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속도에 맞는 인생

그 계절이 또 왔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어도 마음이 움츠러드는 세밑. 달력의 마지막 장을 들추고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한 해를 매듭짓고 또 새로운 해를 맞아야 한다. 그날이 그날인데 그어놓은 금을 넘으면서 나이라는 숫자는 늘어가고 눈 밑의 잔주름도 몇 개는 늘겠지. 책상 위 다이어리나 수첩 한 귀퉁이, 아니라면 마음 한 구석에 새겨놓았을 2019년 정초의 계획은 몇 개나 완성되었을까. 이제 새로운 다짐으로 그 자리를 메워야 하는 건지 마음이 허허롭다.

세월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질량과 부피의 시간이다. 그래서 흘러가는 시간이 안타깝다. 나에게만 있는 고유의 인생 시계가 있다면 모두의 세월에 맞추느라 힘겹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
각자의 내면 기쁨 참구
인생시계의 계획 필요

인경씨 코칭 스토리 ‘내 생애 최고의 해’

대학의 비정규직 강의 전담교수인 인경씨는 자신이 기억하는 지난 20여 년 간 한결같이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공부를 계속 해 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둘째가 대학 입학한 그날까지 단 하루도 시간에 쫓기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박사과정을 마치느라 보따리 시간강사를 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웠어요. 그러고도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가 되기 위해 연구논문에 학회활동에 수첩의 일정이 늘 빼곡했지요.”

그녀의 매일은 헉헉대며 간신히 넘어갔지만 하나씩 경력이 늘고 아이 둘이 커가는 재미를 보상으로 알고 견디었다.

“그런데 2년 전, 정말 이대로 계속 살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0대가 되면서 몸이 못 버티어냈고 우울증까지 왔어요.”

늘 해야 하는 일이 쌓여 있는 일상에서 초조함과 불안이 늘어났다. 잠자리에 들면 뭔가 빠뜨리고 놓친 것 같아 불안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할 일을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초조했다.

말과 행동이 빨라지고 조급해져서 누군가 길게 말을 하기만 해도 참고 듣기가 힘들 정도였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어요. 이런 모습으로 나이를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본 태도를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녀가 초조와 불안을 느끼는 그 압박감의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찾아가보는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 20년 넘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이 결핍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 젊은 시절의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내 인생은 완성되는가?

- 그 목표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와 비중을 차지하나?

- 지금 인생의 방향키를 돌린다면 잃는 것은 무엇이고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대학생 때부터 목표로 했던 대학교수의 꿈을 완전하게 이루어내지 못하면서 늘 결핍과 패배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보상심리로 자신을 여러 방법으로 혹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녀는 정규직은 못되더라도 그럴 듯한 학자라는 명함을 갖고 싶어 했고, 아이 둘은 명문대학에 보내고 싶었으며 한편 결혼생활도 성공하는 워킹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인경 씨는 더 이상의 사회적 성공을 바라는 욕망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자신의 마음과 몸의 건강을 돌보면서 진정한 만족을 찾고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만의 인생 속도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그 해 12월에 새해의 목표를 설계하는 그룹코칭에 참가했다.

지니 S. 디츨러의 〈내 인생의 최고의 해〉 컨셉을 모델링한 이 그룹 코칭은 한 해의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올해 집중할 자신의 역할과 10대 세부목표를 완성하는 액티비티 위크숍이었다.

소박하고 성실한 3가지 지침

참가자들은 지난 1년간 자신이 성취한 일과 이루지 못했던 일을 기억하며 새 해의 지침을 정했다. 지침의 성격이나 가짓수는 모두 각자의 목표와 속도에 따라 정한다. 크고 대단한 성취와 새해 목표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지난 한 해 동안 이룬 일로 몸무게가 더 늘지 않았다.’ ‘적자 없이 살림을 꾸렸다.’ ‘300만 원 이상 저축했다.’ 등 소박한 성취도 있었다.

그리고 5년 후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그린 뒤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찾고 올해 자신이 집중할 역할과 거기에 따른 세부 목표를 정해나갔다.

인경씨는 해마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와 목표를 세우던 지난해와 다르게 자신의 삶의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세워나갔다. 그녀가 지금 시점에서 원하는 것을 적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세운 새 해의 지침은 단 3가지였다.

- 한 달에 책을 한 권 이상 읽기

- 하루 1시간씩 걸으며 사색하기

- 매월 마지막 날 가족모임을 갖고 한 달을 어떻게 보내고 무엇을 느꼈는지 나눔 하기

“목표라고 하면 크게 마음먹고 결심해야 하는 거창한 것인 줄 알았거든요. 소박하지만 매일 성실하게 지켜야 하는 작은 지침을 만들고 나니 마음이 따뜻하고 뿌듯해졌어요. 오랫동안 새해가 되면 해야 할 리스트를 쫙 뽑아놓고 마라톤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었습니다.”

인경씨는 해마다 ‘내 생애 최고의 해’ 워크숍에 참석했지만 진정한 ‘내 생애 최고의 해’는 2년 전 그날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지배당하지 않고 주인이 되는 붓다의 시간관리

티벳불교의 정신적 구루이며 불교학자인 라마 수리아 다스는, 저서 <붓다의 시간관리>에서 지신만의 속도로 인생시계를 찾아가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불교는 시간과 그 운용 방법을 심오하게 다루는 학문”이며 “필연적이며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행진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꽉 짜인 일정과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더 이상 우리가 희생자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자신만의 속도를 통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고요하게, 쫓기거나 지배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 주고 싶다. 기억하라. 우리가 맞닥뜨린 어떠한 문제 속에서도 멈추고, 호흡하고, 우리의 중심을 발견하고, 점검할 때 그 모든 순간은 무한대의 가능성과 기회를 갖는다.“

라마 수리아 다스는 제한된 시간의 개념에 스스로가 얽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엇을 진정 원하고 있는지를 알고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야 단순하고 집중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법문한다.

자신의 속도로 시간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의 선택이 필요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생각할 일은 무엇인가. 어떤 시간을 부여잡고 어떤 시간은 흘려버릴 것인가. 모두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닌 자신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붙잡는 선택을 하면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자신 속도로 균형 잡힌 삶 찾는 시간관리 코칭

삶에서 느끼는 초조함과 불안, 삶에 대한 중압감의 원인을 바라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궁극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안다는 라마 수리아 다스의 관점은 코칭과 바로 맞닿아 있다.

시간을 붙잡고 의미 있게 쓰는 일은 코칭의 주요한 이슈 중의 하나이다. 시간관리 코칭은 시간을 쪼개서 많은 일을 하기보다 원하는 일로 자신의 시간을 채우도록 내면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여러 역할을 해내면서 인생을 꾸려간다. 그러다보면 정작 자신이 원하는 일은 뒷전으로 미뤄지기도 한다. 여러 역할이 자기에게 주는 각각의 기쁨과 의미가 무엇인지 조화와 균형을 잡으면서 일상의 가치와 목표를 세워나가는 과정이 시간관리 코칭이다.

새로운 해의 인생지침을 만들 때 우선순위의 역할을 찾고 싶다면 현재 자신의 역할에서 변화를 가장 많이 주고 싶은 하나를 고르면 된다. 부모, 자식, 학생, 직장인, 누군가의 파트너인 역할 중에서 단 하나 새롭게 바꾸고 싶은 역할을 찾는다. 그리고 그 역할을 실천할 때 지켜야 할 행동지침을 몇 가지 정한다.

거기서 시작되는 변화와 성장이 자신의 인생시계를 찾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얼마 남지 않은 2019년, 제야의 종소리가 들릴 때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을 자신의 속도로 걸어 나가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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