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실크로드 문화 결정체

석굴암 불상들 한국문화를
집약하는 최고의 걸작이다
삼국 사상·문화 혼연히 녹여
세계 최고 불교예술 토대 이뤄

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ABC) 사업단은 11월 6일  동국대 중앙도서관 전순표 세미나실에서 제17회 불교인문학특강을 개최했다. ‘석굴암의 긴 여정- 간다라에서 경주까지’를 주제로 열리는 이날 특강에는 문명대 동국대 미술학과 명예교수가 초청돼 강연을 진행했다. 본지는 이날 강연 내용을 정리·게재한다

문명대 명예교수는… 1941년 출생으로 경북대 사범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굴암 불상조각 연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중 울산 천전리, 대곡리 선사 암각화를 발견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는 러시아 연해주 발해사원지 발굴, 파키스탄 탁실라 간다라 유적 발굴 등을 진행하는 등 많은 발굴 성과를 냈다. 정년퇴임한 2006년 이후에는 지금까지 한국미술사연구소장을 맡으며, 왕성한 연구·집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조각사〉 〈한국의 불화〉 〈한국불교미술사〉 등 50여 편의 저서와 30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어버리듯이 문화도 교류가 없으면 소멸되고 맙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실크로드입니다. 세계문화교류 가운데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한 루트는 유라시아대륙의 대동맥인 ‘실크로드(인도·서역·중국)’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곳에는 인도와 서구문화, 중국과 한국문화 등이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서로 교류하고 접촉해온 국제문화의 산실입니다.

우리 문화도 이 길을 통해 교류된 세계적인 문화에 영향을 받아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화교류에 우리 선인들은 중국이나 인도, 서구인이나 서역 못지않게 진취적이고 선진적으로 발 벗고 앞장섰던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우리가 직접 탐사하여 밝혀내는 작업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 후손들의 사명입니다. 나아가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광역의 실크로드 문화 특히 석굴문화의 교류를 밝히는 것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역 실크로드와 불교문화 교류
세계의 지붕으로 알려진 파미르고원(蔥嶺)을 중심으로 동서로 전개된 사막과 초원의 광활한 지역을 중앙아시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인도나 로마쪽으로 가자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요충지이며 그 반대의 길도 동일하므로 동서문화의 교류지이자 교통로로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데 이 길을 흔히 비단길, 즉 실크로드로 통칭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근대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는데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사용한 이래 헤르만, 헤딘 같은 서역탐험가들이 애용해서 보편화됐습니다.

이 서역에 A.D 2세기경부터 불교가 수용되어 불교미술이 꽃피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불교미술은 중국에 전달되었고, 다시 우리나라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역의 불교미술은 건축·조각·회화·공예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조각과 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 불상과 불화들은 지역마다 제각기 다른 개성도 있지만 복합적이면서도 공통적인 미술양식이 정립되어 있습니다. 불교문화는 현재 쿠챠의 키질, 쿰트라석굴, 투루판의 베제크릭, 돈황 막고굴, 유림굴, 문수산, 병령사, 맥적산 석굴 등에 상당수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우리 문화와 관계 깊은 것 위주로 정밀 조사·연구를 실시하여 우리 문화의 정통성을 확립하는데 활용해야 합니다.
 
한국불교미술과 실크로드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일단 불교가 수입되자마자 불교와 불교미술은 급성장하게 됩니다. 신라는 고구려를 통하여 불교와 불교미술을 수용했으므로 신라의 불교미술은 초기에는 고구려의 불교미술과 상당히 유사했을 것입니다. 초기를 대표하는 불상양식인 뚝섬 출토 금동불좌상은 고구려 불상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이런 양식의 불상이 초기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중대신라인 통일신라시대 전반기(650~800년)는 삼국을 통일한 통일제국으로 실크로드와 연관된 국제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시기입니다. 통일신라는 국제적인 당 제국의 문화, 그 너머 인도의 국제화된 굽타문화와 서역문화를 수용하여 독특한 국제적 불교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따라서 이들 문화는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온 문화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금기의 신라문화는 불교문화가 특징이며, 당시의 불교인 종파불교가 주도한 불교미술이 그 핵심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가종(瑜伽宗=法相宗), 신인종(神印宗), 화엄종(華嚴宗) 등이 주도하는 종파불교의 대찰인 용장사, 흥륜사, 감산사, 불국사 그리고 사천왕사, 신인사, 분황사, 부석사 등 수 많은 사찰들이 세워져 화려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이상적 사실주의 불교미술이 전개됩니다.

8세기에 들어서면 통일신라 사회는 불교문화가 난숙하게 무르익습니다. 이를 알려주는 대표적 예가 유가종 감산사 본존불인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불입상입니다. 감산사 불상들은 인도의 굽타불상에서 그 원류를 찾아볼 수 있지만 두 다리로 U형 옷주름이 내려가는 인도 우진왕조상식 불상이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과 중국을 거쳐 신라에 수용되어 신라화가 진행되어 나타난 특징적 불상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적 불상양식은 석굴암 불상(750년경)에서 완결됩니다. 석굴암은 차이티야(Chaitya)식이라는 단일 예배굴(單一 禮拜窟)인데 사각형 전실(前室)과 원형 본실(本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석굴은 바위를 뚫어 조성한 인도 아잔타나 중국 돈황, 운강 등 일반 석굴 등과는 달리 판석(板石)을 짜서 조성한 이른바 축조석굴(築造石窟)입니다.

이런 축조석굴의 원조는 간다라의 스와트(Swat) 붓카라 제3사지 석굴입니다. 판석과 모전석의 등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축조석굴이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이러한 간다라 석굴 형식이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의 베제클릭 같은 벽돌식 석굴에 영향을 미쳤지만 중국 본토를 건너뛰어 머나먼 신라로 곧장 수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굴암 본존불상도 간다라의 나건하라(那乾訶羅)석굴 불영상이나 부다가야 대각사 석가불상 등 인도불상에서 형식의 유래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점은 사천왕사상이나 11면관음보살상 그리고 10대제자상도 인도에 그 원류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10대제자상은 인도 아리안인의 고승상을 그대로 모형한 상이어서 실크로드로 전파된 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크로드 문화 결정판, 토함산석굴 성격
경주 석굴암 석굴(골굴암)은 인도에서 간다라를 거쳐 서역의 실크로드를 지나 중국을 거쳐 수용된 불교석굴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이러한 경주 토함산 석굴의 성격을 간략히 정리했습니다.

첫째 경주 석굴암 석굴은 세계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석굴암 석굴은 석굴의 원형인 인도의 아잔타, 엘로라, 오랑가바드, 칸헤리, 바쟈, 나식, 준나르, 피타코라석굴에서 기원한 석굴문화를 계승했습니다. 이런 인도의 석굴문화는 간다라 문화와 이에 영향을 준 그리스, 로마, 이란 문화 등에서 강한 영향을 받아 생성됐고 서역의 모든 석굴문화를 이룩합니다. 따라서 경주 석굴암 석굴은 그리스, 로마, 인도 간다라, 서역, 중국 등 세계의 모든 문화가 용해되어 있는 세계 문화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석굴암 석굴은 세계에서 대승불교의 불교상이 가장 잘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주실의 모든 상들은 본존불을 상하 2단의 2중으로 보살과 신들이 둘러싸 불세계, 불국토를 체계적으로 짜임새 있게 형성하고 있으며, 이 불국토를 제석·범천과 사천왕, 금강역사, 8부신장이 순차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이런 불보살상들의 정연하고 체계적인 배치는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대승불교의 진수입니다.

셋째, 석굴암 석굴의 본존 석가불상은 세계 최고의 대승불교 항마불상(降魔佛像)입니다.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손가락으로 땅을 가르키는 이른바 촉지인(觸地印)을 짓고 있는 수인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 하며, 이 수인을 하고 있는 불상을 항마촉지인불상 또는 항마성도상(降魔成道像)이라 부릅니다.

보드가야 대탑의 항마성도상은 원래의 상을 계승한 후대작이지만 성도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항마성도상의 대표작인데 비하여 석굴암 석굴 본존상은 비록 항마상을 하고 있지만 단순히 깨달을 때의 항마상이 아니라 항마성도는 물론 일체의 나쁜 무리들인 모든 마군들을 제압하는 대승적 항마상입니다. 이런 대승 항마상 가운데 세계에서 제일 위엄 넘치는 최고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넷째, 석굴암 석굴 불상은 대승불교의 사상 특히 우리나라 대승불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가밀교의 사상을 상징하는 걸작입니다. 신라의 대표적인 불교사상인 유가유식사상에서 기반을 두면서도 나쁜 무리나 외적을 제압하는 항마적인 호국적 불교사상을 나타내는 유가밀교의 사상을 상징하는 불상들이 석굴암 석굴 불상입니다.

다섯째, 석굴암 석굴 불상들은 역사시대 한국문화를 집약하는 최고 걸작이다. 이른바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전통적 사상과 문화와 예술이 혼연히 녹아있고 우리의 역사와 혼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결정체이자 세계 최고의 불교사상과 불교예술 뼈대를 이루고 있는 최고의 걸작품이 바로 석굴암 석굴입니다.

이상의 5가지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경주 석굴암 석굴은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에 그치지 않고 세계최고의 걸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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