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적십자 불교봉사회 설립
세계 유일 적십자 불교봉사회 설립
  • 하성미 기자
  • 승인 2019.11.18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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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추자(76) 적십자불교봉사회 초대회장
박추자 적십자불교봉사회 초대회장은 1944년 경남 진해 진영서 태어나 부산 세무서에서 근무했다. 1975년 결혼 해 대한적십자에 가입, 2003년 적십자불교단위봉사회를 창립했다. 2005년 적십자불교지구협의회를 창립했으며 2006년 대한적십자 부산광역지사 표창장을 수상했다. 이후 2008년 사단법인 불국토 특별공로상, 2010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수상했다.
박추자 적십자불교봉사회 초대회장은 1944년 경남 진해 진영서 태어나 부산 세무서에서 근무했다. 1975년 결혼 해 대한적십자에 가입, 2003년 적십자불교단위봉사회를 창립했다. 2005년 적십자불교지구협의회를 창립했으며 2006년 대한적십자 부산광역지사 표창장을 수상했다. 이후 2008년 사단법인 불국토 특별공로상, 2010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수상했다.

전업주부서 봉사회 회장으로
원불교 행사 참여로 봉사 입문
적십자 봉사회 가입으로 활동
가입 1년 만에 단위회 회장
도반·신행 위해 원불교 나와
2003년 적십자불교봉사회 창립
200여 명 활동 대규모 협회로


18세기 말, 유럽에서 전쟁의 상병자 구호 활동을 위해 시작된 인도적 기구 적십자는 오늘날 전쟁 구호 뿐 아니라 재해구제, 질병예방, 민간인 보호 등 활동영역을 넓혀 활동하는 세계적 봉사기구다. 우리나라에서도 1905년 대한제국 때 대한적십자사가 출범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안에는 불자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봉사단체가 있다. ‘적십자불교봉사회. 세계에서 유일하다. 그리고 대한적십자 안에서 운영되는 소규모 단위 기구를 넘어 10개가 넘는 봉사 기구를 운영하는 대한적십자 불교지구협의회가 설립됐다. 불교지구협의회 소속 봉사회 회원들은 불교계 행사를 비롯해 모든 봉사현장에서 늘 적십자가 새겨진 노란 조끼를 입고 활동하며 우리는 불자에요!”라고 외친다. 적십자불교봉사회를 만들고 협의회까지 설립한 박추자 적십자불교봉사회 초대회장을 만났다.

효심(孝心)이 지은 인연

박 회장의 삶은 평범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시부모를 모시고 두 명의 자녀를 둔 전업주부였다. 1975년에 결혼한 후 전업주부로서 한결 같이 살아왔다. 특별할 것도 화려할 것도 없는 주부로서의 삶을 살던 박 회장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지극히 모셨던 시아버지의 타계에서 시작됐다. 박 회장에게 시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시아버지를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낸 박 회장은 슬픔을 극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박 회장은 가족을 위해 일상을 꾸리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는 우연히 신문 광고에서 된장 담그는 행사광고를 보게 됐다. 박 회장은 맛있고 건강에 좋은 된장으로 반찬을 만들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행사장을 찾았다.

평소 어른을 정성스럽게 모셨던 생활 습관 때문인지 박 회장은 힘들고 어려운 일도 척척해냈다. 그런 박 회장의 모습은 금방 대중의 눈에 띄었다. 행사는 원불교에서 주최한 행사였는데, 박 회장의 진심어린 봉사 모습이 행사를 진행했던 담당 간부들의 기억 속에 진하게 남았다. 봉사를 마칠 때 쯤 적십자에서 활동하는 원불교 교도가 박 회장을 찾아왔다. 적십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원불교 교도는 박 회장에게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봉사활동을 권유했다. 그리고 1998년 박 회장은 처음으로 적십자 봉사단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봉사 계기가 됐던 원불교 행사에서 된장을 담그는 박추자 회장(사진 왼쪽).
봉사 계기가 됐던 원불교 행사에서 된장을 담그는 박추자 회장(사진 왼쪽).

적십자불교봉사회 출범

적십자 봉사단에 들어간 박 회장은 봉사에 최선을 다했다. 원불교에서는 적극적이고 진심으로 활동하는 박 회장을 1년 만에 단위기구를 담당하는 운영회장으로 임명했고, 원불교 교도로 영입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박 회장은 불자였다. 원불교 안에서 인정과 신뢰를 받고 있던 박 회장은 결단을 해야 했다. 20여 명의 박 회장의 불교 도반들이 봉사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더 이상 원불교에서 활동을 이어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봉사를 이어가는 것을 넘어서 도반들의 신행 생활에도 지장을 줬기 때문이었다. , 불교 봉사 기관에 도움을 주고 싶기도 했다. 여러 모로 더 이상은 불자로서의 신행과 수행 활동에 지장을 받고 싶지 않았다. 불교는 대부분의 법회가 음력에 맞춰 진행됐지만 원불교에서 진행하는 봉사 활동은 양력에 맞춰 진행됐기 때문에 신행활동에 적잖은 지장이 있었다. 박 회장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더불어 불교 관련 기관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봉사는 신행수행과 함께 해야 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봉사라 해도 행복하게 해주는 마음의 법수행이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저를 아껴주던 원불교를 나와 독립을 하기 까지는 배신자란 비난도 감수해야 했고 남모를 마음고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님을 모시고 창립법회를 열었을 때, 그 감동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원불교로부터 나와 독립을 하고자 했을 때, 박 회장과 도반들은 대한적십자 부산 동래지구에 들어가야 했다. 적십자에서 바로 결성을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지만 박 회장과 도반들은 묵묵하게 봉사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2003311일 적십자불교단위봉사회로 정식 출범하게 됐다.

“5년 만에 이룬 일이었습니다. ‘둘이 아니다란 의미에서 11일로 날짜를 정했어요. 날짜 하나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아 정하고 싶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전하는 씨앗으로 이 땅을 밝히고 맑게 하는 봉사자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출범 후 불교단위봉사회는 그 규모가 점점 커졌고, 더 이상 단위봉사단으로는 꾸려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50명 이상이 되자 각 단위봉사회로 나눠 구성을 조직했고 협의회로 인정받아 2년 만에 적십자불교협의회를 창립하게 됐다.

많게는 200여 명의 봉사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정말 신명나는 봉사 활동이었습니다. 피곤해도 즐거운 피곤함이었지요.”

매월 월례회를 할 때면 회원들은 봉사원 서약을 하며 봉사정신을 거듭 새롭게 다졌다. 서약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봉사에 임하고 이웃과 더불어 밝은 사회를 구현하며 적십자의 명예와 전통을 빛내겠다는 스스로의 점검이었다. 봉사단은 각 복지관 및 봉사 활동에 따라 나누어 구성됐다. 하나단위회 두리단위회 연등단위회 유삼단위회 수련단위회 광명단위회 참사랑단위회 정다운단위회 자비단위회 불심단위회로 구성됐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아주 훌륭한 형님봉사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아주 훌륭한 형님봉사원은 나이가 많아도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젊은 봉사단 보다 열심히 봉사하는 형님들이었다그분들은 우리 불교봉사회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했다.

적십자불교봉사회 창립기념(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박추자 회장)
적십자불교봉사회 창립기념(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박추자 회장)

적십자불교봉사회는 창립 이후 불교계 복지관을 우선 방문했다. 양정재가노인복지관, 개금복지관, 상락정, 수영복지관 등 복지관과 무료급식소에서 봉사 활동을 진행했고 장애 아동들을 위한 목욕봉사를 도맡았다. 불교계 복지관 활동뿐 아니라 재난 구호활동도 이어갔다. 자연재해, 태풍, 눈사태, 지진 등 그들은 노란조끼를 입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수해현장에서는 청소를 담당했고 농작물 피해 현장에서는 벼 일으키기, 폭설현장에서는 눈을 치우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봉사 활동을 위해서 회원들은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으는 데도 앞장섰다. 후원금은 무료급식을 위한 반찬비로도 활용했으며 구호미를 구입해 취약계층을 도왔다. 회비로 구입한 구호미는 미혼모, 다문화가정, 북한이주자 등 소외된 가정을 찾아 전달했다.

주인 의식이 필요합니다. 봉사는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지요. 그 어느 누구도 후원금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 도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제가 회장직을 그만 둔 후에도 역대 회장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 모든 봉사 활동이 가능했습니다.”

봉사단은 쉼 없이 크고 작은 불교행사에서 힘을 보탰다. 연등회와 팔관회 그리고 사명대사 추모재 등에서는 어김없이 적십자가가 그려진 노란 조끼를 입은 적십자불교봉사회를 만날 수 있었다.

 

서 시작된 봉사로 슬픔·병마 극복
 

봉사의 삶이 준 시련과 기쁨
뇌경색으로 쓰러져 한때 절망
남편의 응원으로 시련 극복
부모 위해 불교와 인연 시작
봉사는 자신 내어주는 일” 
나눔이 저축, 건강이 보험
불자다운 회향 마지막 발원

병고의 아픔, 봉사의 기쁨으로 이겨내
200612, 쉼 없이 봉사활동을 이어가던 박 회장은 김장봉사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뇌경색이었다. 박 회장은 낮에는 봉사활동을 이어갔고 밤에는 동명대 사회복지과에서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박 회장은 입원해야 했고, 더 이상 봉사를 이어갈 수 없게 됐다. 말은 어눌해졌고 행동은 부자연스러웠다. 하고 싶던 공부를 못하게 된 것이 더 안타까웠다. 더 이상 봉사도 공부도 하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은 절망적이었다.

“2주 정도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의사 말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환자복을 입고 있는 모습만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병원을 나와 버렸습니다.”

의사의 말을 따르지 않고 퇴원해버린 박 회장은 집에서 머물며 쉬운 일부터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곰곰이 생각했다. 3월에 학교가 개학하니 3개월 정도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고 한 번 해보자란 결심으로 스스로 훈련했다.

박 회장의 가장 큰 응원군은 그의 남편이었다. 모두가 박 회장의 공부와 봉사를 말렸지만 그의 남편만은 달랐다. 박 회장의 남편은 조용히 등록금 고지서를 들고나가 박 회장의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납부했다.

남편이 등록금을 내고 왔으니 공부를 멈추지 말라고 했어요. 그 때 그렇게 남편이 응원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봉사는 기쁨입니다. 봉사의 기쁨이 저를 낫게 해주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건강한 박 회장이다. 세월에 따라 하얗게 쉰 머리카락은 은색으로 반짝거리고 꾸밈없는 맑은 미소를 머금고 살짝 웃는 눈은 따뜻했다. 어느 곳에서도 아팠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박 회장은 가족으로 인해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고 마라톤하 듯 지금도 봉사를 이어 갈 수 있다고 했다.”

가족에 대해 말하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던 박 회장은 ()’에 대한 마음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준거 같다고 했다.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다하며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던 박 회장은 시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후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박 회장의 시아버지는 임종 당시 91세였고 마치 잠을 자듯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박 회장의 시어머니는 101세에 삶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박 회장은 친정어머니도 모셨다.

세 분 부모님 임종을 곁에서 지켰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다 마치 주무시듯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업장을 녹이는 마음으로 모셨던 것 같아요. 그분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저의 공부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저를 만들고 의미 있는 봉사활동까지 하게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봤을 때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박 회장은 잔고가 없는 통장이라 말했다. 매달 나눠 준 후 비어 있는 통장을 보면 행복하다 답했다. 박 회장은 초대회장 역임 후 지금까지도 적십자불교봉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나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적십자불교지구협의회 결성 기념사진(앞 줄 왼쪽 두번째 박추자 회장)
적십자불교지구협의회 결성 기념사진(앞 줄 왼쪽 두번째 박추자 회장)

 

건강한 몸이 보험이고 나눠줘서 텅 비어 있는 통장이 저축입니다

박 회장은 오래 전부터 누군가를 후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자신이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후원하고 있는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퇴직 후 받는 연금으로 누군가를 후원하고 있었다.

어떻게 불교를 만나게 되었냐는 마지막 질문을 하자 박 회장은 부모님을 위해서였다고 했다.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는데 현실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결혼도 늦었고 자랑스럽기 보다는 제가 너무 못나 보였지요. 잘 해드리고 싶었어요. 불교에 귀의하고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는데 시부모님이 불자셨어요. 특히 시어머니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저를 자랑스러워하셨고, 많이 도와주시곤 하셨어요.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자랑스러워 해주시니 행복했습니다.”

박 회장은 지난 2013년 봉사 활동을 담은 책 <행복한 봉사, 제 이름은 박추자입니다>를 출간했다. 봉사 일기를 묶은 책이다. 박 회장은 20001122일 일기에 막 떨어진 단풍잎, 너무나 예쁘게 물들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환희심이 난다고 적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 길 떨어진 단풍잎을 보며 박 회장은 떨어져 있는 단풍잎 가운데 흠이 없는 잎이 없다고 했다.

박 회장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이켜 보면 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름답게 물들어 세월을 맞았고 저렇게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회향하고 고요한 상태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 회향을 제대로 하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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