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코스모스 꽃이 만발하고 산에는 온통 만산홍엽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이다. 지난 여름의 폭염과 태풍을 뚫고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이 가을의 문턱에 서 있다. 나는 이 가을에 무엇으로 결실을 이룰지 생각해 본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송세월이나 하지 않았는지, 공밥 신세는 아닐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다.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5일까지 ‘영진 스님과 함께하는 티베트 수미산 순례’를 80여명의 스님들과 다녀왔다. 평생의 꿈이자 소원이었던 카일라스 수미산 코라 순례길을 2박 3일간 함께하며 참으로 행복했다. 어쩌면 그 기간만이 아니라 내 전 생애가 그 날을 위한 기나 긴 여정이자 순례가 아니었나 싶었다. 이 모든 자연과 사람들의 인연과 덕화에 고맙고 감사하며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해발 5,640m 돌마라 고개를 오를 적에 한 비구니 스님의 거룩한 발자국에 크나 큰 감동과 환희를 느꼈다. 화두를 든채 천천히 걷는 그 발자국따라 그동안 미동조차 않던 수미산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로 부처님을 다시 만나는 듯, 수미산의 진면목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스님의 발로 온 수미산을 들어 올리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일종의 경외이자 찬탄이며 또한 충격과 전율이 아닐 수 없었다.

아주 작은 웅덩이에도 수미산이 깃들어 있고, 한 송이 꽃 속에도 온 세상이 함께 한다. 보잘 것 없는 돌맹이를 조각한 마니석 하나와 바람에 휘날리는 오색의 타르초마다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신심과 원력이 있다. 그것들이 하나 둘 하늘로 올라가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저 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빛나기를 기원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다 보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아무리 소중하고 아름다운 꽃과 보석들일지라도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수미산 가는 길에 건라산 고갯마루(4,980m)에서 나는 우리 스님들을 보며 그걸 새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님들의 맑고 향기로운 그 마음과, 꽃보다 아름다운 그 미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다.

티베트의 영혼인 신산 카일라스와 성호 마나사로바 호수를 순례하고 돌아오니 전혀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난 듯한 마음이다. 그래서 졸시 하나 지어본다.

 “수천 수만의 히말라야 연봉마다/ 수천 수만의 연꽃이 피어나고/ 수천 수만의 연꽃마다/ 수천 수만의 부처일레라// 수미산정(須彌山頂)에서/ 천수천안(千手千眼)을 베풀고/ 아뇩달지(阿葺達池)에서/ 천강천월(千江千月)을 나툼이라// 수천 수만의 그 모든게/ 바로 나 하나 일레라!”

이 가을의 문턱에서 나는 어떤 무엇으로 함께할는지 생각해 본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처럼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랑이었느냐”라고 누군가 묻는다. 그럼 나는 대체 무어라 대답할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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