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이해의 길 23

〈서유기(西遊記)〉는 삼장법사가 손오공과 사오정, 저팔계를 데리고 서역으로 유람을 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이 이야기는 삼장법사 일행이 손오공의 활약으로 요괴를 물리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들이 인도로 여행을 떠난 이유는 경전을 구하기 위해서다. 삼장법사(三藏法師)가 삼장(三藏)을 구해 중국어로 번역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 것이다. 중국인들이 인도어로 된 경전을 번역하는 1천년 대장정의 역사가 이 이야기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중국인들은 근본경전, 대승경전 가릴 것 없이 구하는 대로 모두 번역하였다. 당시만 해도 경전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희박했기 때문에 모든 경전이 붓다가 직접 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화엄경〉과 같은 대승경전은 붓다가 입멸한 후 4~5백년이 지나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붓다의 친설(親說)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대승경전이 붓다가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면, 이는 붓다가 부활해서 설한 것이 된다. 그렇게 믿는 것은 자유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승경전이 석가모니 붓다의 친설이라고 오해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도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되는 경전의 형식 때문이다. 모든 경전은 ‘한때 붓다께서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내가 들었다’로 시작하기 때문에 당연히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서 대승경전이 불설인가 아닌가 하는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는 불교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지금도 남방에서는 석가모니 붓다만 인정하고 대승은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대승은 붓다의 말씀(佛說)이 아니라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에서 부처 불(佛) 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입장이 가능하다. 먼저 고유명사로 해석하면 부처(佛)는 2,600여 년 전 인도에서 태어난 석가모니가 된다. 그렇다면 대승이 석가모니 붓다의 친설이 아니라는 주장은 옳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부인할 수 없는 문제다.

두 번째는 일반명사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부처(佛)는 석가모니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깨친 사람(覺者)’이라는 의미의 일반명사가 된다. 그렇다면 대승은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주장 역시 옳은 것이 된다. 대승경전은 석가모니 붓다의 말씀은 아니지만, 당시에 치열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설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붓다가 되는 길로써 의미를 가진다. 이는 불교가 서구의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붓다가 된다고 해도 신성모독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목표로 하는 종교다.

그런데 대승불교 당시 출현했던 붓다들은 왜 ‘여시아문’으로 시작하여 마치 석가모니 붓다가 직접 쓴 것처럼 경전을 구성했을까?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해도 되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스승인 석가모니 붓다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이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시 일야(一也)라는 이름의 비구가 열심히 수행해서 붓다가 되었고, 자신이 깨친 내용을 엮어 〈일야경〉이란 책을 썼다고 가정해보자. 다만 그는 자신이 아니라 석가모니 붓다가 저자인 것처럼 형식을 구성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어찌 보면 제자가 책을 썼지만, 너무도 존경했던 돌아가신 스승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한 것과 같다 할 것이다.

혹자는 근본경전은 석가모니 붓다의 입으로 직접 설한 불구경(佛口經)이고 대승경전은 붓다의 뜻을 나타낸 불의경(佛意經)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대승경전은 찬불승들이 붓다의 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깨친 붓다가 설한 가르침이다. 그들이 설한 대승경전은 석가모니의 근본정신을 새로운 시대에 녹여낸 사상의 금자탑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 역시 대승불교를 일으킨 주역에서 결코 빠지면 안 되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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