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과 귀향, ‘나’를 만나는 여정
방랑과 귀향, ‘나’를 만나는 여정
  • 김원숙 미학자
  • 승인 2019.11.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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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생애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1661-1669, 캔버스에 유채, 262 x 205 cm, 에르미타주미술관, 상트 페테르부르크
렘브란트, 〈사도 바울로서의 자화상〉, 1661, 캔버스에 유채, 91 x 77 cm , 레이크스미술관, 암스테르담

17세기 네덜란드 대가인 렘브란트 반 린(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은 생애를 통틀어 유화, 동판화, 드로잉 등을 비롯한 천 수백여 점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고, 〈니콜라스 툴스 박사의 해부학 강의〉,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와 같은 작품으로 그는 당대에 이미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돌아온 탕자’는 자화상 같아
회개와 신에게의 귀의 의미
본질적 자아의 깨달음 추구

또한 렘브란트는 전 생애 동안 지속적으로 여러 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에 대한 기록이나 전기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화상 덕분에 다른 어떠한 천재들보다도 그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친숙하게 다가오는 특이한 화가이다.

구교인 가톨릭이 지배적이었던 남부 이탈리아와 스페인과는 달리 북유럽의 플랑드르 지역의 속했던 네덜란드는 점차 구교에서 탈피하여 신교지역으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그 이전 시대에는 부유한 교회나 왕실의 주문에 따라 거대한 규모의 종교화나 역사화가 흔히 제작되었지만, 렘브란트가 화가로서 활동하던 시대의 네덜란드는 무역이나 금융으로 큰 재산을 일군 부유한 평민, 즉 부르주아의 기호에 맞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혹은 풍속화가 선호되던 시대였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렘브란트는 지속적으로 종교화를 제작하였다. 비록 초상화가 자신에게 화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가져다 주기는 했으나, 렘브란트는 애초에 다른 분야보다 역사화와 종교화에 더 큰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렘브란트 종교화가 지닌 특징은 작품이 종교적 주제를 묘사하고 있음에도,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성서에 따른 개별적 서사나 교훈보다는 보편적인 정념과 감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성찰에 좀 더 주목하게 된다는 점이다.

〈욕실에서 나온 밧세바〉와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구약성서〉에서 밧세바는 다윗 왕을 유혹하여 자신과 음욕에 빠지게 하고,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의 남편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는 음녀이자 악녀로 흔히 해석된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이 그림에 나오는 밧세바는 〈구약성서〉의 서사와 정통 기독교 교리의 해석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참으로 미묘한 슬픔과 고뇌의 표정을 짓고 있다. 종교적 해석을 떠나서 감정을 지닌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쩌면 렘브란트가 그린 밧세바가 보다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미술작품에서 무엇이 최고의 작품인가 하는 물음에 정해진 답은 없다. 다만 렘브란트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는,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돌아온 탕자〉를 가리키는 사람이 많다. 이 그림은 1661년에 붓을 들어 렘브란트가 작고하던 해인 1669년까지 그리던 작품으로, 끝내 미완성인 채 그가 남긴 마지막 유작으로 전해진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둘째 아들이 어느 날 아버지에게 청하기를, “아버지.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재산을 전부 나눠 주실텐데, 그걸 미리 저한테 주시면 안되나요”라고 하였다. 묵묵히 듣던 아버지는 말없이 둘째 아들 몫의 재산을 나눠주었다. 아들은 그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온갖 향락으로 모두 탕진한 후, 결국은 남 밑에서 돼지 치는 사람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라에 흉년이 들어 아들은 돼지 먹이로라도 배를 채우려 하나 그마저 나눠 주는 사람이 없자, 굶어 죽을 처지에 이르러 후회와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하게 된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는 거지꼴로 나타난 아들을 아버지가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품에 안아주는 장면을 그렸다.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들은 누더기를 걸쳤고, 갑작스런 아버지와의 재회에 한쪽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르고 있다. 아버지는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다만 거지꼴로 돌아온 아들의 등을 두 손으로 쓰다듬고 있을 뿐이다. 아들 또한 자책과 회한이 말문을 막은 듯,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신약성서〉에는 이 순간 아들의 심경을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전한다.

그림 속 돌아온 탕자와 그 아버지의 오른 편에는 지팡이를 짚고 사뭇 못마땅한 얼굴로 아버지와 동생의 재회를 묵묵히 지켜보는 장남이 서있다. 동생을 위해 아버지가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대목에서 장남의 불만이 폭발한다.

“아버지, 저는 지금까지 아버지 말씀을 잘 따랐는데, 저를 위해서는 염소 한 마리도 내어 주지 않으면서, 재산을 몽땅 날리고 돌아온 저 녀석을 위해서는 잔치를 벌이고 송아지까지 잡으시나요.”

아버지는 “얘야. 넌 항상 나와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테니, 내 것이 모두 네 것이지 않느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같으니 우리가 함께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묘법연화경〉 제4품 신해품(信解品)에도 기독교 성서의 ‘돌아온 탕자’와 유사한 ‘장자(長者)와 궁자(窮子)’의 비유가 전해진다. 장자의 아들 궁자는 어린 시절 집을 나갔다. 세간을 50년 동안 유리걸식하기도 하고 남의 부림을 받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던 궁자는, 어느 날 우연히 자기가 떠나왔던 아버지의 집에 당도한다.

자기가 떠났던 그 세월 동안 아버지는 재산을 늘려 큰 부자가 되었다. 집을 기웃거리던 궁자를 자기 아들이라고 한 번에 알아본 장자는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사람을 보내지만, 너무 오랜 세월을 떠돌던 궁자는 이 집이 자기 아버지의 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권세를 지닌 왕가의 집일 것이라는 두려움에 도망쳐 나온다.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간 탓에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아버지는 걸인과 같은 아들을 합당한 자신의 아들로 되돌리기 위해 20년 동안 노력한다. 궁자는 자신의 아버지인줄도 모르며 장자 밑에서 차츰 많은 일을 익혀가며 자신의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그는 하루하루 위태롭고 처절한 환경에서 오로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비열하게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일이 힘든 것이 본질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에게서 비천하다 욕을 듣는 것이 고통이 아니다. 삶이란 작은 수레에 혼자 타고 가는 꽃놀음이 아니라, 큰 수레에 중생과 더불어 가는 것임을 궁자는 깨닫게 된다. 임종에 이른 장자는 마침내 궁자가 자신의 아들임을 말한다.

렘브란트가 그린 여러 점의 자화상은 사실상 붓으로 써 내려간 자서전이다. 풋풋한 젊은 시절 비범한 재능을 한 눈에 보여주는 최초의 자화상은, 등 뒤에서 빛이 비치고 얼굴은 어둡게 표현되어 있어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구별하기가 쉽지 않으나, 이 무명의 젊은이가 유럽 근대 회화의 거장으로 성장할 예감을 보여준다. 화가로서의 명성이 극에 달했을 때 그려진 자화상은 미묘한 홍조를 띤 희고 건강한 피부의 젊은 화가의 확신의 찬 모습을 보여준다. 젊고 화려했던 시절의 자화상은 부유한 부르주아 상인의 초상화와 유사한 분위기이다.

〈야경꾼, 1642〉은 오늘날에는 렘브란트가 남긴 대표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그 독특한 구도와 표현기법으로 인해 초상화가로서의 그의 지위는 일거에 실추되고 말았다. 같은 해에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며 작품 활동을 지속하였지만, 주문상황은 전과 같지 않았다. 재산 관리에 미숙했던 렘브란트는 1656년 법원에 의해 파산선고를 받은 이후,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하고 외로운 노년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사실상 렘브란트는 그 이후에는 다시 화가로서 일어설 수 없었다. 그는 가족과 재산과 명예를 모두 잃었지만, 그림 그리기만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천 몇 백여 점의 작품을 남기고, 1669년 암스테르담에서 유명을 달리 했다. 그의 노년 자화상은 한편으로 차분한 느낌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봄 꽃이 지고 무성한 여름의 숲을 지나 잎새를 모두 떨군 만추의 나목마냥 허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Ernst Gombrich, 1909~2001)는 “렘브란트의 초상화는 인물의 전 인생을 말해준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만년의 렘브란트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 자화상〉을 그렸다. 서양미술사에서 사도 바울의 도상은 흔히 ‘칼과 서한 혹은 성서’의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자화상에서 그는 사도바울의 상징인 ‘칼과 문서’를 들고 있다. 그리고 돌아온 탕자도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다. 이것은 탕자의 비유 곧 사도 바울의 회개와 신에게로의 귀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그리던 시절, 렘브란트도 계속 칼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돌아온 탕자〉는 어쩌면 자신의 삶의 여정에 대한 은유로서의 그림, 즉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장차 유럽 화단의 거장으로 성장할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자화상은 어두운 음영에 눈이 가려져 있었다. 화가로서 최고의 지위를 얻은 밝고 당당한 모습의 자화상도 있었고, 경제적 궁핍에 찌든 노년의 자화상도 있었다.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은 남루한 누더기 의상에 뒤돌아 서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는 헐벗은 아들이다. 덧없는 삶이라는 방랑을 거친 후에 닿게 되는 귀향의 이미지, 이것이 렘브란트가 남긴 ‘구원과 깨달음’의 메시지이다.

렘브란트는 평생 자화상을 그려왔고, 자신이 사망한 해에 제작된 자화상도 3점이나 남아있다. 그에게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은 ‘내가 누구인가’를 묻고, 묻고 또 묻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나를 들여다 보는 일만큼 어렵고 두려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나’를 벗어나 ‘더 큰 나’와 만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렘브란트의 삶과 그의 작품 〈돌아온 탕자〉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귀향의 모티프는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특정한 장소애(場所愛)로 국한되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성경의 ‘탕자’, 묘법연화경의 ‘궁자’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모두 ‘돌아옴’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랜 방랑 끝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향서사는 본래적 자아에 대한 깨달음의 은유다. 본래 자기 안에 있으나 발견하지 못한 그 무엇을 찾아 떠나는 길이 방랑이라면, 귀향은 거칠고 괴로운, 긴긴 방랑을 거쳐서 비로소 도달한 고향집의 문 앞에 서서 느끼는 낯선 친밀함이다.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귀향을 ‘낯설고, 숭고한 존재의 상태 (Unheimlich)’라는 말로 표현했다.

에고에 바탕을 두는 삶은 끝없는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제공하는 탐욕의 충족과 쾌락에 탐닉한다. 본래적 자아에서 멀어져 에고를 쫓아감은 단지 목적지 없이 헤매는 방황일 뿐이다. 반면, 방랑은 본질적 자아를 찾아 매 순간 깨어, 내면적 성장을 경험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 방랑의 여정에서 인간은 에고로부터 벗어나 고요와 자유, 그리고 존재의 기쁨을 통해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인간은 생의 어딘가에서 평생 긴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던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을 열고 나올 수 있다. 멀고 먼 방랑의 끝에 비로소 도달하는 낯설고도 친밀한 비밀의 문, 우리 모두는 언젠가 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 곳이 바로 본래적 자아이며, 그윽한 마음자리요, 곧 진여의 궁극적 진리의 자리일 것이다.

삶이 주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 온갖 번뇌를 지우고 마침내 청정한 지혜에 닿은 듯, 이제는 충분히 늙어버린 렘브란트가 선선한 눈빛으로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하다. ‘역경이 축복이었고, 번뇌가 곧 보리였음을!’

기나긴 여행을 끝내고

근심을 떠나서

모든 속박을 벗어난 사람에게는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탐욕의 깊은 못도 건넜고

명예와 속박에서도 해방되었으며

욕망의 독(毒)도 뿌리째 뽑았기 때문이다.

〈소아함경(小阿含經)〉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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