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작은 사유가 만드는 깊은 삶

일기쓰기는 ‘다음’ 준비하는 일
‘감사’ 느끼면 불안·걱정 감소
자신의 사회적인 연결성 실감

21자 압축 일기

21자 압축 일기는 당신의 하루를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정리해보자는 의도로 설계했다. 결코 21자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약속이 대전제다. 어쩌면 당신은 이 약속 때문에 유혹당했을지도 모르겠다. 21자 일기라니. 이 정도야 가뿐하지 뭐! , 그렇지. 이렇게 간결해야 해! 만약 당신 마음 안에 이런 말이 있다면 두 가지 무의식이 드러난 셈이다. 하나는, 그동안 일기쓰기를 소홀히 했음을 실토한 셈이고 또 하나는, 그래도 좀 뭔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TV나 온갖 모니터에서 터져 나오는 입말들이 이 시대처럼 번다한 때가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내가 쓰는 문자는 한자한자가 귀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 직접 하지 못할 말을 글로 전한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극복하고 싶은 인간의 천부적 욕구 또한 문자의 특성과 궁합이 잘 맞는다. 문자는 당신이라는 존재의 물리적 사멸 이후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자는 유한 생명체인 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시스템이다. 특히, 일기쓰기는, 짧게는 자신의 하루를 성찰적 시각으로 씻어내는 방안이고, 길게는 자신의 죽음 너머를 응시하는 태도일 수 있다. 본의든 아니든, 안네의 일기2차 대전 중 15살 유대 소녀 안네 프랭크에 의해 쓰여진 이후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지금도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일기는 개인의 하루 생을 글쓰기로 정리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일이다. 일기 안에는 하루일에 대한 기억, 반성, 의미, 사유 등이 담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은 시간 당 900호흡을 하고, 평균 216백회 호흡한다. 단 몇 분만 호흡을 놓쳐도 절명 위기에 빠지는 인간으로서는, 하루 수천 번씩 의미심장한 사건을 겪는 셈이다. 일기를 쓰는 당신은 순도 높고 내밀한 개인사적 진술을 통해 세상과 생화학적 접촉의 결실을 생산한다. 일기를 쓴다는 사실은, 자신의 삶이라는 필터에 걸러진 사연이 당신의 내면에 착근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루가 죽고, 당신은 다음 생애를 기약하는 잠에 빠져든다.

문제는 당신이 일기따위를 기록할 겨를이 없다는 점이다. 굳이 당신에게 강제 일기라도 강요한다면 다음과 같이 진술할지도 모른다. “무슨 일 했는지 모르게 하루 해가 뜨고 진다. 216백 호흡이라니! 과연 내가 숨을 쉬기라도 했단 말인가. 오늘 하루 단 한 차례 호흡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업장에 전화하고, 친구에게 문자하고, 돈 세고, 작업하는 동안, 호흡이라는 사건은 나에게 없었다. 일기에 적을만한 일은 없지 않지만, 사실은 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일뿐이다. 그런 것들을 시시콜콜 적는다는 게 참, 하릴 없어 보인다.”

21자 압축 일기는 그런 당신을 위한 글쓰기이다. 지나치게 간단하다고? 그렇다면 가슴 뛰게 좋은 소식이다. 왜 좋은 소식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당신이 장문의 일기를 쓴다 하여 말리거나 강제중지시키는 소동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여기서만큼은 21자 일기를 써보시기 바란다. ‘21자 일기를 씀으로 해서 몇 가지 이득을 보게 된다. 이런 일기는 당신의 여섯 번째 손가락인, 모바일 폰의 메모장에도 정리 가능해서, 뜻밖에도 기동성 좋은 일기쓰기가 될 수 있다. 모바일 폰을 쓰듯이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는 21자 일기쓰기의 방편들은 다양하다.

- 하루 중, 기억나는 사건의 헤드라인 적기.

-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사건 적기

- 자신을 주인공으로 시()처럼 짧은 글쓰기

- 오늘 만난 타인을 주인공으로 시처럼 글쓰기

-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이나 생각을 요점만 간단히정리하기

- 죽음을 앞둔 나를 상상하며, 21자 유언 쓰기

오늘의 매듭 안에 오늘의 삶이 담겨 있고 그것을 잘 확인했을 때, 오늘을 잘 산 것이다. 당신은 내일의 삶을 보장받지 않았다. 물론 지나간 날 또한 헤어진 연인처럼 아련한 그림자는 있을지언정,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은 아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착각한다. 자신의 삶이 영속과 일관된 흐름 안에 놓여 있는 것으로 느끼기 쉽다. 엇갈린 연인 중 어느 한 쪽이 심리적 매듭을 짓지 못했을 때를 생각해보라.

일기는 하루라는 시간의 매듭짓기다. 지지부진한 영속과 일관의 틀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를 높은 의식에서 조망하고 매듭짓는 자로서, 명실공히 자기 삶의 리더임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21자 일기를 쓰는 동안,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오늘 하루의 필름을 되돌리게 된다. 이 모든 순간 중에서 단 21자로 압축할 만한 일은 무엇인가. 오늘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는 한 순간을 형상화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오늘 하루, 당신 주위를 떠돌았던 말 중에 가장 의미 있는 대화를 적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삶은 하나씩 매듭을 짓고 가는 일이다. 오늘을 잘 산다는 것은 확인이라는 매듭을 잘 지었음을 의미한다. 고기를 담은 망태의 끝지점, 호흡을 담은 풍선의 끝지점, 정성을 담은 보자기의 끝지점에는 매듭이 있다. 매듭은 예외없이 가두고, 담고, 정리하고,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의 시간을 예쁘게 매듭 짓는 일. 21자 압축일기.

깨알감사 글쓰기

깨알감사 글쓰기는 당신의 생애에서 깨알처럼 작은 감사거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감사는 마음의 두 측면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마음이다. 소위, 파충류의 뇌라고 하는 싸움, 도주반응처럼 당신이 겪는 모든 사안은 감사 아니면 불만의 영역이다. 누군가는 무관심도 있지 않냐고 하지만, ‘무관심에 감사가 있을 리 없고, 모르는 것을 무관심이라고 분류할 수 없으니, 무관심은 곧 불만의 영역이다.

감사는 일종의 선택이다. 두 갈래 길 앞에 선 것처럼 원론적 심리작용이다. 가령, 당신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겼다고 하자. 사건 직후 당신은 두 감정 중 하나를 반사적으로 선택한다. 하나는, 재수 없는 날이라며 퉤퉤 침뱉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강도를 만나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감사하는 마음이다.

당신은 하루 중에 이런 선택을 얼마나 자주 할까. 더워서 짜증나고, 혼자여서 외롭고, 돈 없어서 두렵고, 목감기로 따갑고, 동료의 말투에 놀라고, 하는 일을 겪을 때, 당신은 무의식 중에 불만 혹은, 감사라는 선택지를 받아든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어떤 감정 선택을 거듭하는지조차 모른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감사불만은 당신이 채택한 정서다. 그 두 감정 중 하나가 반복되면 감정습관이 되고, 감정습관이 다름 아닌 인연을 만드는 에너지 원이다. 보자. 나의 생애는 인연 빼고 나면, 없다.

심리학자 마이크 베이어는 저서 베스트 셀프에서 감사의 이득을 열거한다. 감사를 하면, 불안, 걱정 등이 줄어든다. 우울감이 사라지고, 걱정이나 두려움도 현저히 줄어든다. 특히, 자살과 같은 극단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고 적는다.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그가 권하는 것이 감사 목록 적기이다. 감사 글쓰기는 긍정정서 근육강화이자 사회와의 연기적 알레고리를 실감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물 한잔을 앞에 두고, 이 물 한 잔이 나에게 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존재가 움직였는지, 명상하는 수행처가 있다. 당신도 한번 해보시라. 당신 의식의 확장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 오늘하루, 모든 일에서 감사 측면 찾아 적기

- 살아온 날에서 감사할 만한 사건의 머리글 적기

- 고마운 사람 이름 적어가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면 인상이나 그를 만난 시공간)

- 자신의 몸 습관, 감정 습관 등에 숨어 있는 감사의 측면 찾아 적기

- 미운 사람, 부정적 관계에 있는 사람의 감사할 만한 측면 찾아 적기

-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람과 사건의 고마운 측면 발견하고, 정리해주기

- 기억나는 부정적 사건을 간단히 적고, 그나마 다행이거나 고마운 측면 찾아 적기

감사는 무조건 긍정적 측면만 드러내고 부정적 측면을 감추는 행위가 아니다. 그런 감사는 위험하다. 대학 강단에 서는 후배 G는 몇몇이서 만든 단체 톡방에서 감사의 말을 전해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울림과 깊이가 남다른 불교 경전의 내용이나 성경 말씀, 아름다운 해석의 언술을 전해주었다. 단체 톡방 동문들은 매일 아침마다 전해오는 그의 글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어느날 G가 이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날도 G는 인생의 교훈과 감사의 글을 올렸었다. 나는 혼란에 빠졌지만, G에게 직접 근황을 묻지 못했다. 단체 톡방에 매일 올라오는 그의 글에서는 중대한 가정사의 기미를 포착할 수 없었다. 나는 끝내 그의 소식을 직접 들을 수 없었다. 그가 얼마전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G가 만약, 자신이 겪고 있는 여러 격변을 사실 대로 드러내고, 그나마 남은 고마운 점, 긍정적인 점을 밝혔다면 어땠을까.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나는 이혼하고 싶지 않다. 혼자 살게 되는 두려움, 타인의 폄훼나 실패한 중년의 추레함 따위를 보여주는 게 죽기보다 싫다. 그렇지만, 평생 연금이 있고, 아직 여행할 곳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긴 잠을 잘 수 있고, 아내가 싫어하는 숲속의 야영 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 정도라도 자신의 고뇌를 밝히고, 감사거리를 발견했더라면.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 박사나 엘리자베스 티블러로스는 말하고 있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긍정이라고. 당신을 둘러싼 조건의 부정성, 부정적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이라면, 그 속에서 감사거리를 찾아내는 힘은 당신에게 무엇이 될까. 위에서 언급한 마이크 베이어의 말을 빌자면, 감사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연결성을 실감함으로써 새로운 의욕을 갖게 한다. 감사는 새로운 감사거리를 찾고자하는 엔진과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이다.

감사는 무엇보다 발견자의 것이다.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에 감사의 마음을 적용하면, 모든 순간이 행운이나 긍정 아닌 것이 없다. 당신의 한 걸음에 대해, 다리를 다친 세상의 많은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의 한 걸음은 감사의 대상이 된다. 이것이 감사의 발견법이고 삶의 연금술이다.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연기적 생명체로서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은 기적의 연결이다.

작고 미약하고 트미한 것의 발견. 당신의 삶에서 그런 발견이 자주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감사는 주도적 선택이자 겸손이라는 정신의 드러남이다. 시시콜콜 감사거리를 잘 찾아내는 사람은 주도성과 자신감, 자존감, 정서 탄력성이 좋을 수밖에 없다. 당신이 지금 감사하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은 해발 고도 제로(0). 그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조화로운 상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