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 남편 죽게한 그들을 용서 했어요”
“저는 우리 남편 죽게한 그들을 용서 했어요”
  • 정리=김주일 기자
  • 승인 2019.11.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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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자 보살 (철도원 故 손무생 미망인)
박삼중 스님이 억울하게 숨진 철도원 故 손무생 미망인 변순자 보살(오른쪽)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1992년 2월 9일 부산시 동구 범2동 철도건널목에서는 술취한 두 행인을 구하고 달려드는 열차를 피하지 못해 건널목 철도원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살신성인의 주인공은 故 손무생씨이다. 그는 살아 생전 25년을 한결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행인의 안전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는 신념으로 고달픈 근무 환경에도 묵묵히 책임을 다해온 이다. 손씨는 평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돕는 일이라면 팔을 걷어 부치고, 자다 말고도 쫓아갈 정도로 봉사 정신이 투철했다고 한다.

1992년 건널목 철도원 남편 살신성인
남편 죽게 한 도망친 취객 모두 용서
자녀들 훌륭한 사회인으로 잘 키워내

내가 손씨의 딱한 사연을 접한 것은 너무 기이한 인연에 의해서였다. 당시 부산에는 내 포교당이 사고가 난 서면에 있어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부산을 다녀왔다. 사고 다음날인 10일에도 부산엘 내려갔는데,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왠일인지 포교당으로 직행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시내를 조금 활보하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포교당으로 향했다. 내가 탄 택시가 부산 동구 범2동 철도 건널목 앞에서 차단기가 내려져 잠시 멈춰선 동안 택시 기사가 내게 말을 건넸다. “스님, 바로 어젯밤 저 건널목에서 한 의인(義人)이 슬프게 떠나갔어요.” 나는 궁금해 졌다. 다시 택시 기사에게 “무슨 얘기인지 좀 더 자세히 해줄 수 없습니까”라고 요청하자, 기사는 건널목 지기의 살신성인에 대해 들려줬다. 그 기사는 “故 손무생씨의 직무 수행이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의 직무는 차단기를 제 때 내리고 행인들과 자동차를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지키는 일입니다. 어둠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건널목을 가로 질러 가는 두 사람 목숨까지 구해줘야 할 의무는 없는데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라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 이후 언론 보도로 듣자하니 故 손무생씨는 부산 지방 철도청 청원 경찰로 일한 지난 25년간 이사를 25회나 갈 만큼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손 씨가 구해준 취객 두 명은 그길로 도망쳐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을까”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깊게 솟구쳤다. 더군다나 미망인인 변순자 보살은 수족마비 증세로 누워있어 당장 생계마저 위협받게 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나는 이 유가족을 돕는 모금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당시 대구교도소 재소자 중 사형수인 차순석씨와 한 젊은 사형수의 어머니도 10만원씩 기부 하는 등 안타까운 사연에 많은 이들이 모금에 동참했다. 청와대를 경비하던 30경비단서도 이 딱한 사연을 내가 강연중에 얘기하자 당시로서는 큰 돈인 3천만원을 모금해 전달하기도 했다. 나도 내 책 <가난이 죄가 아닐진데 나에게는 죄가 되어 죽습니다> 인세 중 일부를 모아 250여만원을 갖고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난 2월 16일에 故 손무생씨의 집을 찾았다. 그날 처음 만난 손무생씨의 미망인 변순자 보살은 한 눈에 봐도 약해 보였다. 나는 변 보살에게 “그 술 주정꾼 두 사람은 아직도 연락이 없습니까?”하고 묻자 그는 담담하게 “스님 저는 이제 그 사람들 용서했어요”라고 아주 순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니 어떻게 보살님 남편을 저 세상으로 가게 만든 장본인들을 그리 쉽게 용서할 수 있어요”라고 의심쩍은 말투로 물으니, 그녀의 대답은 지금도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 명법문이었다. “그 두 취객은 평소 남편과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니, 남편에게는 필시 어떤 악 감정도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된 것도 전생의 업연에 의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충격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빨리 정신을 차려서 남편의 고귀한 희생 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자녀들을 열심히 키울 겁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독실한 불자인 변순자 보살의 말에 나는 수행자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단 돈 1백만원을 떼어 먹힌 일가지고도 분해서 잠 못자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많은데, 어찌 이런 보살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감동 스러웠다.

더욱더 감동적인 것은 얘기 끝에 미망인이 털어놓은 남편 손무생씨의 자상한 마음씨였다. 남편은 가난했지만, 가정적인 성격이어서 몸이 불편한 아내 대신 밥도 지어주고 청소, 빨래도 해주며 가족들을 돌봤다고 한다. 대화 도중 미망인 변순자씨가 갑자기 목에서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는데, 거북이 모양의 제법 무거워 보이는 장식이 달린 금목걸이였다. 이것은 지난 1월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선물이 된 이 금목걸이는 남편이 아내 모르게 하루 저녁 한끼씩 굶고 모은 돈으로 계를 만들어 마련해 준 눈물겨운 선물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남편이 이 금 목걸이를 마련하기 위해 저녁을 굶는 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지, 건강 잃으면 금목걸이가 다 무슨 소용있냐”고 감사는 커녕 오히려 남편을 야단치고 화냈다고 한다.

암튼 변순자 보살은 인생의 큰 위기를 성실한 삶의 자세와 불심으로 잘 넘기고, 30년전 다짐처럼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냈다. 큰딸은 영국에 유학한 뒤 대학 교수로 있고, 작은 아들은 경찰관이 됐고, 막내는 소방관이 됐다. 손자와 함께 4년 전에는 서울 보덕사로 전 식구가 찾아와 나와 식사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요즘도 가끔씩 변순자 보살은 투병중인 나에게 안부를 물어온다.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든 변순자 보살이 그간의 고뇌와 업을 말끔히 씻고 앞으로는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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