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무명장야(無明長夜)

중생(인간)은 매우 똑똑하고 현명하다. 혹자는 어리석다고 하지만 선과 악, 의(義)와 불의가 있음을 발견한 것도 중생이고, 진리와 번뇌, 극락과 지옥, 부처와 중생의 세계가 있음을 발견한 것도 중생이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에서는 우리 인간(중생)의 마음속에는 선악이 공존하고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는 바탕인 진여문(진여, 진리로 가는 길)과 중생으로 전전하게 되는 생멸문이 공존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는 당사자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인 중생은 악(惡)과 무지(無知), 탐욕과 어리석음에 싸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싸여 있지만 싸여 있는 줄도 모른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지와 무명,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 그곳으로부터 해탈하라“고 했다. 무지, 무명은 탐(貪, 탐욕), 진(瞋, 분노·증오), 치(痴, 어리석음·무명·무지) 삼독 가운데 치(痴)와 같은 뜻이다. 어리석다는 것은 다름 아닌 무지, 무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명은 불교에서 가장 싫어하는 존재 중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힌다. 그 이유는 무명이 깨달음과 반야지혜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인데, 불교에서 수행이란 다름 아닌 이 무명을 제거, 추방하는 작업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무명은 마음이 사견(邪見, 잘못된 생각)이나 망집(妄執, 집착)에 싸여서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어두운 긴긴 밤에 비유하여 무명장야(無明長夜)라고 한 것이다. 미혹에 가려서 지혜 광명을 보지 못하고 끝없이 생사고해 속을 헤매고 있으므로 긴긴 어두운 밤에 비유한 것이다. 〈법구경〉에서는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은 시구로 설하고 있다.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어라.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어라.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생사의 밤길은 길고도 멀어라.”

필자가 어렸을 때 살았던 강원도 산골은 겨울이 무척 길었다. 산이 높아서 오후 4시가 되면 어둡기 시작하여 6시 경에는 칠흑 같은 밤이 되었다. 무명장야. 다음날 9시나 되어야 햇빛을 볼 수 있었다. 두메산골의 겨울은 12월이면 눈이 쌓이기 시작하여 이듬해 3월이 되어야 녹았다. 산골의 겨울은 곧 무명장야였다.

무명은 진리에 어두운 것을 뜻한다. 진리에 어두워서 돈, 명예, 이성, 증오심, 분노 등 갖가지 욕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평이하게 말하면 현명하지 못함, 지식적 바탕이 없는 것, 지혜가 없는 것(無智) 등을 가리킨다. 동의어로는 생사장야(生死長夜)라고 한다. 태어나고 죽는 육도윤회의 기나긴 밤이라는 뜻이다.

또 무명은 한 인간의 행복이나 삶을 망치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잡아합경〉 제334경(有因有緣有縛法經)’에는, “비구들이여, 바르지 못한 생각으로 인하여 무명(無明)이 시작되고 무명으로 인하여 갈애(愛, 집착과 애욕)가 시작된다.”고 하였는데, 이 갈애(집착과 애욕과 탐욕)로 인하여 결국엔 업을 짓고 그 업(잘못된 생각과 가치관)으로 인하여 불행한 삶이 시작된다.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12연기가 있다. 12연기는 생노병사의 윤회가 시작되는 과정을 12단계로 설명한 것인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무명이다. 다시 말하면 무명, 무지,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나쁜 업을 짓게 되고, 그 업(業)이 원동력이 되어 12연기의 윤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조폭이나 범죄의 악순환에 한번 엮이면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들듯, 한번 윤회의 고리에 엮여 들어가면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윤회를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은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지만 동시에 무명과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무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8정도를 실천하면 된다. 바른 견해, 생각, 말, 행동, 생활 등을 실천하는 한편, 나쁜 업을 쌓지 말아야 한다. 나쁜 업이란 신구의(身口意)로 짓는 나쁜 행동, 말, 생각 등인데, 결국 이것 때문에 악업을 짓는다. 바르지 못한 언행을 반복하게 되면 그것이 곧 업이 된다. 우리의 삶도 좋지 못한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그것이 습관화되고 곧 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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