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는 거리서 발생
내면의 파시즘 성향 발현 쉬워
군중 이분법적 사고, 증오 증가

타자 존중의 시민의식 선결과제
붓다의 연기법과 자비 속 해답이
‘칠불쇠법’은 불교 민주주의 단초
붓다 가르침으로 시민의식 고양

거리에 민주주의가 넘쳐흐른다. 수많은 깃발과 함성 속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조국 사태’로 인해 한동안 거리에 구호가 가득하더니 각종 단체의 함성이 뒤를 잇고 있다. 이번 주말도 서울 시내 교통통제가 많다는 보도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우민정치로 격하시킨 플라톤이 이 장면을 보면 무엇이라고 할까. 아마도 놀라서 망연자실하지 않을까.

오늘날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바람직한 정치 형태로 평가받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담론 또한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위기의 제일 큰 원인은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다. 즉, 대표자와 다수 시민 유권자 간의 의견이 일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다수의 이름을 빌린 소수자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절차적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심의 민주주의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민주주의가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개념 조작만 하면 누구나 들고 다닐 수 있는 ‘여행용 가방’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붓다 재세 시 마가다국의 왕이 밧지국을 침략하고자 하였다. 마가다국의 왕은 침략하기 전에 붓다의 의견을 구한다. “밧지국을 공격하면 우리가 이기겠습니까?”

붓다는 직답을 하는 대신 아난에게 오히려 질문한다. “아난아, 밧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여 의논하여 정사를 결정한다고 들었느냐?”
“예, 부처님,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왕성하여 오래도록 안온할 것이니 빼앗지 못할 것이다.”

붓다가 아난에게 던진 7가지 질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유명한 ‘칠불쇠법(七佛衰法)’이다. 이를 현대적 용어로 풀면 ‘민주주의를 하는 도덕적 문화국의 내용’이다. 이런 나라는 침범하여 정복할 수 없는 매우 강한 나라이다. 마가다 국왕은 결국 밧지국 침략을 포기하였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이다. 근대 민주주의 첫 시동은 프랑스혁명처럼 거리에서 나왔다. 그러나 의회 민주주의가 성립된 후 민주주의가 거리에 나온다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위기임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거리 민주주의’에는 파시즘의 세균이 침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글에서 말하는 파시즘은 정치 이념이 아니라 사람들의 잠재의식과 일상적 삶의 양식 속에 웅크리고 있는 파시즘적 성향이다. 군중 속에 서면 이분법적 사고 틀에 빠지기 쉽고, 대상을 단순하게 보게 만든다.

증오의 대상이 명확해지고 증오의 용어에 익숙해진다. 영웅이 등장하고 조작된 상징에 흔들린다. 그래서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 정치인은 대중을 광장과 거리에 나오게 만든다. 이성을 철학의 중요 과제로 삼았던 칸트조차도 군중 속에 서면 이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했던가.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여러 전제조건을 요구한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민주시민의식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소프트웨어’이다. 민주시민의식의 기본 틀은 시민이 상대적 진리관을 가지면서, 타자를 존중하고 세상사에 책임감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 즉 연기법과 무아 그리고 자비사상이 바로 민주시민의식의 핵심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민주시민의식의 형성에 연결하여  세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세속제(世俗諦)화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 불교가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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