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반야심경 읽기

서정형 지음/공감과 소통 펴냄/1만 3천원

불교에 관심 갖고 공부 하다 보면 먼저 대장경의 방대한 양에 압도 당하게 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중첩된 불교 사상은 초기 붓다의 가르침과 소승 및 대승불교의 다채로운 경전들, 그에 대한 주석서들, 조사 선(禪)에 대한 통찰이 담긴 선어록 등이 한데 모여 다채롭고도 거대한 숲을 이룬다. 그러다 보니 경전 고갱이와 핵심을 꿰뚫어 전체를 하나로 꿰고 회통시킬 수 있는 밝은 눈이 없으면 진리의 바다에 한쪽 발을 담그는 것조차 주저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空·반야심경 읽기〉는 불교와 공(空) 사상에 관심 가진 이들에게 유익한 책이다. 또한 서문서도 밝혔듯이, 비단 불교에 익숙한 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술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불교와 공사상에 쉽게 접근해서 서로 통섭하는 장을 마련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은 공사상뿐만 아니라 불교의 근본 사상이 집약된 〈반야심경〉의 행간을 촘촘히 들여다 봄으로써 최고 진리인 공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인다. 저자는 〈반야심경〉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자리매김 한다.

空의 정의는 ‘자성이 없다’는 것
공사상 통해 불교 핵심 드러내
전문 하나하나 상세히 풀어놓아

반야경 계열 경전 중에는 십만 송에 이르는 긴 것도 있다. 그만큼 경전의 종류와 수가 많다. 아무리 많아도 공사상에 뿌리를 두고 넓게 보면 대승불교 자체가 공사상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야심경〉은 반야경전들의 골수일 뿐만 아니라 불교철학 자체의 골수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 속에서 “〈반야심경〉의 한역본이 여럿 있는데 글자수로는 모두 300자를 넘지 않는다. 문자로는 짧지만 뜻으로는 결코 짧지 않은 경전이다. 〈반야심경〉에 담긴 공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경전의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 공이란 무엇인가?’는 공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통해 불교 사상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공의 이해 → 공 개념의 역사 → 공의 세계 → 공을 보는 법으로 전개되는 일련 과정서 알 수 있듯이 공의 이론적 이해에 그치지 않고, 체험적 측면과 함께 일상 생활서 ‘공을 사는 법’을 귀띔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흥미로운 특징이라 하겠다. 이 책의 간명한 서술 방식은 서두의 공에 대한 명쾌한 정의에서 드러난다. 공의 정의는 ‘자성(自性)이 없다’는 것이다. 한문으로 표현하면 ‘무자성고공(無自性故空)’이다. 이 다섯 글자만 알면 공을 알게 되고, 그걸 알면 불교를 알게 된다. 우리말로 풀면 모든 사물은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에 공하다’는 말이다. 자성이 무엇인지만 알면 해독이 되는 문장이다. 공의 정의를 넘어 불교 철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이 한 마디에 달려 있다.

그 뒤를 이어, 공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경전과 조사 어록, 그리고 동서양의 저술들을 종횡으로 인용하면서 공이 불교 사상의 핵심인 연기(緣起) 무아(無我) 무상(無常) 중도(中道)와 긴밀히 연관돼 있으며, 모두 ‘최고의 진리’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과 연기와 중도는 하나의 진실에 대한 세 가지 표현이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설명할 수 없고, 따라서 중도가 아니면 연기와 공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통찰이 불교 철학을 하나로 꿰는 키이다.

이 책의 2부 〈반야심경 해설〉에서는, 예불이나 불교 의례서 낭송되는 〈반야심경〉의 첫 소절인 ‘관자재보살’부터 마지막 소절인 ‘모지 사바하’에 이르는 전문을 하나하나 상세히 풀어놓았다. 〈반야심경〉이 펼치는 공사상의 변주를 통해서 불교 자체의 핵심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의도다. 그것은 무아(無我)를 공의 관점서 바라보는 저자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다.

저자는 책 속에서 “‘나’라고 철석같이 믿던 몸과 심리 현상 등이 실체가 없는 공한 흐름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면 모든 괴로움서 벗어나 대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 〈반야심경〉의 요지이다. 팔만대장경도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고 밝힌다.

불교 경전의 번역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산스크리트어(팔리어)→한문→한글로 이어지는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번역은 ‘문화의 옮김’이라서 더욱 그러하다. 우리말 구사가 중요한 것도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진 ‘불교식’ 표현이 대중을 불교로부터 멀어지게 한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어도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해독되지 않는다면 불교는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불교에 대한 무관심을 증폭시킨다. 불교에 밝더라도 우리말 소통에서 실패하게 되면 불교의 대중화는 기약할 수가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심한 저자는 난해한 불교 개념과 논리를 우리 시대의 생활언어로 쉽게 전달키 위해 단어와 토씨 하나에도 세밀한 주의를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저자 서정형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서 〈중국 화엄철학의 형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서 20여 년 간 불교와 철학개론을 강의했고,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별책으로 〈밀린다팡하〉 〈중론〉 〈대승기신론〉 〈금강삼매경론〉을 출판했다. 지눌의 〈정혜결사문〉을 풀어 썼고, 용성의 〈각해일륜〉을 영역했다. 논문으로는 〈선불교 수행에 대한 반성〉〈자아가 없는데 누가 윤회 하는가〉 〈선(禪)과 있는 그대로의 세계〉등이 있다. 현재는 청량산 자락에 있는 수경재의 주인으로 소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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