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보수개당 4

[評唱 4]

後到洞山聰和?處 又參大愚芝. 芝嗣汾陽昭 雲峰悅承嗣芝. 悅與雪竇游從最久 久參臨濟正法眼藏宗旨 雪竇最得芝和?提誨. 所以雪竇會臨濟宗風.

(설두는) 뒤에 동산 총(洞山 聰) 화상의 처소에 갔고, 또 대우 지(大愚 芝)를 참례했다. 지(芝)는 분양선소(汾陽 昭)의 법을 이었고, 운봉 열(雲峰 悅)은 지 스님의 법을 이었다.

운봉 열과 설두가 가장 오래 동안 (지 스님을) 따라 다니며 임제(臨濟)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종지(宗旨)를 오래도록 참구했는데, 설두가 지 화상의 가르침을 가장 잘(깊이) 얻었다.

그래서 설두가 임제 종풍을 알았던 것이다.

雲峯悅知雪竇不嗣芝 一日與游山 特去勘他 問云 “入荒田不揀 信手拈來草 觸目未?無 臨機何不道” 雪竇拈起一莖禾示之. 悅不肯 云 “夢也未夢見在” 雪竇云 “?不肯?休” 雪竇知臨濟下宗風. 所以如此.

운봉 열이 설두가 지 화상의 법을 잇지 않은 것을 알고, 하루는 함께 산을 거닐다가 특별히 그를 감변하려 했다.

(운봉이) 물었다.

“거친 밭에 들어가 가리지 않고 손 가는 대로 풀을 집어 드니 눈 닿는 대로 일찍이 없던 것이 아니거늘, 때가 되었는데도 어째서 말하지 않습니까?”

설두가 벼 한 줄기(一莖禾)를 들어 보였다.

운봉 열이 긍정하지 않고, 말했다.

“꿈속에서도 보지 못했군요.”

설두가 말했다.

“너는 바로 쉬는 것을 긍정하지 않는구먼.”

설두는 임제 문하의 종풍을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拈因這緣道 “保壽三聖 雖發明臨濟正法眼藏 要且只解無佛處稱尊. 當時這僧若是箇漢 ?被推出 便與推倒禪牀. 直饒保壽全機大用 也較三千里” 敢問諸人. 只如保壽打這僧 是全機 不是全機.

이런 인연으로 염해서 말하기를 “보수와 삼성이 비록 임제의 정법안장을 드러내 밝혔을지라도, 다만 무불처(無佛處)만 알고 이를 최고로 여긴 것이다. 당시에 이 스님이 만약 이런 사람(是箇漢, 본색 납자)이였다면 밀려나자마자 바로 선상을 엎어버렸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설사 보수의 전기대용일지라도 삼천리나 차이가 났을 것이다”고 하였던 것이다.

외람되지만 여러분에게 묻겠다. 그렇다면 보수가 이 스님을 친 것은 전기(全機, 전기대용=대기대용)인가, 전기가 아닌가?

只如雪竇道 “這僧當時若是箇漢 ?被推出 便與?倒禪牀” 當時若便?倒禪牀 被保壽劈脊便棒時 又作?生. 到這裏須是頂門具眼 方可見得他. 若未能如此 也須退步體究看. 是箇什?道理. 敢問諸人.

다만 설두는 말하기를 “당시에 이 스님이 만약 이런 사람(是箇漢, 본색 납자)이였다면 밀려나자마자 바로 선상을 엎어버렸을 것이다”고 했다. (그런데 이 스님이) 당시에 만약 바로 선상을 엎어버리고 저 보수의 등판때기를 후려갈겼다면 또 어땠을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정수리에 안목을 갖춰야(頂門具眼) 그것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할 수 없다면 모름지기 뒤로 물러나 몸소 참구해봐야 한다. 이것은 무슨 도리인가? 감히 대중에게 묻노라!

?동산 총(洞山 聰)은 동산효총(洞山 曉聰, 생몰연대 미상)을 말하며, 송초(宋初)의 운문종 스님이다. 문수응진(文殊應眞)에게 사법(嗣法), 동산에 머물렀다.

?대우 지(大愚 芝)는 대우수지(大愚守芝, 생몰연대 미상)를 말하며, 송초(宋初) 임제종의 스님이다. 분양선소(汾陽善昭)에게 사법하였다.

?운봉 열(雲峰 悅)은 운봉문열(雲峰文悅, 998~1062)을 말하며, 임제종의 승려로 대우수지에게 사법하였다. 참고로 설두중현의 생몰연대는 980~1052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