께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유명하다. 1984년 훈자 출신 160세의 노인 사이드 압둘 모부트가 영국 런던공항에서 심사를 받으면서부터다. 당시 훈자는 평균나이가 120세라고 알려져 세간의 화제가 됐다. 물론 교통이 발달하고 외부와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지금은 더 이상 장수마을이 아니다. 그리고 그해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개봉한다. 1982년부터 월간 만화잡지에 연재해온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바람계곡이 바로 훈자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차로 이동하며 훈자 초입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 왼쪽에 ‘웰컴 투 훈자’ 표지판이 순례단을 반긴다. 훈자는 눈길을 어느 곳에 두어도 설산을 벗어날 수 없다.

옛 실크로드와 KKH
이슬라마바드에서 훈자로 가는 방법은 육로와 국내선 항공 두 가지다. 거리는 600남짓밖에 안 되지만 차로 이동하면 20시간은 족히 걸리는 대장정이 펼쳐진다. 순례단은 원활한 일정 소화를 위해 날개에 프로펠러가 달린 40인승 작은 비행기를 택했다.

운이 정말 좋네요.”

항공권을 나눠주던 현지가이드가 기자에게 말을 걸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이슬라마바드에서 길기트공항에 갈 때 비행기 오른쪽 창가가 가장 좋은 자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이유는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낭가파르바트(8126m)’를 눈앞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친절한 설명에 몰려오던 졸음이 달아났다.

1시간 남짓 짧은 비행, 차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눈을 붙이고 잠을 청하며 살아온 기자는 단 한순간도 창밖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일출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설산의 산맥과 그 사이에서 한숨 쉬어가는 하얀 떼구름. 두 발 아래 펼쳐진 지금껏 본 적 없는 장관은 길기트·훈자에 대한 신비감을 한층 높였다.

길기트공항에 도착해 대략 15인승 크기의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지역은 거의 모든 도로가 2차선이고, 훈자의 마을에 들어서면 양방향 차량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도로가 좁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덕분에 미니버스 뒷좌석에서 엉덩이가 통통 튀며 자연환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길기트는 길기트발티스탄주()의 주도로 해발 1500m에 자리하고 있다. 길기트발티스탄은 자치주라는 특성 때문에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고, 그로 인해 선거권도 없다. 이 때문에 정부의 재정 투입이 잘 이뤄지지 않아 지역개발은 상당히 더딘 편이다.

구법승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이용한 옛 실크로드. 산 중턱 Z자 형태로 난 길이 실크로드다.

인더스강의 지류인 길기트강을 건너 파키스탄과 중국을 잇는 카라코람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 KKH)에 올랐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고속도로(highway)가 아니라 고지대에 위치한 도로(high-way). 또한 카라검다는 뜻으로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어려운 거뭇한 카라코람산맥의 돌산을 표현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 쿤자랍 고개(4693m)를 통과하는 KKH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카슈가르에서 시작해 파키스탄 수도까지 약 1200를 연결한다. 옛 실크로드를 옆에 낀 KKH는 수많은 등산가들의 발길을 길기트·훈자로 이끈 파키스탄 효자도로이기도 하다.

길기트에서 북쪽으로 1시간쯤 이동했을까. 도로 왼쪽에 옛 실크로드 표지판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실크로드를 보기 위해 강가까지 걸었다. 산 정상의 빙하가 녹아 에메랄드빛으로 흐르는 강 건너 산 중턱, 좁디좁은 길 하나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실크로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 스님을 비롯해 수많은 구법승들이 오갔을 그 길은 언뜻 보기에도 위험천만했다. 군데군데는 산사태로 인해 끊어지고, 보수작업으로 세운 듯한 나무다리는 낡아 곧 무너질 것 같았다.

옛 구법승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불교를 전파했다는 단편적인 역사공부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실크로드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지만 공부한 건 이 길을 걸은 선대 수행자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구법승들이 실크로드 덕분에 부처님 가르침을 전 세계에 전한 것은 맞지만, 거기엔 굉장히 중요한 게 빠져 있다. 바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6년 고행 뒤에 선정에 들어 진리를 체득하고 구법승들이 이 험준한 길을 걸은 것처럼, 법을 구하고 법을 전하는 일은 목숨을 걸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편한 세상에서 쉽게 진리를 찾으려 하는 이 시대의 한 불자로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2010년 대형 산사태로 인해 침수된 아따아바드. 당시 마을이 침수되면서 주민 19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현재는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설산의 비경 간직한 훈자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발길을 재촉해 훈자에 들어서자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크로드에서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들떴다. ‘드디어 훈자구나.’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훈자는 사실 이 지역 20여개 마을을 통칭한 표현이다. 훈자는 아래쪽부터 로워 훈자(Lower Hunza), 센트럴 훈자(Central Hunza), 어퍼 훈자(Upper Hunza)로 나뉜다. 훈자는 이슬람 수니파가 국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파키스탄에서 소수인 시아파를 신봉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마호메트 모하메드의 직계자손 아가 칸을 따르는 이스마일파에 속한다.

훈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표현 바람계곡처럼 높은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계곡이 흐르고, 산 중턱에 작은 마을들이 모여 있다. 시간이 멈춘 곳, 바람도 쉬어가는 곳이라는 표현이 틀리진 않았으나 훈자를 다 담아내기엔 역부족인 느낌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말도 딱히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비싸지 않은 카메라, 한없이 부족한 사진기술을 탓하며 두 눈에 담은 천혜의 자연은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길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다 어느 호수 앞에 멈췄다. 제법 역동적으로 흐르던 강줄기를 바라보다 갑자기 잔잔한 호수를 마주하니 묘한 기분이다. 조금 전까지의 강줄기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과거 아따아바드라는 마을이었던 이곳은 20104월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 침수되면서 일종의 자연호수처럼 변해버렸다. 당시 주정부는 산사태의 위험성 때문에 대피를 권고했지만 갈 곳 없던 주민들이 끝까지 남아있다 총 19명이 사망했다. 이 산사태로 인해 KKH도 함께 수면 아래로 잠겼다.

길기트에서 훈자로 이동하다 잠시 쉬어간 마을에서 한 원로가 원행 스님에게 지역 전통모자 ‘도비’를 선물하고 있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던 KKH가 막히자 중국은 막대한 자본을 들여 침수된 지역 옆으로 5개의 터널을 뚫어 새롭게 KKH를 연결했다. 국가 경제력이 뒤처지는 파키스탄에는 더없이 좋은 원조였다. 강대국으로 성장한 인도를 견제하고 싶은 중국, 그리고 인도와 카슈미르 점유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은 파키스탄은 자연스레 형제애가 싹텄다.

산사태로 많은 주민들이 사망한 아따아바드는 안타깝게도 이제 관광자원이 됐다. 높아진 수면 위로 빼꼼히 보이는 나뭇가지, 그 옆으로 관광호텔이 들어서고 있다.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는 관광 인프라가 형성되는 걸 보고 있자니 삶과 죽음의 덧없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늦은 오후, 훈자에서도 위쪽 지역에 해당하는 파수까지 올라갔다. 이 작은 마을은 마을을 상징하는 악마의 산투포단(Tupopdan)과 빙하가 유명해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하얀 조약돌을 쌓아 ‘WELCOME TO PASSU’라고 표시한 글자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삐죽삐죽한 산봉우리와 그 아래 흐르는 강이 인상적이다. 순례단은 이곳에서 마을 이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저녁 마을축제 초청을 받았지만 정해진 일정을 바꿀 수 없어 정중히 사양했다.

훈자에서도 위쪽에 해당하는 파수. ‘웰컴 투 파수’라고 새겨진 글자 뒤로 ‘악마의 산’ 투포단(Tupopdan)이 인상적이다.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숙소로 이동, 센트럴 훈자에서도 9000여 명이 거주하는 비교적 큰 마을 알티트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1994년 지어진 호텔 이글네스트가 마을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해발 2500m 절벽에 지어진 호텔이다. 마침 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어간다. “일출과 일몰이 세계에서 최고라는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한동안 멍하니 노을을 바라봤다. 서쪽의 디란 피크(7257m), 남쪽의 라카포시(7788m), 북쪽의 울타르 피크(7388m)에 둘러싸여 동쪽의 러시 피크(5098m)를 바라보니 야트막한 언덕 같다.

난방시설이 없어 겨울에는 문을 닫는 호텔에서 초겨울 날씨를 느끼며 잠을 청했다. 현지가이드가 미리 챙겨온 전기장판이 아니었다면 아마 밤새 추위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로 11월의 훈자는 기온이 낮다. 대부분의 관광도 4~10월에 이뤄진다고 한다.

조금 이른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눈을 떴다. 일출도 가히 장관이라는 말에 옷깃을 여미고 호텔 옆 언덕에 올랐다. 하지만 주위 산이 워낙 높다보니 일출을 보기까지는 꽤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산 위로 솟아오른 해는 밤새 얼어붙은 대지에 빛을 뿌렸다. 일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언덕에서 내려다본 훈자계곡이 무척 신비롭게 느껴졌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하산하며 마을을 바라보니 어제 제대로 보지 못한 살구나무가 빼곡하다. 살구가 특산품인 훈자는 매년 4월이면 살구꽃이 만발해 설산과 함께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고 한다. 꽃피는 봄에 다시 오고 싶은 훈자다.

해발 2500m 센트럴 훈자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호텔 이글네스트. 호텔 뒷편에 아가씨 손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레이디핑거'가 보인다.

순례단은 훈자의 마지막 일정으로 1100년 전 지어진 알티트 성을 방문했다. 길기트발티스탄주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인 알티트성은 황폐한 상태로 보존됐으나 노르웨이 정부의 지원으로 복원해 2007년부터 일반에 개방됐다. 파키스탄에서는 이 성을 라마승 지도자들이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성 내부에 남은 유물에는 연꽃과 만()자가 새겨져 있다. 다만 만자는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좌만 형태를 하고 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는 기원전부터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표현한 상징이니 나치로 오해하진 말자.

지역 가이드에 따르면 훈자는 4세기경 중국의 훈족이 정착하면서 불교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라마승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전법활동을 펼쳤다. 훈자는 훈족이 살았던 곳이어서 지역에서는 훈조라고도 부르는데 1974년 부토 국무총리가 집권하면서 왕조가 멸망했다. 현재도 훈족의 왕족 일부가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훈자의 특산품이었던 와인은 이슬람의 점령 이후 사라졌다.

불교의 흔적이 많이 남지 않은 훈자를 떠나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절경에 감동을, 그리고 번성하다 점차 사라져간 불교에 아픔을 느꼈다. 그래도 불교유적을 복원·보존하고 이웃나라의 불교계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려는 파키스탄의 노력은 고마울 따름이다.

훈자를 떠나며 어느 산 중턱에 하얀 돌멩이들로 써놓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영어 세 단어를 표현한 짧은 문구에 고개를 끄덕였다. ‘LONG LIVE PAKISTAN’

훈자 알티트성에서 감상할 수 있는 훈자계곡. 이런 절경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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