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융합으로 공안선 시대 열다

법안문익 개산… 5가 중 마지막
앞선 4가 아우르며 中선종 완성
‘화엄+선’ 선교융합 종풍 강조해
천태덕소·현칙 감원 등 법통 계승

법안종을 개산한 개산조 법안 문익 선사(사진 왼쪽)와 그의 법통을 이은 제자 천태 덕소 선사(사진 오른쪽)의 진영. 법안종은 선종 5가 중 가장 늦게 성립됐지만, 앞선 종파를 아우르며 중국 선종을 완성시켰다.

법안종 개산조 문익의 행적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이 개산한 법안종은 선종 5가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성립된 선종이다. 늦게 성립되었지만 앞의 4가를 아우르는 측면이 있어 선종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동시에 중국 선종이 완성되었다.

법안은 절강성(浙江省) 여항(餘杭) 출신으로 7세에 출가하였다. 월주(越州) 개원사(開元寺)에서  구족계를 받고, 아육왕사의 희각율사 문하에서 율을 익히고 유학 등을 배우며 교학에 몰두했다.

법안은 복주의 장경 혜릉을 참문하고도 수행에 진전이 없었다. 어느 해 법안은 도반들과 함께 행각하는 와중, 폭우를 만나 복건성(福建省) 지장원(地藏院)에 머물게 되었다.〈전등록〉 

지장원은 현사 사비에게 법을 받은 나한 계침(羅漢桂琛, 867~928)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법안 일행은 하룻밤을 묵은 뒤 떠나려고 나한에게 인사 올렸다. 그러자 나한이 물었다.
“상좌는 어디를 가려고 하는가?”
“여기저기 행각하고 있습니다.”
“행각의 의도가 무엇인가?”
“잘 모르겠습니다.”‘잘 모르겠다’는 이 말에 동행들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한다. 다시 나한이 법안에게 물었다.
“불교에서는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이고 만법(萬法)은 오직 식(識)’이라고 하는데, 상좌는 이 뜻을 아는가? (잠시 후, 나한이 뜰의 바위를 가리키며)그렇다면 저 바위는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대는 행각하는 중이라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저 무거운 돌덩이를 마음에 담아 가지고 다니는가? 얼마나 무겁겠는가?”     
법안은 나한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도반들이 모두 떠나고 법안만 절에 남아 한달 동안 열심히 궁구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한이 먼저 법안에게 말했다.
“참다운 불법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네.”
그 후 법안은 나한의 말에 대오를 하였고, 얼마 후 법을 받았다. 법안의 나이 43세였다.

이후 법안은 강서성(江西省) 임천(臨川) 숭수원(崇壽院)·강소성(江蘇省) 금릉(金陵) 보은원(報恩院)·청량원(淸쏐院) 등지에서 크게 선풍을 떨쳤다. 958년 74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시호는 대법안선사(大法眼禪師)이며, 저서로는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문익선사어록(文益禪師語錄)〉이 있다.
법안의 저서인 〈종문십규론〉은 당시 선가의 병폐(문제점)를 신랄하게 비판함과 동시에 수행 방향을 시정코자 하였다.

이 논은 모두 10단락으로 나누어 있으며, ‘5가’란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5가의 선사상을 요약하였다. 그들은 옛 조사가 도에 들어가는 ‘기연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그것을 ‘일로 삼아 반드시 결택(決擇)하여 분명하게 하는 것을 귀중히 여겼고’, ‘공안으로써 공부의 길을 채찍질했다’는 것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간화선 이전, 수행의 길라잡이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법안의 심인(心印)을 고려에 전한 사람은 광종 때의 혜거(慧炬, ?~974)국사이다. 또 법안의 고려 제자로는 노감(露鑑)이 있다.

법안종의 선풍
법안이 화엄사상(참다운 불법은 있는 그대로)을 통해 깨달았듯이 법안종의 종풍은 화엄+선인 선교융합적이다. 〈법안록〉에 ‘삼계유식송’이 있다.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며, 만법은 오직 식(識)이다./ 오직 식이며, 모든 것이 마음뿐이라면/ 눈으로 소리를 듣고, 귀로는 색을 보아야 하건만/ 색이 귀에 이르지 못하는데 소리인들 어찌 눈에 닿겠는가! /눈으로 색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어야 만법을 이루리라(일체의 존재가 식별됨)./ 만법이 인연이 아니라면 어찌 허깨비와 같은 (만법을) 관찰할 수 있겠는가!/ 산하대지에 도대체 무엇이 영원한 것이고, 무엇이 무상한 것인가!(三界唯心 万法唯識 唯識唯心 眼聲耳色 色不到耳 聲何觸眼 眼色耳 万法成辦 万法匪鍍 폈밖如幻 山河大地 誰堅誰變)”

삼계유심·만법유식이란 우리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내용이 마음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함을 시사한다. 즉 우리가 느끼고 보는 모든 외부 경계는 자기의 마음을 벗어나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은 법안의 ‘원성실성송(圓成實性頌)’이다.

“지극한 이치는 생각이나 말조차 없는 것, 어찌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겠는가?/ 서리 내린 밤, 달이 내려와 무심히(任運) 시냇물에 떨어진다./ 과일이 익으니 원숭이와 함께 더욱 더 무겁고/ 첩첩산길에 길을 잃은 듯, 석양빛 보려고 머리를 드니/ 원래부터 서쪽인 것을….(理極忘情謂 如何有嶋齊 到頭霜雪夜 任運落前溪 果熟兼猿重 山長似路迷 휿頭殘照在 元是住居西)”

여기서 원성실성은 원만히 모든 것을 깨달아 마친 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법안은 이런 마음을 가을 달에 비유하고 있다. 법안이 말하는 원성실성은 그대로 무심의 세계인 선의 경지인데, 모든 것은 진여의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본대로 법안의 선풍은 화엄사상과 선의 결합인 선교융합이다. 한편 법안종의 선풍은 강남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북송 시대로 접어들면서 쇠퇴하였다. 하지만 염롱·게송·착어 등 법안종의 선풍은 송대 송고(頌古) 문학과 공안선 시대로 전개되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법안종 2세 천태 덕소
천태 덕소(天台德韶, 890~972)는 법안의 제자로서 천태학과 선의 융합을 도모하였다. 천태는 절강성 처주부(處州府) 용천현(龍泉縣) 사람으로, 18세 때 출가하였다. 출가 후에 여러 선지식을 만나기 위해 다녔는데도 깨닫지 못했다. 천태가 당시 찾아다닌 선지식이 54명이라고 할 정도로 천태는 스승과 법연이 없었다. 천태는 마지막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법안을 찾아갔는데, 인연이 되었다. 법안은 첫 눈에 천태의 근기를 알아보았다. 

덕소가 법안의 도량에 머물던 어느 날, 한 승려가 법안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계의 물 한 방울입니까(如何是曹源一滴水)?”
“조계의 물 한 방울이다(曹源一滴水).”
법안이 대답을 하자, 그 승려는 뜻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함께 있던 천태가 오히려 법안의 말에 개오하였다. 천태가 자신의 오도(悟道) 경지를 법안에게 아뢰니 법안이 말했다. 
“그대는 뒷날 마땅히 국왕의 스승이 되어서 조사의 도를 크게 빛낼 것이다. 나는 그대의 근기에 미치지 못한다.” -〈법안록〉·〈직지심경〉

이렇게 법안은 제자 천태에게 겸손하였다. 이런 기연을 계기로 천태는 법안의 법을 받았다. 이후 천태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절강성(浙江省) 천태현(天台縣) 천태산으로 옮겨가 천태 지의(天台智?, 538~597)의 유적을 중수하였다. 이후 사람들은 선사를 ‘천태지자의 후신’으로 여겼다. 

당시에는 천태 교학이 거의 소멸된 상태였다. 천태는 사신을 보내어 고려 충의왕(忠懿王)에게 고려에 유통되고 있는 천태교전을 그대로 베껴 올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단절 위기에 놓여 있던 천태교학이 부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천태 덕소는 선종 승려이면서 천태교학에 마음을 기울여 ‘선+천태’의 선교융합적인 토대를 이루었다. 이런 면은 후대 중국 근대 승려들에게도 나타난다.

971년 천태산 화정(華頂)의 서쪽 봉우리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온 산천이 진동하였다. 천태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제자들에게 공포한 며칠 후에 열반에 들었다. 세수는 82세, 법랍은 65세였다.

법안종 2세 현칙 감원
법안 문하에 현칙(玄則) 감원이 있다. 감원(監院)이란 사찰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소임으로 현 우리나라로 치면, 부주지격에 해당한다. 그런데 현칙은 스승인 법안에게 법을 묻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법안이 감원에게 물었다.

“자네는 이곳에 머문 지 23년이 되었는데, 어찌하여 내게 법을 묻지 않는가?”
“스승님에게 묻지 않는 것은 별 뜻이 없습니다. 저는 이미 청봉(靑峰) 선사 문하에서 한 소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어디 한번 자네가 얻은 경지를 말해보아라.”
“제가 청봉선사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선사가 ‘병정동자래구화(丙丁童子來求火)’라고 답했습니다. 그때 선의 경지를 얻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대가 잘못 안 것 같구나. 한번 설명해보아라.”
“병정이라고 하는 것은 ‘병(丙, 火의 兄)’과 ‘정(丁, 火의 弟)’으로, 모두 불을 취급하는 신을 말합니다. 화신(火神)이 불을 구하고 있는 것은 마치 부처가 부처를 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너 따위가 알 리가 없지, 네가 잘못 알고 있군.”

현칙은 스승의 이 말에 불쾌감을 드러내고, ‘이런 스승 밑에 있어봐야 내가 이득될 게 없을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찰에서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그렇게 도망을 나가 양자강을 건너 멀리 떠났다. 그러다 갑자기 스승의 말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스님 같은 분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면,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법안에게 돌아갔다. 마침 이 무렵, 법안도 현칙이 떠난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현칙 수좌는 아까운 수좌이다. 다시 돌아온다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정각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현칙이 돌아와서 스승에게 사죄 인사를 드리며, 법안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병정 동자가 불을 구하는구나(丙丁童子來求火).”
-〈벽암록〉 7칙   

이는 ‘본래 모든 것을 구족하게 갖춘 부처인데, 새삼스레 다시 부처가 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미이다. 실라성의 미남자 연야달다가 머리를 갖고 있으면서 머리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머리를 갖고 있으면서 머리를 찾는다는 장두멱두(將頭覓頭)는 〈수능엄경〉4권에 수록되어 있다. 마음 밖을 향해서 부처를 찾으려는 어리석은 이들을 훈계하는 내용이다.

이 말에 현칙은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현칙은 이전 선사에게서 첫 번째 깨달음을 얻었고, 법안에게서 대정각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처음 깨달음이나 두 번째 깨달음이나 같은 내용이지만, 법안과의 기연으로 깨달은 것은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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