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무업망상 2

[評唱 2]

又問 “如何是祖師密傳底心印” 祖云 “大德正?在 且去別時來” 師?出 祖召大德 師回首. 祖云 “是什?” 師便頓悟 乃禮拜. 祖云 “??阿師 禮拜作什?” 雲居錫云 “什?處是汾州正?處” 後來答話 只云莫妄想 如此者二十年.

(무업이 마조에게)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은밀히 전한 심인(心印)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대덕이 정말로 시끄럽게 구는구나! 일단 갔다가 다른 때 오라.”

국사가 막 나가려는데, 마조가 “대덕!” 하고 불렀다.

국사가 고개를 돌리자(回首), 마조가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是什?)?”

국사가 바로 단박에 깨닫고는 절을 했다.

마조가 말했다.

“(남의) 발뒤꿈치나 쫓는 스님아! 절은 해서 뭐해.”

(이이 대해) 운거 석(雲居錫)이 말했다.

“어디가 분주가 시끄럽게 군 곳인가?”

뒤에 (누군가 물으면) 답하기를 다만 “망상 떨지 말라(莫妄想)!”고 했으니, 이와 같이 하기를 20년이나 했다.

一日院主云 “和? 休得也未” 他?云 “院主” 主應之 他云 “這回休得也未 直至死 亦只云 休得也未” 若道禪?箇有一句 ?人端的參 如問佛問祖只一般 答何故一百箇 答做一百般. 只這無業老漢也大漏逗.

하루는 원주가 말했다.

“화상께선 쉬지 않으십니까?”

국사가 말했다.

“원주!”

원주가 “예!”하고 대답했다.

국사가 말했다.

“이번에 쉬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러서도 단지 ‘쉬지 않으십니까?’라고 할 것이다.”

만약 선에 정말로 일구가 있다(禪?箇有一句)고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분명히 참구하라고 한다면, 부처를 묻고 조사를 묻는 것은 단지 하나일 뿐인데 답은 어째서 일백 개나 되는 것인가? 백 가지로 답을 해서 그런 것인가? 다만 이 무업 노인이야말로 낭패(漏逗)가 클 뿐이다.

雪竇下一句語 極有作略. “如何是佛” 他云 “莫妄想” 雪竇云 “塞却鼻孔” “如何是佛” 云 “?心是佛” 雪竇云 “?却舌頭” 正當恁?時 舌頭又?却 鼻孔又塞却 還有轉身吐氣處也無. 便打.

설두의 일구어(一句語)에는 대단한 계략이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무업이 “망상 떨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설두가 “콧구멍을 막아버렸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무업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고 한 것에 대해 설두가 “말문을 막아버렸다”고 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러할 때 말문도 막아버리고 콧구멍 또한 막아버리고 전신토기(轉身吐氣)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선상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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