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지방의 한 대학서
밤새 ‘입영전야’ 부르던 동기
최근에서야 옛 인연 이어가

친구가 건넨 마음담긴 봉투
무주상 보시로 우정 키워
가을 단상에 떠오르는 얼굴
세월 무상 이겨내는 원동력

가을이 꽤 깊어진 것 같다. 그래서 일까? 만추(晩秋)라는 단어가 하고 가슴에 와 닿는다. 나뭇잎의 색깔과 바람의 결이 확실히 달라졌다. 가수 주현미와 하현우의 말마따나 우리는 지금 쓸쓸한 계절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조금 외롭고 약간 고독하다. 한낮인데도 빗방울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하긴 밤에만 비가 오란 법은 없다. 바람도 분다. 불상 양쪽의 두 그루 협시불 은행나무에선 황금빛 비늘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비를 피해 형형색색의 우산을 쓴 사람들이 분주하게 스쳐지나간다. 이상은 목요일 오후 2시 남산 아래 불교학당 동악의 늦가을 풍경 한 컷이다.

누군가 가을엔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수신인이 아무나여도 좋은 그런 편지 말이다. 곧 세모(歲暮)가 다가 온다. 잊고 있던 옛 친구들이 생각날 때다. 문득 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를 만난 것은 40여 년 전 지방의 한 대학에서다. 고향이 충남 신탄진이라고 했다. ‘신탄진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던 담배이름이었다. 친구는 술은 좋아했지만 말수는 적은 전형적인 충청도 사람이었다. 이즈음 부마사태와 10.26사건이 일어났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밤새도록 입영전야를 부르고 헤어졌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불과 몇 년 전에서야 서로 연락이 닿았다. 친구는 대구에서 조그만 자동차부품공장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럭저럭 살만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그런가보다 했다.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온 김에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했다. 친구부부가 학교로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밥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슬그머니 서류봉투 하나를 내려놓고 나간다. 친구를 보내고 올라와 봉투를 뜯어보았더니 농협직인이 찍힌 봉투 두 개가 더 들어 있었다. 살펴보니 두툼한 오만원권 지폐 묶음이었다. 지금까지 현금으로는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큰 금액이었다. 순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냥 필요한 곳에 쓰라고 말했다. 어떤 조건도 달지 않았다. 다만 그는 시골에서 올라와 어렵게 대학에 자리 잡은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뿐이었다. 이후 돈은 흐지부지 없어졌지만 우리들의 우정은 더욱 단단해졌다. 지금도 돈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정색을 하고 손사래를 친다. 그냥 주고 싶어서 줬을 뿐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들은 말의 전부다. 만에 하나 그가 나에게 뭔가 바라고 봉투를 건넸을 가능성은 말 그대로 제로다. 불가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란 이런 친구의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잠시 가을 단상에 젖어 조용필의 친구여를 부르고 말았다. 가을은 가을인가보다.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칼럼 주제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친구야, 우리가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 그 시절의 풋풋한 감정마저 잊고 살지는 말자. 우리가 언제 이렇게 나이 먹을 줄 알았던가. 환갑이란 말을 한번이라도 떠올려본 적이 있기나 한가. 그런데 우리가 벌써 그 나이가 되고 말았으니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고장난 벽시계너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종종 만나고 건강하게 사세. , 부인에게도 안부 전해주게나.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느새 가을비도 그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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