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을 만난 ‘線’을 보라
‘禪’을 만난 ‘線’을 보라
  • 김원숙 미학자
  • 승인 2019.11.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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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토비의 하얀 글씨
마크 토비, 브로드웨이(Broadway), 템페라/ 컴포지션 보드, 79.7 x 61.9 cm , 1936
마크 토비, 하얀 글씨(White Writing), 템페라/ 종이, 16.5 x 24.1 cm ,1960
마크 토비, 1925년 파리에서

전통적인 회화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 풍경, 사람 등의 시각적인 대상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인 반면, 서예는 언어라는 부호로서의 목적을 가진 기호들을 조형적 예술미를 담아 그려내는 행위이다. 서예는 의미 전달의 시각적 매개인 문자를 그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추상적 성격을 지니며, 또 문자가 가진 실용적 기능을 넘어서 심미성을 추구하기에 예술적 가치를 아우른다. 현대 서구 회화에서도 서예의 이러한 미적 특질을 그들의 작품 세계에 차용한 작가들이 적지 않다.

필선의 강약으로 공간을 표현
화면 중심·경계의 서열 해체
상호 분별 없는 ‘禪’과 맞닿아

미국 현대 미술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마크 토비(Mark Tobey, 1890-1976)는 동양 서예의 필선이 그려내는 아름다움에서 받은 영감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다시 빚어내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하얀 글씨(White Writing)’라는 제목 시리즈는 그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군이다.

짙은 색 배경에 켜켜이 중첩시켜 쌓은 수천 개의 하얀 붓 터치를 찬찬히 응시하고 있자면, 마치 그 붓끝의 움직임이 보는 이의 시선을 부드럽게 이끄는 듯한 운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화면을 가득 채운 필선의 강약과 농담과 그 흐름은 미묘하게도 평면인 화폭이 마치 공간적 깊이를 가진 듯하다.

마크 토비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잔잔한 환영(幻影)적 리듬은 느릿한 명상적 몸짓으로 화폭 전체를 가득 메운다. 19세기 이전 전통적인 회화에서는 그림의 주제를 중심에 두고 부수적 요소들을 주변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마크 토비의 ‘하얀 글씨’는 화폭 가운데와 주변이 동일한 무게의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모던아트에서 이러한 회화의 특징을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이라 한다. 미국적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작가로 드리핑 기법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의 작품이나, 색면 추상으로 일컬어지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의 작품 등이 올 오버 페인팅의 대표적 사례이다.

어떻게 보면 거꾸로 걸어 놓아도 딱히 어색하지 않을 듯한 이러한 그림들의 출현은 당시 일반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여겨졌다. 하지만 올 오버 페인팅의 등장은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서구 사회의 격변을 마치 새벽 닭 울음소리처럼 알려주는 사건과도 같았다. 화면에서 중심과 경계의 서열적 지위가 해체되었고, 위 아래와 좌우의 분별이 무의미하게 된 이러한 조형적 혁신은 모더니즘의 새로운 사조의 도래와 더불어 당시 미술 평단의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 마크 토비는 비슷한 시기의 잭슨 폴록에 비하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으나, 미국과 유럽에서는 추상표현주의와 올 오버 페인팅 기법을 창시한 기념비적 작가로 꼽힌다. 마크 토비는 미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195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국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미국인 최초로 그 상을 받은 작가가 바로 제임스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1834-1903)였던 사실을 비추어 볼 때, 당시 미술계에서 토비에게 쏟아졌던 명성의 무게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도판으로 얼핏 보면, 토비의 그림과 폴록의 그림은 다소 비슷해 보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두 작가의 작품은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우선, 폴록의 작품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큰 스케일의 작품이 대다수이나, 토비의 작품들은 상당수가 실제로 노트북 사이즈에 불과하다. 폴록이 대게 유화물감을 흩뿌렸다면, 토비 작품의 재료는 주로 템페라이거나 수채화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두 작가가 지향하는 작품의 세계이다. 폴록은 드리핑 기법을 통해 우연성에 기인하는 미적 특질을 추구하였다면, 토비는 내면의 영성과 명상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폴록의 화면은 온통 떠들썩한 혼돈으로 가득하다면, 토비의 화면은 맑고 고요하다.

두 작가의 차이는 작품활동을 한 지역에서도 드러난다. 폴록을 비롯한 미국 현대 예술가들이 대부분 뉴욕을 근거로 활동하였다면, 토비는 오랜 기간 워싱턴주의 시애틀에서 활동하였다. 미국에서는 통상적으로 북서쪽에 위치한 오레곤, 아이다호, 워싱턴 주를 ‘노스웨스트’라 지칭하기에, 공식 명칭은 아니나 마크 토비를 ‘북서파(Northwest School)’라 부른다.

마크 토비는 위스콘신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토비의 회상에 따르면, 그의 유년 시절은 마치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쓴 소설의 주인공인‘허클베리 핀’과 같았다고 한다. 미시시피 강가를 맨발로 뛰어다니던 그 철부지 어린 아이는 커서 목사가 되기를 꿈꿨고, 때론 박제사가 되고 싶어하기도 했으며, 맛있는 과자가 가득한 가게의 점원이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커다란 범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오가는 무역상을 꿈꿨다.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지칠 줄 모르고 분주한 아이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개구장이였다.

아버지는 목수이자 작은 집을 짓는 건축업자였다. 아버지가 종이에 원숭이와 코끼리 등과 같은 동물을 그려 건네주면, 토비는 그 형상들을 가위로 오리며 놀기도 했고, 그 지역 인디언들이 담뱃대로 사용하던 붉은 돌을 깎아 동물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후에 토비는 어린 시절 놀이의 기억 탓인지 100여종의 비누조각을 남기기도 했다.

애초에 그의 아버지는 마크가 성장하여 자기 밑에서 벽돌공으로 일하면서 집 짓는 일을 배우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림에 관심이 있던 아들의 재주를 알아보고는 마을에서 11마일 정도 떨어진 시카고에 있는 한 미술 학교의 주말 반에 보낸다. 거기서 토비는 수채화나 소묘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환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했기에, 2년 만에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후일 마크 토비는 “그것은 다만 시간 낭비였다”고 기억한다. 학교를 그만 둔 토비는 철강 회사의 청사진 직공, 선적 직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취업과 해고를 반복하였다. 이처럼 어려운 날을 보내던 중, 주급 1달러의 보수를 받고 패션 스튜디오 사환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여기서 우연히 토비의 그림 재능을 알아차린 매니저는 그에게 사환 일을 하면서 패션 스타일화에 여성의 얼굴을 그리는 일을 맡겼다. 이후 주급은 6달러로 늘었다. 이렇게 하여 토비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경력을 키워가는 가운데, 뉴욕을 오가며 그림 수업에 전념했다.

토비는 1917년 뉴욕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했다. 여기에 출품된 상당수의 드로잉들은 지금은 목탄 가루가 퍼져 희미해져 버렸으나, 토비는 한 자화상에서 전문적 초상화가로서 자신의 능숙한 테크닉, 사고의 명징성 그리고 관찰의 예리함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마크 토비는 1935년 자신의 작품 세계에 하나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는 몇 점의 그림을 세상에 내놨다. 〈Broadway Norm〉, 〈Broadway〉, 그리고 〈Welcome Hero〉 이 세 작품은 이방 종교에로의 개종, 동양의 서예와 수묵화의 영향, 그리고 선불교의 체험을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표현한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은 미술사의 혁신적 전환기를 이끈 〈하얀 글씨〉 작품 시리즈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토비는 원래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러나 우연한 일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중요한 영적 전환점을 제공하는 ‘바하이(Baha’i)’ 신앙을 접하게 된다. 오늘날의 이란 지역인 19세기 페르시아의 바하올라(Bah’u’llh, 1817-1892, 아랍어로 ‘하느님의 영광’)가 창시한 바하이 공동체는 창조의 근원인 유일신을 우러르며, 모든 종교의 궁극적 근원은 하나이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세 가지의 단일성(oneness)을 핵심으로 하는 신앙이다. 1918년 뉴욕에서 토비는 우연히 한 여류 초상화가를 만났다. 자동차나 마차는 커녕 동전 한 푼도 없었던 그는 그녀의 집까지 걸어서 바래다주었다. 산책 겸 배웅하며 걷던 중, 그녀는 문득 토비에게 자신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 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초상화의 모델로 포즈를 취하던 토비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바하이 종교 관련 서적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보였다. 후에 메인주의 바하이 캠프의 집회에 초대를 받았던 토비는 거기에서 바하이교로 개종을 하게 된다.

토비의 작품세계에 또 하나의 주요한 영향은 바로 동양의 서예다. 1923년 토비가 시애틀의 코니시 예술학교(Cornish Art School)에 재직하고 있을 때, 인접한 워싱턴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왔던 중국인 덩궈이(鄧魁, Teng Kuei)를 만났다. 덩궈이와의 오랜 친분을 통해 그는 동양의 서예와 수묵을 처음 접한다. 토비는 1934년 학술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덩궈이의 집에 머물면서, 상하이 예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서예의 운필과 서법을 익혔다.

이후 토비는 일본에서 선불교에 입문하였고, 노가쿠, 가부키, 우키요에 등 다양한 일본 전통 문화를 체험하였다. 그의 회고를 살펴 보면, 교토에서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자신의 생각을 늘 일깨운 것은 불교 사찰에서의 조용하고도 강렬한 정신적 경험이었으며, 사찰의 승려들과 이야기 나누며 이어지던 화두였다고 한다.

동양의‘선(禪)’을 만난 마크 토비의‘선(線)’은 그의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토비는 단단한 형태를 깨고 부수어, 자연주의적 환상을 파괴하며 선들을 엮어, 보다 깊은 공간을 만들어 낸다. 마크 토비의 그림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지도 않으며, 분명한 그 무엇을 지시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보는 많은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은 더 중요하고 어떤 것은 하찮다는 사소한 분별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마크 토비의 작품에서 만나는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없는 수천 개의 하얀 필선은, 사각의 테두리에 갇힌 우리의 시선을 무한한 내면의 영성(靈性)으로 인도한다.

마크 토비는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둥글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나 예술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흔히 우리는 참으로 둥근 그 무엇이 있는 인간의 내적 세계를 희생하는 댓가로, 외부 사물에 대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데에 지나치게 몰입해 있다.” 여기서 토비는 ‘인간의 내면에서 발견하는 참으로 둥근 그 무엇’에 집중한다. 이것은 부처가 이른 ‘허공의 마음(無心)’이다. 허공은 집착할 것이 없으므로 걸림이 없다. 따로 얻을 것도 없고, 굳이 얻고자 하는 것도 없다. 죽음 역시 소멸이나 파괴가 아니라 거대한 우주로 돌아감이다. 현대 추상 미술은 선(禪)사상과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작품의 소재와 형식 그리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마크 토비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국와 유럽의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압도될만한 엄청난 스펙터클한 작품을 결과물로 도출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인간의 근원적 영성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접점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회화라는 매체로 자연과의 깊은 교감과 존재의 헌신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보여주려 하였다. 어쩌면 마크 토비는 작품을 통해 비어있으나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은 무엇으로 가득한 세계, 자연주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구현 불가능한 실체의 세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의 세계를 지시하고자 하는 지도 모른다.

크게 이루면 터진 듯하나 그를 쓰더라도 허물어지지 않고, 크게 차면 빈 듯하나 그 쓰임이 끝이 없다.

크게 곧으면 마치 굽은 듯하고, 크게 솜씨가 좋은 것은 마치 서툰 듯하며,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마치 어눌한 듯하다.

고요함은 떠들썩함을 이기고 차분함은 열기를 이긴다.

맑고 고요함이 천하를 바로잡게 된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노자의 <도덕경(道德經)> 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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