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는 삶

60대 후반의 옥연씨, 최근 자꾸만 허무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따져보니 활기차게 살아 있을 날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슨 일이든 무의미하고 재미가 나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해왔다.

- 그런 생각을 하신 지 얼마나 되었나요?

- 올해 초, 아니 지난 해 초겨울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새벽이 눈이 떠지면 오늘 하루는 어떤 일이 있을까 기대도 하고 준비도 하고 했었는데 그 무렵부터 뭘 열심히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얼마 안 남은 인생 같고.

- 그 무렵 특별한 변화라고 할 만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 지난 가을에 둘째인 아들이 결혼했습니다. 매일 하던 아들아이 식사 준비나 옷 챙겨주기 같은 일상이 없어졌어요. 몇 년 전에 딸을 보내고 아들까지 보내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뭔지 허무하고 딱히 할 일도 없어지고.

- 그러시군요. 아들 보내기 전과 보낸 후의 달라진 점에 대해 하나씩 한번 짚어볼까요? 먼저 아들이 있어서 꼭 해야 했던 일을 말씀해보실까요.

- 매일 따뜻한 밥을 지었고 시장을 보았지요. 아들아이 출근 때 밥 반 공기라도 먹여 보냈거든요. 그리고 청소와 빨래도 미루지 않았고요. 가계부도 열심히 썼어요. 하루에 집안일을 2-3시간은 꼭 했네요

‘죽으면 끝이죠’란 인식
미리 생각하며 인생 대비
죽음 앞에 자유로운 삶 살자

- 그러면 아들 뒷바라지로 하지 못한 일은 무엇이 있나요.

- 아무래도 장기여행은 어려웠지요. 아들은 가라고 했지만 사나흘 이상 집 비우면 마음이 편치 않아요. 미국 사는 딸아이가 와서 손녀도 봐 주면서 함께 살자고 하는 것도 다음에 생각하자고 했지요. 명상센터에서 머물며 수련하고 싶은 일도 나중으로 미루었고요. 또 식단을 소식과 채식 위주로 바꾸고 싶었는데 고기 좋아하고 잘 먹어야 하는 아들 때문에 여러 반찬을 만들다 보니 내 입맛은 뒷전으로 밀렸어요.

- 지금 하고 싶었는데 미루었던 일들을 말하고 나니 어떤가요.

- 글쎄요… 하나씩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꾸 하신다고 했는데 죽음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죽으면 끝이죠 뭐. 언제 다가올지 모르지만 그러고 나면 끝이지.

- 끝이라서 아쉽거나 허무하거나 하신 건가요. 아니면 죽음의 어떤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두려움이 있으신 건가요.

- 죽는 거야 어쩌겠어요? 다 가는 거지요. 오래도록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단지 죽음 자체가 무서워요. 오래 아프다 죽게 될까봐, 걱정이고요. 남편도 일찍 가고 없는데 치매나 암에 걸려서 혼자 앓는 것도 무섭고 아이들 고생시킬까봐 걱정되고 그러네요.

- 그러니까 죽음이 빨리 올까봐 걱정이라기보다 죽는 과정이 두려우신 거네요. 죽는 과정의 두려움을 적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뭣보다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도록 애써야겠지요. 건강한 동안 재미나게 잘 살아야 하겠고요.

그 다음 옥연씨와의 코칭은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할 일을 열심히 하자는 것과, 죽는 과정이 덜 고통스럽도록 건강관리를 비롯해 미리 준비를 하자는 것으로 좁혀졌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오지 않을 것처럼 외면하는 일, 그게 죽음이다. 당장 심각한 병이 들지 않는 한 어쨌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산다.

어떤 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외면함으로써 피하려고 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인데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느라 지금부터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생로병사의 번뇌를 삶의 의지로 극복하는 용기

죽음이 곁에 올 때까지는 굳이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이런 태도를 벗어나서, 미리 준비하고 가능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죽음을 맞이하자는 운동이 웰다잉(Well-Dying)이다. 웰다잉은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일컫는 뜻에서 나아가 죽음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으로까지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인간다운 죽음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삶의 시간을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웰다잉이 웰빙(Well-Being)이라는 것이다.

불교철학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진정한 삶의 의지로 극복하는 용기와 지혜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숫타니파타〉의 화살경을 보자.

이 세상에서 인간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언제까지 살지 알 수 없고,

비참하고, 짧으며 고뇌로 얽혀 있다.

태어난 존재에게 죽음을 피할 방도는 없다.

늙음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한다. 정말로 생명 있는 존재에게 이것은 정해진 이치(법)이다.

익은 과일은 떨어질 두려움이 있는 것처럼,

이와 같이 태어난 자는 항상 죽음 때문에 두려움이 있다.

붓다는 생로병사, 즉 생명이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실존의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수행을 시작했다. 오랜 고행 끝엔 붓다는 죽음을 포함한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번뇌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설파한다.

불교에서 죽음이란 단지 태어나고 소멸하는 숙명이 아니다. 인간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되새기고 실천하기 위한 연기의 조건이다. 죽음의 절박함을 강조하면서, 인간으로 태어난 삶의 가치를 자각해 소중한 인생의 여정을 수행을 통해서 향상시킬 것을 불교는 강조한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며 자기 결정권 갖기

20세기 최고의 정신의학자이며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 수 백 명의 이야기 〈죽음의 순간〉과 〈인생수업〉으로 죽음의 새로운 의미를 알려주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상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들이 인터뷰한 사람들은 삶은 기회이자 아름다움이며 놀이라고 말하면서, 삶을 붙잡고 감상하고 누릴 것을 권한다.

20년 가까이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해 온 김형숙씨는 저서인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이들 대부분은 병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하지만 그곳은 한 인간이 삶을 매듭짓는 데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단 그 안에 들어선 이상 쉽게 나올 수도 자신의 뜻을 강하게 주장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았고 평소에 그 어떤 바람도 표현하지 않았다면 가족과 의료진이 고통스러운 결정을 떠맡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법과 의학, 도덕적 책임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들이다.”

저자는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최대한 결정할 수 있도록 건강할 때 죽음을 상상하기를 권한다. 구체적인 대안의 하나로 시전의료의향서의 작성을 제시한다.

2018년 2월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19세 이상의 성인은 누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미리 밝혀둘 수 있다.

의향서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전국 300 여개의 등록기관을 통하여 상담을 받고 작성하여 등록할 수 있게 해놓았다. 불교단체로는 대한불교조계종의 불교여성개발원이 등록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여러 비영리 단체와 법인에서 시니어 층을 대상으로 하는 웰 다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불교여성개발원에서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남은 삶을 더 소중하게 보낼 수 있도록 생명존중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웰 다임 관련 교육은 ▲지나온 인생그래프와 남은 인생 설계하기 ▲삶을 정리하는 기록 남기기 ▲유언장과 사전의료의향서 작성하기 ▲자신의 묘비명 짓기 ▲ 관점을 바꾸는 죽음명상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례식 설계하기 ▲용서와 화해 등으로 다양하고 유익하게 구성되어 있다.

1인 독거노인의 임종을 지원하는 단체도 있다.

시니어희망공동체는 누구나 인간답게 생을 마감하는 준비를 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보다 충실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독거노인 등 1인 가구에게 엔딩노트와 유언장 작성을 보조하는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엔딩노트’는 유언처럼 법률적 효력은 없으나 아름다운 웰다잉을 위해 자신의 신변을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아름답게 정리하는 메모를 말한다. ‘나의 장례식은 이렇게 치러 주세요!’, ‘나의 유품은 누구에게 전해주세요!’, ‘나의 친구 누구에게 나의 죽음을 알려주세요!’, ‘나의 장례식에 이 노래를 꼭 들려주세요!’와 같이 나의 장례방식과 장지, 가족관계등록부 등 유품처리, 영정사진, 사전의료의향 등을 미리 밝히는 것이다.

옥연씨는 코칭대화로 죽음을 적극 생각하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소감을 나눠주었다. 그녀는 코치와 함께 ‘웰 다잉 7계명’을 작성했다. 첫째 해마다 하고 싶은 일 실천하기, 둘째 건강관리를 꾸준히 하기, 셋째 유언장과 사전의료의향서 작성하기, 넷째 장례 계획 세우기, 다섯째 매일 한 가지 보시하기, 여섯째 미운 사람 용서하고 고운 사람 더 사랑하기, 일곱째 추억의 물품 보관하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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