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옷을 벗어라

글 법정 스님/불교신문사 펴냄/1만 6500원

 

법정 스님 하면 연상되는 용어들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 단어는 ‘무소유’다. 스님은 “무소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하며, 생명 중심적 나눔의 삶을 설파했다. 세속 명리와 번잡함을 싫어한 스님은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청빈을 실천했다. 10년 전 눈물로 큰 스승을 잃은 슬픔을 대신한 우리들에게 법정 스님은 평소처럼 당신의 글로서 우리에게 다시 돌아와 삶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있다. 법정 스님(1932∼2010)의 원고 68편이 원적 10주기 추모 기념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여진 것이다.

원적10주기 추모집 형식 출간
1963∼1977년 불교신문 게재
시 설화 서평 등 68편 담겨져
11개 영역 나눠, 어법 현대화

불교신문사(사장 정호)는 11월 10일 법정 스님 추모집 형식의 〈낡은 옷을 벗어라〉를 출간했다. 이번에 나온 책은 법정 스님이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불교신문에 게재한 원고를 모았다. 그동안 법정 스님 명의로 출간된 바가 없는 글들이라서 스님의 사상과 수행자로서의 철학을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자료 모음이다. 법정 스님은 이 당시 불교신문 주필과 논설위원을 맡으며 불교의 문서 포교를 위해 다양한 생각의 글들을 발표했다. 스님은 법정 스님이라는 이름 이외에도 ‘소소산인’ ‘청안’이라는 필명으로도 주옥같은 글을 썼다. 법정 스님의 유명한 저서 인 〈무소유〉를 비롯해 〈영혼의 모음〉 〈서있는 사람들〉 등 초기 저작에도 불교신문에 게재했던 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번에 발간된 〈낡은 옷을 벗어라〉는 불교신문이 지난 2010년 법정 스님이 입적 1년 후 스님의 가르침을 조명하기 위해 불교신문 영인본을 조사하며 찾아낸 육필 원고이다. 원래 사후에 말과 글에 빚지기 싫다는 법정 스님의 유지에 따라 절판하려 했으나, 스님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차원서 (사)맑고 향기롭게의 협조를 받아 출간하게 됐다.

〈낡은 옷을 벗어라〉는 68편 원고를 성격에 따라 분류해 11개 영역으로 나눠 신문에 실린 제목을 그대로 실었고, 일부는 새로 제목을 달았다. 또한 원고 말미에 게재 날짜를 표기해 글을 쓸 당시의 순간을 기억하도록 배려했다. 일부는 시기가 오래된 원고여서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일부 원고는 전체 맥락이 변하지 않는 범위에서 극히 최소 문장을 수정했다. 어법 또한 현대문법에 맞췄으며, 활자판 인쇄로 한자가 누락된 부분은 유추해 앞뒤 문맥에 맞도록 수정했다. 이번 책에는 법정 스님이 출가한 후 사상적 흐름을 추적해 볼 수 있는 주옥같은 글들이 가득하다는 장점이 있다. 출가 초기 시절 역경 사업을 하며 쓴 설화를 비롯해 문학적 감수성이 넘치는 시,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으로 불교의 낡고, 해묵고,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칼날같이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다양한 논단과 칼럼이 많다.

이외에도 스님의 출가 초기인 1960년대 초 역경 사업에 매진한 글들이 13편 설화 형태로 소개돼 있다. ‘어진 사슴’ ‘조용한 사람들’ ‘겁쟁이들’ ‘저승의 선물’ 등의 주제로 쓰여진 설화에는 경전에 근거한 비유를 인용해 불교의 가르침을 전한 글들이 들어 있다. ‘구도자’라는 설화는 스님이 창작한 설화로 중국 선종사 초조인 달마 스님과 혜가 스님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연둣빛 미소’라는 설화는 죽은 물고기를 통해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는 법정 스님의 창의력이 돋보인다.

또한 1960년대 중반 부터는 법정 스님의 시 12편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법정 스님은 자연친화적 산문으로 대중들 마음을 치유해 준 것으로 인식하지만 시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는 사실이 이번 원고를 통해 전해진다. 또한 ‘병상에서’라는 시는 수행자가 몸져 누워 있으면서 겪는 인간적 외로운 마음을 노래하며 ‘내 그림자는’라는 시는 법정 스님이 서울서 생활하며 산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보이며 자신을 안스러워 하는 감정을 엿보게 한다.

“졸속주의가 낳기 마련인 부실과 단명(短命)을 이제 우리가 할 신성한 불사에만은 제발 되풀이하지 말자는 말이다. 만약 오늘 이 땅에 부처님이 출현해서 말씀 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어떻게 하실까? 한말식(韓末式) 사고로써 그 시절에 쓰던 한어식(韓語式)으로 말씀을 하실까? 아니면 지금의 우리 귀에 익은 우리말을 쓰실까? 철 지난 옷을 언제까지고 걸치고 있으려는 고집은 이제 웃음거리밖에 낳을 것이 없다. 겨울이 지나가면 봄철이 온다는 이 엄연한 우주질서를 이제는 더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새로운 계절 앞에서 그만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지 않으려는가?”

책장을 넘기다 보면 강남 봉은사의 부지가 팔리는 사안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하는 결기 넘치는 스님의 마음을 담은 글도 보인다.

“불교회관 건립은 몇 해 전부터 논의된 우리 종단의 염원이다. 그 회관을 세우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봉은사 같은 도량을 팔아서까지 회관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시급한 일인가에는 의문이 없지 않다. 봉은사는 잘 알다시피 한국불교사상 영구히 기억될 도량이다. 불교가 말할 수 없이 박해를 받던 이조시절 허응(虛應) 보우(普雨) 스님에 의해 중흥의 터전이 구축된 데가 이곳이며, 서산·사명 같은 걸승의 요람이 된 곳도 바로 이 봉은사인 것이다. 서울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거나 또는 불교 중흥의 도량이라는 과거를 무시하고라도, 한수이남(漢水以南)에 자리 잡은 그 입지적인 여건으로 보아 앞으로 우리 종단에서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도량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책을 펴낸 불교신문사 사장 정호스님은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맑고 향기롭게’의 승인 하에 이번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며 “책에 대한 수익금은 불교포교와 (사)맑고 향기롭게의 장학기금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10년만에 글로서 다시 만나는 법정 스님은 역시 법정 스님이었다. 촌철살인 같은 경책과 삶의 위로가 되는 주옥같은 무소유의 사상이 오롯이 녹아 있었다. 이 책을 읽을수록 스님의 글들을 계속 만나고 접하고 싶은 욕심이 솟구치는 것은 집착일까? 아니면 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을 아직도 깊이 체득하지 못한 중생의 어리석음 때문일까? 만추에 법정 스님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가 그 해답일 것이다.

▲저자 법정 스님(1932~2010)은?
1956년 효봉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은 후 통영 미래사, 지리산 쌍계사 탑전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고 1959년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60년 통도사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했고, 1967년 서울 봉은사서 운허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했다. 1973년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고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을 피해,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1992년 4월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생명 중심의 세상을 명상하며 홀로 수행 정진했다. 1993년 8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준비 모임’을 발족해, 1994년 3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첫 대중 강연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대구, 경남, 광주, 대전 등지에서 뜻을 함께 하는 회원들을 결집해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모임’을 이끌었다. 스님은 폐암이 깊어진 뒤에도 침상서 예불을 거르지 않았으며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며,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긴 뒤 2010년 3월 11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서 원적(세수 78세, 법랍 55세)에 들었다.

 

책 속의 밑줄 긋기

“‘볼륨’을 낮춥시다. 우리들의 청정한 도량서 불협화음을 몰아내야겠습니다. 처마 끝에서 그윽한 풍경소리가 되살아나도록 해야겠습니다. 법당서 울리는 목탁소리가 고요 속에 여물어 가도록 해야겠습니다. 하여 문명의 소음에 지치고 해진 넋을 자연의 목소리로 포근하게 안아줘야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주제 넘게 말하는 제 자신도 ‘바흐’나 ‘베토벤’을 들을 때면 의식적으로 ‘볼륨’을 높이는 전과자입니다.” 〈볼륨을 낮춥시다〉 中에서

“입시에서의 실패, 단순히 이것만이라면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실패를 가지고 자기 인생을 어떻게 개발시켰던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롤랑’은 뒷날 그의 회상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나는 그 일로 해서 조금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보다 성숙하여 입학했으니까.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위고’로 인해서 놓쳐버린 시기를 나는 내 인생을 위해 벌었던 것이다….’” 〈너는 성장하고 있다〉 中에서

“불교에 있어서 기복의 요소는 어디까지나 종교의 부수 현상일 뿐이지 종교의 본질은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부수 현상이 본질에 앞설 때 그것은 사이비 종교이며 미신 사교인 것이다. 불교는 본래 지혜의 종교로서 그 최고 이상인 보리(覺)는 일체지(一切智)이며 정변지(正뤝智)이다. 불교의 초기교단 형태를 살펴보면 번뇌를 없애고 해탈에 이르기 위해 주로 계율을 지키고 선정과 참회에 힘썼다.” 〈기도하는 신심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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