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 난 것도 둥글게 쓸 줄 알아야 대인이 됩니다
모가 난 것도 둥글게 쓸 줄 알아야 대인이 됩니다
  • 대행 스님
  • 승인 2019.11.29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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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공부하려면 옳고 그르고 이런 걸 따져서는 안 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1(남) 다름이 아니오라 부처님 뜻과 우리 큰스님 원력과 지원에 계시는 저희 스님들 힘을 빌려 광주에 불사가 시작됐습니다. 광주 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큰스님 그것을 짓는 것도요, 불사를 하게 되는 것도 정신계로는 일체 만 불(萬佛), 그 빈손들이 다 같이 더불어 해 주는 거고요, 산 사람들이 전부 마음을 내서 전부 같이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물질을 어디서 가지고 옵니까? 다 만든 사람한테서 가지고 오죠? 그러니까 ‘더불어 같이’예요. 하나도 혼자 하는 게 없어요. 그러니 어느 회사가 양회를 했다 하면 그것도 있어야 되는 거고, 벽돌을 했다 하면 그것도 있어야 되는 거고, 나무를 켜서 말려서 했다 하더라도 그것도 있어야 되는 거고 여러 가지죠. 뭐, 물 불 다 들죠, 거기. 그러니까 혼자 잘나서 사는 게 없고, 혼자 잘나서 하는 게 없다 이 소립니다.

우리가 지금 이 옷 벗을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옷 벗기 전에 이 도리를 꼭 알아 둬야 자기 2세가
또 무의 세계에서 바로 자기를 이끌어 가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 이유로 이 공부는 안 해서는 안 되는 공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내가 혼자 한 게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 대신에 너희도 나한테 준 것이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쪽에서 준 것도 없고 이쪽에서 한 것도 없으니, 없는 가운데 함이 있는 것은 무엇이냐?” 하셨습니다. 그렇게 대천세계의 묘법이 광대무변하다는 얘기죠. 부처님께서 왜 하지를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내가 얘기했죠. 몸뚱이 속에 많은 생명들이, 보살들이 들어 있는데 보살들이 부처님하고 더불어 같이 있어요. 부처님하고 보살하고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이 부처님 마음에서 한생각을 내면 보살들이 되죠. 지장이 되고, 관세음이 되고, 아촉이 되고, 미륵이 되고, 아미타가 되고, 그냥 한생각이면 그렇게 되는 거죠.

그건 자동적으로 수백억의 헤아릴 수 없는 보살들이 그 한마음 속에서 탄생을 해 가지고 그냥 모두 약사도 되고 관세음도 되고 이러는 거니까, 그거는 부처님이 애써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죠, 자동적이니까. 그렇지만 우리 몸뚱이 속에 들어 있는 그 많은 생명들에게 한마음으로 항복을 받아야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얘기죠.

질문자2(남) 저희가 관법(觀法)을 하고 있는데 ‘한마음!’ 하고 ‘한마음 주인공’ 또 ‘마음의 선장’ 이렇게 여러 가지로 부를 수 있는데 그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이 귀신 망치야!’ 이래도 그게 이름이 되는 겁니다. 이 마음만 지극하게 했다면 ‘이 귀신 방귀씨야!’ 이래도 되는 거죠. 허허허…. 사실은 그 이름이 말해 주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의 마음먹는 뜻이 말해 주는 거죠. 그래서 내가 요놈 저놈 한다고 해서 “아휴, 부처님더러 어쩌면 ‘요놈, 저놈, 너’ 이러느냐.” 하는데 ‘너’ 이러는 건 그냥 보통 말하듯이 ‘너’ 이러는 게 아니에요. 아주 귀중하게, 너무도 귀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도 가깝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너라고 그런 거지, 둘로 보지 않기 때문에 너라고 그런 거지 둘로 본다면 모셔야죠. 지극하게 모셔야 되지만, 둘로 보지 않는 까닭에 너라고 하는 것이니 너무나 이게, 그건 아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름입니다.

질문자2(남) 알겠습니다. 저희가 예수재(豫修齋)를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을 천도시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때는 우주 법계의 일체제불 불보살님 등, 귀신까지도 전체 승낙을 얻어야 한다는데, 그때의 예수재라는 거와 또 조상님 천도했을 때의 그 마음 천도하고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좀 알고 싶은데요.

큰스님 예수재는요, 지금 우리 부모가 어디 먼 데를 간다고 했을 때 “이 돈을 가지고 가셔서 사십시오.” 하고, 당장 가서 방을 얻고, 당장 가서 뭐, 쓸 때 쓰고 살 걸 사고 그래야 하니까, 또 뭐 사 잡숫고 싶은 거 사 잡숫고 이러라고 드리는 겁니다. 여기서 혼자 미국으로 보내 드린다면 미국에 가서 그렇게 하고 사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얼른 쉽게 말해서, 노인네들이 금방 옷을 벗으면 혼이 벗어나서요, 지금 이런 공부를 한 분들이라면 죽어서도 감을 다 잡죠. 감만 잡는 게 아니라 인도자까지 생기죠.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생기는데, 보살들이 이끌어 주죠.

그런데 공부를 영 모르고 돌아가신 분에 한해서는 혼백이 그냥 아는 집으로 떠돌거나, 그렇지 않으면 허공에 떠돌거나 그래서 “나는 저기 가야 할 텐데 배가 없어 못 가고 있다.” 하는 혼백들이 있거든요. 내가 그전에 얘기했죠. 빠져 죽을까 봐 못 가고 타 죽을까 봐 못 건너간다고요. 평상시에 우리가 그렇게 인식을 하고 살기 때문이죠. 모습이 있으니까 타 죽고, 모습이 있으니까 빠져 죽고, 그렇게 살던 습이 있어서 죽었는데도 모습이 없이 의식적인 마음만 있다는 걸 모르죠, 이제. 그래서 그렇게 떠돌게 되죠.

그러니까 그렇게 떠돌다가 잘 걸리면 좋지만…, 영혼들이 원래는 질서 정연하게 이렇게 가다가, 단속을 하고 그래 가지고서 이름을 불러서 개개인을 차원대로 보내 주게 돼 있죠.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떠도는 혼백들이 있어요. 지금 우리 국가에서 사는 거나 똑같아요. 그러니까 그러한 분들을 위해서 천도를 하게 되면, 그분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집은 서너 번 해야 되는 집이 있고, ‘아, 저 집은 참 갸륵하다, 모두 잘들 지내고 잘들 살아서 저렇게 천도를 시키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집도 있어요. 그래도 자손들이 하겠다고 그럴 때는 ‘그러면 하시라’ 이렇게 하는 건 자손들이 부모를 생각하는 그 마음, 기리는 마음을 그대로 연장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천도재를 안 해도 되는 집이 많아요. 덮어놓고 돈이나 벌고 그러려면야 뭐, 그저 누구나 다 그냥 하라고 하겠지만 난 어떤 땐 그래요.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러죠. “이다음에 벌어서 부모한테도 효도할 수 있을 때 그때 해.” 그럽니다. “어려운 집에서 남의 돈 취해다가 하면 그거 괴로워서 어떻게 살아? 그러니까 부모들도 다 알고 계시니까 알아서 해.” 하고 도로 줍니다. 때로는 모르는 사람이 내 행동을 볼 때는 어려운 집이니까 조금 가져와서 안 받는다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어려운 집에서 몇십만 원이라는 것이 큰돈이죠. 어려운 집에선요.

질문자2(남) 그리고 국내외로 잦은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데, 사고를 당한 사람으로서는 뭐, 출가자도 있을 수 있고, 기복 불교자도 있을 수 있고, 또 저희같이 이렇게 관법을 공부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또 종교를 안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거기서 국내 전체로 해서 천도를 시키고 그러는데, 그때 어떤 사람이든지 다 천도가 되는지, 아니면 불법만 믿어도 그냥 천도가 되는지 좀 알고 싶습니다.

큰스님 이게 이렇게 되죠. 내 마음의 주인을 가지고, 내 집을 지키면서 이렇게 나가는 주인이 있다면 금방 닥쳐오는 거를 팍 대치를 해서 그냥 탁 처리하는데, 기복으로 믿는 사람은 불러서 끌어다가 이렇게 하려니까 시간이 걸려서 죽고 난 뒤에 오는 거죠. 얼른 쉽게 말해서요. 그렇게 되는 거고, 또 그렇게도 안 하는 사람들은 안 하는 대로 그냥 자기가 지은 대로 산 대로 그냥 가는 거죠.

질문자2(남) 결국은 천도가 된다고 볼 수 없겠는데요.

큰스님 그거는 우리가 장담을 못 하는 게 뭐냐 하면요, 우리 지금 여기 신도님들이 얼마만큼 자기가 자기 주인을 믿느냐에 따라서, 집주인이 얼마나 대치를 해 주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겁니다.

질문자2(남) 네. 그리고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귀의한다고 그랬을 때에, 그중에 스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그 스님들 마음의 공(空)자리에 귀의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무발승 제자분인 그분들한테 귀의한다는 내용이 되는 것인지 한번 여쭙겠습니다.

큰스님 대통령을 믿으면 비서도 믿듯이 말입니다.

질문자2(남) 네.

큰스님 그러니까 대통령과 비서가 이 법을 모두 배출시키거든요, 법을 향해서. 불(佛), 즉 말하자면 부처님 마음에서, 부처님이 아니더라도 깨쳤다면 모두 부처님이죠. 마음에서 이렇게 그 법을 정하면 그걸 받아서 불과 승(僧)이 둘 아니게 법을 배출시킨다라는 얘기죠, 중용으로.

질문자2(남) 알겠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저희가 머리를 안 깎았더라도 공부를 해서 법이 수승하다면 스님들께서도 그 사람을 초청해서 법문을 들을 수가 있는지?

큰스님 그거는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유마힐 거사 당시에 부처님도 계셨고 유마힐 거사도 있었는데 그때에 부처님도 유마힐 거사의 그 마음을 동등하게 여겨 줬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동등해도 유마힐 거사가 떨어지느냐 하면 벌써, 부처님 탈을 쓰지 않았다는 얘기죠. 탈을 쓰지 않고 그대로 실천을 하는데, 가르쳐 주는 거는 부처님과 유마힐 거사가 동등하게 같이 그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얘기죠. 부처님이 할 수 없는 거를 유마힐 거사가 하시고, 유마힐 거사가 할 수 없는 거를 부처님이 하시고 이렇게요. 이게 마음을 깨달았으면 서로 둘이 아니게 통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막 같이 돌아갔으니까요.

질문자2(남) 저희 선원에서도 역대 조사님 같은 분들도 많이 나와야 되겠고 또 유마힐 거사님 같은 분들도 많이 나와야 될 텐데, 우선 자기의 자성(自性)을 보려면 자성 화두가 나와야 될 것 같은데 거기에 가장 지름길로 가는 방법을 지금 스님께서는 주인공한테 돌려놓고 또 맡기고, 이렇게 하셨는데 그것 외에 자기 참회나 요런 것이 더 어떻게 겸비되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거 외에 더 할 것이 있는가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큰스님 그거 외에 할 것이 있죠. 왜냐하면 지금 회장직이라든가 또 고문직이라든가 또는 총무직이라든가 부회장님직이라든가, 또 아니라 할지라도 모두 공부가 진짜로 그렇게 되려면, 그르고 옳고 이런 걸 따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자기 공부가 벌써 아니 되죠. 모가 난 것도 둥글게 쓸 줄 알아야 대인이 되죠. 요거는 요렇게 탈을 잡고 저거는 저렇게 탈을 잡고 이런다면, 그 탈이 난 거와 탈이 안 난 거를 한데 합쳐서 내가 소화를 시키지 못하니까 다 얻을 수가 없죠.

그러니까 용도에 따라서 그것을 다 초월하고 대치해서 넘기려면, 아주 못하는 사람도 잘하는 사람도 그저 둘 아니게 보고, 저쪽에서 이쪽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한다고 듣더라도 그건 자기가 ‘그러냐’고 듣고 지켜보는 그런 사람이 돼야지, 이 말을 또 저쪽에다 딱 그냥, 그렇게 잘못하고 나가느냐고 해서는 안 되죠. 그러니까 모두가 공부를 하려면 둥글게 말할 줄 알고, 모가 난 것도 둥글게 행할 줄 알고, 우리가 원형으로써 하면서도 찰나찰나 법이 서 있단 얘기죠.

질문자2(남) 네, 질문 다 했습니다.

큰스님 다 하셨어요? 아주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하하….

질문자3(남) 법상 앞에서 이렇게 뵙긴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큰스님 네.

질문자3(남) 지금 처음 공부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제 체험담으로 인해서 잘못되는 것이 있다면 죽비는 제가 맞고요, 또 지금 저와 같이 잘못 가시는 분들에게도 경계가 되어서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맞는 건 맞는 대로 도움이 될 것이고, 또 틀린 건 틀린 대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가 그동안의 체험담을, 공부 아닌 공부를 한 거를 말씀드리고 점검을 받고자 합니다.

제가 동생의 소개로 처음 여기 법당 안을 들어섰을 때는 지금 저기 앉아 계시는 부처님이 안 계셨습니다. 그 전날에 제가 아주 참 신비한 꿈을 꿔서 그 꿈 해몽을 해 달라고 동생 집에 갔다가 그 동생이 ‘아, 그렇지 않아도 오빠한테 연락을 하려고 하던 참인데 잘 오셨다’고 하면서 결국 선원에 오자고 인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동생이 가자는 대로 자석에 끌리듯 이곳에 와서 그때 처음 스님께서 하시는 법문을 듣고, 바로 이 법당에 들어와서 동생과 같이 함께 잠시 참선 정진에 들어갔었습니다.

그 시간은 불과 한 4, 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리에 앉아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자마자 이 법당 안 전체가 붉은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기 벽에 원이 그려져 있는 그 부분에서는 조그마한 불빛이 일어 가지고 제게 다가왔고 그 사이에서 파란 불빛 하나가 다가오면서 커졌습니다. 커졌는데, 그 커진 불빛 자체가 텔레비전 화면처럼 화면이 되었고, 그 화면 속을 들여다보니 나 아닌 나가 절벽 밑 개울가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합장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절벽 위를 이렇게 쳐다보니 어느 한 여인이 하얀 두루마기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긴 마후라는 머리를 감싸 목 밑에 맸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게 참 얘기 그대로 선사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다른 분이 아닌 대행 스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손에는 한 3미터 정도의 기다란 채찍을 들고 계셨는데 그 아래 정진하고 있는 나 아닌 나를 향해서 세 번 채찍질하시면서 “정진하라, 정진하라.”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 찰나 그 채찍 끝이 제 옆구리에 와서 세 번 철썩철썩 와 닿는 느낌과 동시에 그때 참선에서 깨 가지고 하도 신비해서 일어나서 동생한테 얘기를 했더니 ‘바로 오빠가 공부할 곳은 여기니까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지금 가서 다시 대행 스님을 뵙도록 하라’ 그래서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대행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모든 사람들이 같은 나이에 같은 병이 들었어도 의사의 처방이 따로따로 나오듯이, 스님께서 저의 자초지종을 들으시고 하시는 말씀이 경도 보지 말고, 책도 보지 말고, 그때 당시 또 다른 절에 나가면서 가지고 다니던 『천수경』하고 『반야심경』, 「법성게」가 들어 있는 수첩이 있었는데, 그것도 빼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정진으로만 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아무런 의정도 없었고 사십 평생에 처음 있었던 체험이라 무조건 믿었습니다, 그걸.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그다음부터 일어났던 체험담은 다음으로 미루고, 경을 보지도 말고 정진으로만 일심으로 밀고 나가라고 했던 그때 당시의 스님의 말씀을 작년 10월 달에 제가 의정을 삼았습니다. 이유가 뭐냐 그러면 제가 뜻밖에도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 당시에 대행 스님께서는 저에게 경도 보지 말고, 책도 보지 말고, 그렇게 일심으로 정진에만 몰두하라고 하셨나 해서, 도대체 경이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무슨 역할을 하는가를 내 자성에 맡겼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에 자성에서 이르기를 “경은 결코 씨앗이 될 수 없느니라. 경은 내 마음의 논밭을 일구고 내 마음의 잡초를 걷어 주는, 마음의 논밭에 잡초를 걷어 주는 도구와 같으니라. 또한 너희가 몸에 때가 묻었을 때 때를 씻어 주는 목욕물과 같은 것이지 결국 씨앗은 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씨앗은 도대체 뭘 보고 씨앗이라고 하느냐?” 라고 다시 또 되맡겼습니다. 그러자 내 자성에서 이르기를 “씨앗은 바로 너의 행이 씨앗이니라. 그리고 이 씨앗은 곧 업인데 너의 행이 바르지 못했을 때는 그게 악업이 되고 너의 행이 바를 때는 선업이 되는 건데, 그 업 또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행에서 비롯되는 것이니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과거 현재 미래 이것이 바로 행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과거니 현재니 미래니 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한생각 내는 게 미래였고, 또 그걸 실천에 옮겨서 행했을 때가 현재였고, 그것이 끝났을 때가 과거여서 그 행이 끝난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는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다시 내 자성에 “그럼 그 근본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고 다시 맡겼습니다. 그러자 내 자성에서 이르기를 “이 지구는 자전과 공전으로 인해서 밤과 낮이 생기는데 낮이 되었을 때는 밤은 어디로 가더냐?” 했습니다. 또 “밤이 되었을 때는 낮이 어디로 가며 낮이 되었을 때는 밤이 어디로 가냐?”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공전으로 해서 사계절이 생기는데 봄이 되었다가 여름이 오면 봄은 어디로 가더냐? 또 가을이 오면 여름은 어디로 들어가더냐?”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름 장마철에 뇌성벽력이 이는데 그 뇌성벽력은 어디서 나왔다가 어디로 들어가더냐? 또한 뇌성벽력으로 인해서 천지가 진동하는데 그 진동 소리는 어디서 나왔다가 어디로 들어가더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차, 바로 이거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항시 대행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본래 자리가 바로 여기였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저도 모르게 한 번 손뼉을 쳤습니다. 치면서 하는 말이 “일타만타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손뼉은 왜 쳤으며 일타만타는 뭔가 했더니, 바로 일타는 우리가 어두운 방 안에서 부싯돌을 한 번 번쩍 튀겼을 때에 방 안의 모든 물체가 번쩍하는 순간에 보이듯이, 우리가 마음 한 번 내고 한마디 하고 던지는 그거는 어느 한 곳으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사방 천지 두루 흐른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손뼉을 한 번 치는 건 무슨 뜻이냐고 다시 맡겼더니 “그 손뼉 한 번 치는 속에 이 세상 천지만물을 비롯한 온 우주가 그 안에 들어 있느니라.” 그렇게 얘길 해서 ‘아, 그게 부싯돌 한 번 튀기는 거와 같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자성에서 다시 이르기를 “이 세상 모든 업전의 흐름은 산울림과 같으니라.” 이렇게 했습니다. 산울림과 같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말씀이 옳은 것 같았습니다. 그거는 우리가 산 위에서 좋지 않은 소리를 질렀을 때는 분명히 돌아오는 거는 좋지 않은 소리가 돌아오고, 또 우리가 좋은 소리를 던졌을 때는 분명히 좋은 소리가 돌아오는 것, 그 이치와 같이 “산울림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도리는 명심해서 알아 둬야 되느니라.” 하면서 얘기하기를 “경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앞서 가는 노인의 짐 한 번 같이 나누어 들어 줌만 못하고 또 염불을, 즉 말하자면 주문을 아무리 많이 외우고 절에서 절을 아무리 많이 했다 하더라도 길 잃은 노인의 길 한 번 바르게 인도하여 집 찾아 줌만 못하고, 초하루 보름에 아무리 음식을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두 손이 그야말로 종잇장이 되도록 빈다 하여도 옆에 배고픈 사람과 한술 밥 나눠 먹음만 못하느니라. 이 도리를 아는 자만이 지옥으로 가는 길, 극락으로 가는 길, 또한 열반으로 가는 길이 따로 없는 줄 알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바로 이 세계는 내 유무공(有無空)으로다가, 그러니까 말하자면 극락, 지옥, 열반 세계가 다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생각이 잘못됐는지, 모든 것은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장하오다, 네. 장해요.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데, “할” 하고 한 번 하는 거와 손뼉 한 번 치는 거와 뭐가 다르겠소. 지팡이 한 번 쳐서 울리는 거와 뭐가 다르겠소. 하지만 한 번 손뼉을 치지 않아도 친 것과 둘이 아니게 할 수 있는 그런 법도 있소. 그러니까 열심히들 해서 저 처사의 소리를 듣고 귀감을 삼기를 바라요. 모두가 참 지극히 잘했어요. 잘했다는 건 말뿐이지 상은 자기가 보이지 않는 데서 받겠지. 알았어요. 하여튼 여러분이 다 한 시루에서 콩나물이 잘 자라서 모든 사람들이 다 맛있게 먹을 수 있게끔 됐으면 참 좋겠어요. 감사해요.

(합장하시며) 그럼 이제 내려가도 됩니까? 하하하…. 하여튼요, 웃으면서 그냥 넘길 게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옷 벗을 날이 얼마들 안 남았어요. 옷 벗기 전에 이 도리를 꼭 알아 둬야 자기 2세가 또 무의 세계에서 바로 자기를 이끌어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안 해서는 안 되는 공부입니다, 이게.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4년 12월 4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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