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부부의 동사섭 법문

재래시장 쪽으로 산책 나간다는 삼식씨에게 지폐 한 장을 쥐어주며,

- 포항초 있음 한 단 하고 숙주 한 봉 사 오슈. 남는 건 팁이오.

아, 그 시장의 미나리 좋더라. 그것도 보이면 한 봉지 (사려면 돈 모자라겠네, 하려는데)

- 야!! 이걸로 그거 다 사라고?

- (갑작 얄미워져서) 모자라면 자기 돈 보태시든가.

- 용돈이라고 쥐꼬리 만큼인데, 걸핏하면 장보러 가는 심부름 시키면서 삥까지 뜯는구먼. 빵 셔틀 시키는 일진이냐?

- 그거 다 당신 입으로 들어가는 거요. 세 끼 챙겨주는 일진 봤소?

하루 세끼 반찬 챙기는 게 다 누구 때문인데. 게다가 싱겁다 짜다, 건강식이라고 애써서 차려 놓으면 고기 한 점 없는 풀밭이라느니, 식탁에 앉으면 투정은 다 하면서 시장 보고 오라면 툴툴대는 남자에게 좋은 소리가 안 나온다. 아이들 다 독립하고도 끼니 장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는 일진 노릇이라도 해야 오랜 세월의 억울함이 풀리는 듯하다. 끼니 독립 못하는 삼식이는 영원한 꼬붕이어야지 그럼.

함께 늙어가는 한가로운 처지
짐을 지면 같이 짐지는 자세로
옛 역할은 잊고 도반으로 가야

SNS에 이 글을 포스팅했을 때 많이 달린 댓글이, 삼식이가 되면 이런 대접이냐며 불쌍하다는 거였다. 농담 같은 이 말은, 은퇴해서 집에 있는 남자를 돈 벌지 않는 백수 취급하며 구박하지 말라는 질책이다.

물론 그 농담 같은 진담에 귀 기울일 여자는 아니다. 지금까지 남자에게 해다 바친 밥상이 대충 헤아려도 1만 여 끼다.

세상에! 누군가가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만 끼가 넘는 식사를 준비했다니, 나 같으면 엎드려 절을 하는 자세로 그 밥상을 받을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찬거리 준비 정도를 돕는 건 당연하지.

세 끼니를 챙기는 수고로움

새삼 이제 와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 분담에 시비를 걸거나, 세상이 달라졌으니 부부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진지한 논쟁을 펼치고 싶지는 않다.

두 남녀가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나 어떤 세월을 살았건 나이 예순을 넘겨 밥벌이의 전쟁을 끝내고 여유 있는 생활로 들어섰으니 자신의 끼니 정도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여자도 맞벌이를 했건 전업주부를 했건 나름의 역할을 했을 테니 말이다.

아내들(남편과 아내라는 호칭 자체가 성역할의 고정이라는 편견이 있어 쓰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그런 구분이 끝나지 않았으니 굳이 피하지 않는다)에게 물으면 남편의 은퇴 후에 느끼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밥 세끼를 챙기는 일이라고 한다.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남편을 뜻하는 삼식씨라는 속칭이 아내의 그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자녀는 독립해서 나가 살거나, 제각기 바빠서 함께 식탁에 앉기도 어려운 형편인데 남편은 이제 죽을 때까지 밥 차려 달라며 붙어 있다 생각하면 아내는 한숨부터 나온다.

훌륭한 밥상을 차릴 정도로 능숙한 요리를 바라는 아내는 없다.

하루에 한 끼라도 알아서 챙겨먹고 가끔은 서툰 솜씨라도 아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서 와인이라도 한 잔 하자는 그 정도의 성의와 마음을 보고 싶다. 모든 것은 태도, 유식한 말로 애티튜드에 있다. 요리법은 인터넷에 널렸다. 백아무개의 레시피를 비롯해 요리 초보인 남편이 따라 하기 좋은 스피드 메뉴가 가득하다.

60대의 선택, 요섹남

요섹남이라고 아실 거다. 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

텔레비전에서 달인의 칼질을 하고 소금을 흩뿌려가며 스테이크를 굽는 멋진 셰프만 섹시한 게 아니다. 부엌을 어지럽히고 손을 데여가며 요리에 몰두하는 60대의 남편이야말로 섹시한 남자다.

고향 선배가 ‘딸 내외랑 손주가 오는 주말이 난 제일 좋아’ 라고 해서 귀여운 손주 자랑인가 했더니 밥 타령이었다. “얘들이 오면 식탁의 반찬이 달라지거든!”

아직도 챙겨주는 밥이 따듯하고 포근한 부부 사랑의 징표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밥 타령에 아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 친구는 매일 밥 타령하는 남편이 꼴 보기 싫을 때를 말하면서 극단의 예를 들어주었다.

“주말에도 바빠서 밥 한 끼 같이 먹을 시간이 없는 아들이 모처럼 집에 있는 날, 마음먹고 갈비찜을 했더니 남편이 먼저 달려와 우적우적 먹어대는데 어찌나 꼴 보기 싫든지. 입에서 빼내서 아들 주고 싶더라니까.”

함께 있던 친구들은 심하다고 하면서도 한편 공감이 가는지 유쾌하게 웃어댔다.

60대의 미란씨는 남편에게 향하는 애증의 갈등을 이슈로 들고 온 고객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이 미웠다가 고왔다가 해요. 그 마음이 어찌나 수시로 변하는지 내가 정서 상태가 이상한가 싶을 정도예요.”

혼자 있을 때 차분하게 생각하면 40년 가깝도록 집안 경제를 책임지고 가장 노릇을 해 온 남편이 고맙고 애틋한데 옆에서 잔소리를 하거나 미운 짓을 하면 그 마음이 한순간에 돌변한다고 했다.

“종일 함께 집에 있는 날은 더해요. 신문을 보면서 하는 한마디도 듣기 싫고 화장실에서 내는 소음도 유난히 싫어서 문 닫고 하라고 쏘아대곤 하죠.”

사소한 잔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작은 말다툼이 이어지는 시간을 보내다가 끼니를 챙겨주고 잠자리에 누우면 그렇게밖에 못한 자신이 한심하고 남편에게 공연히 미안한 그런 마음이 되풀이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코칭대화를 계속 하면서 미란씨는, 자신이 앞으로도 일상의 치다꺼리를 해줘야 하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남은 인생의 큰 짐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모든 아내가 그렇지는 않지만 흔히 듣게 되는 이런 이야기는 이제 사회인으로서 세월을 끝내고 가정으로 돌아온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마음 한 편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남편은 가장 든든한 조력자로 아내를 여전히 믿고 의지하는데 아내는 이제 그 노릇에 질렸거나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이 거리감.

“평생 식탁을 차리고 가족의 돌봄 역할을 하는 일이 얼마나 지루하고 피로한지 남자는 잘 모를 겁니다. 집안일이 뭐 그렇게 대단히 어렵냐고 하겠지만 어려운 게 아니라 성가시고 즐겁지 않은 거지요. 가사노동이라는 게 해놓으면 특별히 본치가 안 나지만 대충 하면 바로 모자라는 티가 나잖아요? 지루하고 무의미해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집안의 누군가 해치워야 하는 일이죠.”

수십 년 해온 이런 일을 자녀가 떠나고 몸과 마음은 쇠락해져 가는데 여전히 혼자서 떠맡아야 한다는 사실이 숨 막히고 그 노릇을 남편이 강요한다고 생각하면 미워진다고 미란씨는 말했다.

함께 일하는 동사섭으로 마음을 움직여라

사섭법(四攝法)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네 가지 방법이다. 중생을 불법(佛法)에 끌어들이는 보살의 기본 행위인 사섭은 상대가 원하는 바를 알아 행함으로써 먼저 다가가는 일이다.

보시섭(布施攝)은 필요한 재물로 욕구를 충족시켜 마음을 열고, 애어섭(愛語攝)은 사랑스러운 말로 마음을 나눈다. 이행섭(移行攝)으로 실제의 이익을 가져다주어 마음을 다루고, 동사섭(同事攝)으로는 어떤 일을 함께 하여 마음을 움직인다.

동사섭은 상대가 처한 환경에서 함께 일하고 생활하여 생사고락을 같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불도에 이르도록 돕는다. 이는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느끼는 가장 적극적인 공감의 방법으로 사섭법 중에서도 실천이 가장 힘들다고 여겨진다.

노년으로 가는 부부에게 동사섭만큼 사랑스러운 법문이 있을까.

한사람은 바삐 일을 마쳐야 하는데 동행하는 한 사람이 풀밭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잔소리를 한다면 절대 마음을 얻지 못하며, 두 사람 사이에는 평온함이란 없다. 여자가 같이 먹으려고 바삐 끼니를 챙기는데 남자가 텔레비전 앞에서 ‘커피 한 잔 타 주시오’ 라고 하면 눈 흘기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으랴.

남편이 경제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던 시절을 지나 함께 늙어가는 한가로운 처치가 되면 기꺼이 동사섭의 자세로 내려와야 한다. 꼴을 베면 같이 꼴을 베고 짐을 지면 같이 짐을 지는 자세가 동사섭이요 동고동락이다.

아이들이 오면 별미를 하고 늘 보는 남편은 찬밥이나 데워준다고 불평 말라 삼식씨여! 그대도 어쩌다 손님처럼 식탁에 오면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아니, 그 색다른 식탁을 그대가 차려볼 생각은 없는지? 집에 있으면 구박이나 당한다며 ‘친구와 당구치고 자장면 사먹으면 되지’ 하고 나가지만 말고 일주일에 하루라도 부인님을 삼식양으로 만들어드리면 어떨까.

외벌이를 했건 맞벌이를 했던 이제 옛 역할은 잊자. 남은 인생을 든든한 도반으로 걸어가는 파트너가 되기로 하자. 여자가 식탁을 차리면 남자는 설거지를 하고, 여자가 청소를 하면 남자는 빨래를 걷어서 정리하는 풍경. 여자가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밥 줘!’ 보다 ‘밥은 먹었어? 뭐 차려줄까’ 하며 부엌으로 나가는 풍경. 예순의 부부가 평화롭게 늙어가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심하다고,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생각하시는 남자 분은 그 이유를 써서 이메일로 보내주시길 바란다.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남자의 입장에 서서 의견을 전해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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