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경 개인전 ‘모임(Gatherintg)’
국립현대미술관(서울)
10월 26일~2020년 2월 23일
영화 ‘늦게 온 보살’ 등 9점 전시
해인, 곽시쌍부 등 미술에 녹여
사진·시멘트 판 등 다양한 재료

 

박찬경 作, ‘맨발’ 中 디지털사진.

 

분단, 냉전, 민간신앙, 동아시아의 근대성 등을 주제로 한 영상, 설치, 사진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로부터 주목을 받아온 박찬경 화가는 10월 26일부터 2020년 2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 서울에서 개인전 ‘모임 Gathering’을 개최한다.

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대표작 ‘늦게 온 보살’을 비롯해 ‘작은 미술관’,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 ‘맨발’, ‘5전시실’ 등 총 8점의 신작과 구작 ‘세트’ 1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액자구조’로 되어 있다.

△전시장 입구 쪽에 설치된 ‘작은 미술관’은 이번 전시의 액자 역할을 한다. 작품은 벽, 사진, 대여한 미술 작품, 글, 병풍, 단채널 비디오(15분)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작은 미술관’은 개념적인 측면뿐 아니라 물리적인 개념에서의 작은 미술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은 미술관’은 낯선 시간대와 낯선 거리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작품은 오늘날의 미술사와 미술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미술제도에 대한 작가의 비판과 성찰은 ‘재난 이후’라는 주제 아래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석가모니의 열반 등을 다룬 작품으로 이어진다.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는 원전사고 피폭현장인 마을을 촬영한 박 작가의 사진과 방사능을 가시화하는 일본 작가 카가야 마사미치의 오토래디오그래피 이미지가 교대로 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세트’(2000)가 나란히 전시되는데, 서로 다른 소재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접점을 찾는 박 작가 특유의 미술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전시실 중앙에 넓게 펼쳐진 ‘해인(海印)’은 다양한 물결무늬를 새긴 시멘트 판, 나무마루 등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미술을 ‘미술에 관한 대화’라고 규정하는 작가의 예술관처럼 비어있지만 실제로 다양한 ‘모임’이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는 오늘날에서 ‘해인’의 뜻을 생각할 때, 온 세상의 반영이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재생하는 인터넷 매체나 빅데이터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천무학적인 규모의 ‘빅데이터’ 대신 거의 전달하는 것이 없는 ‘스몰 데이터’, 가볍고 빠른 데이터의 재생 대신 지나치게 육중하고 단단한 시멘트 덩어리의 바다를 통해 오늘날의 데이터 만능주의에 답한다.

△‘해인’에 이어서 55분 분량의 영화 ‘늦게 온 보살’이 이어진다. 이 영화는 ‘석가모니의 열반’이라는 종교적 사건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재난 사건을 하나로 묶었다. 흑백 네거티브의 영상은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와 짝을 이루며 광선, 대기, 방사능, 자연 등에 대해 우리가 관습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를 뒤집도록 유도한다. 영화의 섬세하게 조절된 톤은 그 배경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장소라는 설정과 묘하게 마찰을 일으킨다. 등장인물들은 내러티브 바깥을 떠도는 것처럼 보이며, 서로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뒤섞이는 산, 불교 신화, 원자력 발전소, 미술 등의 이미지는 줄거리의 개연성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개연성을 잃어버린 사회를 묘사하는 것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위대한 성인의 열반, 각자의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생겨나는 ‘모임’ 등을 생각하게 한다.

△전시실 후반부에 설치된 ‘맨발’과 ‘모임’ 등의 작업은 앞선 영상 속 소재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맨발’은 부처님의 열반 당시 곽시쌍부의 고사를 소재로 ‘둘’의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종교적, 문학적 분위기의 ‘생략’을 통해 ‘둘의 미학’이 갖는 시원적인 단순함, 맨발을 내보이는 사건의 사소함이 고사의 메시지를 더 명료하고 현대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전시실의 마지막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5전시실의 1:25 배율 축소모형 ‘5전시실’이 놓여있다. 작품은 ‘액자 속 스토리’, 즉 미술관의 관람 관습에 익숙해진 관객을 다시 액자 밖으로 끌어낸다. 이로부터 작가는 관객에게 미술과 미술관이 같아 보이는지 묻는다. 작가는 강요된 권위와 틀에 저항하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깨어있는 관객들이 곧 이번 전시의 제목인 ‘모임’에 초대받은 이들임을 이야기한다.

박찬경 화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97년 첫 개인전 ‘블랙박스 : 냉전 이미지의 기억’을 시작으로, ‘세트’(2000), ‘파워통로’(2004~2007), ‘비행’(2005), ‘반신반의’(2018) 등 한국의 분단과 냉전을 대중매체와의 관계나 정치심리적인 관심 속에서 다뤄왔으며 주로 사진과 비디오를 만들었다. (02)3701-9500.

‘해인’中 일부.
‘해인’中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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