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길(59)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유정길 위원장은… 1986년 수행공동체 정토회 창립 초기부터 함께 불교수행과 사회운동을 해왔다. 에코붓다의 이사로 ‘생태사상과 교육운동’과 ‘음식물쓰레기 제로-빈그릇운동’등 대안적 환경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공양주로 있다가 9.11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칸다하르, 바미안 등에서 4년간 긴급구호와 개발협력활동을 했다. 돌아와 6년여 평화재단의 기획실장으로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운동을 펼쳐왔다.평화재단 기획실장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전국귀농운동본부 부본부장 아프가니스탄 주재 JTS 카불지원 팀장 등을 역임했으며,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전국귀농운동본부 귀농정책연구소 소장, 한살림 마음살림위원회 연수위원, 국민농업포럼 공동대표,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정토회 에코붓다 이사,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조계종 환경위원회 위원, 지역아동센터 서울지원단 운영위원, 한국환경민간단체진흥회 이사, 고양시자원봉사센터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2016년부터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불교와 만나다
수배 학생시절 법륜 스님 만나
해인사 수련대회서 불교 입문
불교교재 편집 도우며 본격 공부

 

부처님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중생의 삶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실천의 문제가 요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불법의 실천이 전체의 삶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은 수없이 많다. 출가하여 사문의 길을 걷는 길부터 여러 분야에서 불법을 전하고 실천하는 일까지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그 속에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부터 인류 전체를 들여다보는 일까지 여러 가지의 길이 있다. 불법(佛法) 실천의 수많은 길 중에 인류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길은 어디쯤에 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일까. 그 어디쯤에서 길을 시작하고, 지금도 그 어디쯤에서 부처님 말씀을 찾아가는 이가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회단체를 만들고 여법한 사회를 이뤄나가는 것에 삶을 가치를 두고 있다. 그것을 ‘생명살림’이라고 말하는 그는 얼마 전 자신이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와 다시 부처님 말씀의 그 어디쯤에서 서있다. 불교환경연대(상임대표 법만)의 유정길 운영위원장이다.

불교환경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2003년 5월 23일 오전 10시 40분, 경기도 과천과 서울의 경계인 남태령 고개, 과천을 지나 서울에 들어선 두 사람이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였다. 두 사람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57일 동안 도반들과 함께 삼보일배로 부안서 서울까지 왔다. 한국환경운동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의 중심엔 한국불교가 있었고 한국불교를 대신하는 이름은 불교환경연대였다.

불교계가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가야산 국립공원 내 골프장 승인 등 1990년대 지방자치단체들이 벌인 마구잡이 지역 개발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지자체 출범 이후 2000년대에 걸쳐 다양한 개발들로 인해 불교계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속리산 문장대 용화지구 온천개발, 홍제암 계곡 유원지화, 문경 봉암사 주변 온천개발, 백담사 입구 종합휴양지 조성 등 불교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이슈들이 연이어 터졌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는 대형 국책 개발사업들이 본격화됐고, 대표적인 것이 새만금 간척사업이었다. 군산과 부안을 잇는 34km의 방조제로 갯벌을 메워 4만 2천ha 규모의 간척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갯벌에 의지해 살아가던 어민들의 터전과 수많은 동식물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것이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등은 57일간의 삼보일배로 자연환경을 배제한 개발일변도의 사회적 분위기에 경종을 울렸다.

이때의 ‘삼보일배’는 다른 환경운동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시위였다. 밖으로의 외침이 아닌 안으로의 참회였다. 사업 당사자들을 향한 외침이 아닌 공업중생으로서의 깊은 참회의 발현이었다. 환경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된 것이다.

새로운 환경운동, 불교환경연대 출범
불교계 환경운동의 중심인 불교환경연대의 시작에는 유정길 운영위원장이 있었다. 그는 수경 스님 등과 함께 2000년 6월 출범한 ‘지리산 살리기 댐 백지화 추진 범불교연대’에서 지리산 개발사업을 막기 위한 운동에 참여했다. 지리산 댐은 무산됐다. 지리산 댐 건설을 저지한 범불교연대 회원들은 그 동력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었다. 불교계를 대표하는 환경운동 단체가 탄생한다.

유정길이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2001년 9월 수경 스님을 초대 상임대표로 한 불교환경연대가 문을 연다.

불교환경연대는 이후 한국환경운동사와 함께 한다. 북한산국립공원 살리기 운동, 경부고속철도 금정산, 천성산 관통 백지화 운동, 새만금 갯벌 살리기 삼보일배(부안 해창 갯벌~서울 광화문), 천성산 살리기 운동, 지율 스님과 생명평화를 위한 종교인 참회기도 추진활동, 발우공양의 생활화, 빈그릇 운동, 종교인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 생명의 강 지키기 불교행동, 숲해설가 양성, 4대강 생명살림 100일 수행길 등 이 땅의 올바른 환경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2016년까지 불교환경연대의 역사에 유정길 위원장의 이름은 없다. 그는 창립 당시 창립준비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불교와 만나다 법륜을 만나다
1985년 유정길은 수배자였다. ‘운동권’ 학생이었다. 유 위원장은 서울 봉천동 서울대 근처 모 선원에 몸을 숨겼다. 그곳에는 법륜 스님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사회문제를 고민하던 20여 명의 대중이 함께 있었다. 유 위원장은 불교의 ‘불’자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법륜 스님도 지금의 법륜 스님은 아니었다. 불교의 ‘불’자도 모르는 유 위원장은 하루에 4번 씩 기도와 능엄주 독경을 해야 했다.
“하루에 2천배는 했던 것 같아요.”
한 달 후, 유 위원장은 합천 해인사에서 열리는 영남불교학생회 수련대회에 함께하게 된다. 실무팀으로부터 지도교사를 위임받은 유 위원장은 중고등학생 700여 명과 함께 수련대회에 참여한다. 그리고 불교를 만난다. 법륜 스님의 ‘부처님의 일생’, ‘반야심경’, ‘금강경’ 등을 비롯해 삼천배, 새벽예불, 성철 스님 등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그때 성철 스님도 가까이서 뵐 수 있었고, 법륜 스님의 법문과 강의를 통해서 불교를 새롭게 알게 됐어요.”

유 위원장의 행보에서 법륜 스님은 큰 인연이었다. 그 인연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수련대회에서 돌아온 유 위원장은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마침내 구속되어 1년 동안 옥고를 치른다.

환경과 만나다
정토회 불교사회교육원 사무국장
법륜 스님의 권유로 환경공부
공양주 소임 자청 새로운 모색
아프칸 긴급구호 현지 팀장 파견
2001년 불교환경연대 창립 선봉
2016년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다시 만난 불교, 정토회 시작
1년 동안의 옥고를 치른 유 위원장은 어느 날 우연히 봉천동 선원 시절의 인연을 만난다. 그는 여전히 법륜 스님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법륜 스님은 봉천동 선원을 나와 서울 비원 근처에 포교원을 열었다. 비원포교원이다. 유 위원장은 비원포교원과 다시 인연을 이어간다. 비원포교원은 대학생불교회 학생들을 위한 불교 교재를 만들고 있었다. 교리교육의 지침서인 <실천적불교사상>이었다. 유 위원장은 교재의 편집에 동참하면서 다시 많은 불교공부를 하게 된다.

1988년 1월, 비원포교원은 홍제동으로 자리를 옮겨 정토포교원을 개원하고 중앙불교교육원을 설립한다. 3월과 4월에 불교사회교육원과 불교사회연구소를 열면서 정토회가 시작된다. 유 위원장은 불교사회교육원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민족불교학당, 민족여성학교, 민족문화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불교를 바탕으로 한 불교사회교육을 담당했다. 당시는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대대적인 사회교육이 활성화 되고 있을 때였다.

유 위원장이 담당했던 불교사회교육은 일반사회교육과는 결을 달리 하는 것으로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회교육이다. 불교에서 바라보는 노동관, 여성관, 인권 등을 말한다.

폐문정진, ‘환경’과 만나다
1990년 사회주의의 붕괴는 사회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유 위원장이 이끌고 있었던 불교사회교육원을 비롯한 모든 정토회 모임들은 내부적으로 새로운 모색의 필요성을 느끼고 3년여의 폐문정진에 들어간다.

“그동안 저희가 해왔던 모든 교육과 실천들을 시대에 맞게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수정해서 각 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주변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사회단체의 노선변경은 배신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토회 모임들은 대학생불교회, 불교청년회, 불교사회운동단체 등의 지원사업 등 모든 활동과 교육을 중단하고 불교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각 분야에 걸친 모색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가 그때 많은 공부를 시작했어요. 인문학에서부터 과학, 사회학 등 각자 자신의 분야를 찾아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제게 맡겨진 숙제가 ‘환경’이었어요.”

유 위원장은 이때 환경의 문제에 눈뜨기 시작한다. 법륜 스님의 부촉이었다. 하지만 유 위원장은 환경이라는 분야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당시 시대적 흐름에서 환경은 노동이나 인권, 평화 등 다른 분야에 비해 변방의 이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 위원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환경의 문제’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환경문제,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단순히 자연환경의 훼손을 막고, 또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동안 인류가 지향해온 발전과 개발, 진화 등의 개념을 송두리째 뒤집는, 패러다임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동안 잘 먹고, 잘 사는 것, 경제성장,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 등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통된 지상목표가 완전히 난센스라는 것이죠. 환경문제가 주는 메시지는 한정된 자원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을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명이자 미혹이라는 것입니다. 그 잘못된 생각과 실천의 과보가 ‘환경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이죠.”

유 위원장은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모든 실천들이 무명과 미혹에서 출발한 잘못된 실천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문제가 던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발전과 개발 방식으로는 더 이상 발전과 진보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문제가 자연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새롭게 지향해야 할 발전과 개발의 새로운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 가지의 화두가 도출됐다. ‘좋은 생산력은 무엇일까’, ‘좋은 생산관계는 무엇일까’, ‘좋은 인간관계는 무엇일까’,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였다. 답은 부처님 말씀 중에 있었다. 그 동안의 실천은 ‘너’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답은 ‘나’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천은 ‘우리가 먼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보자’였다. 그 동안 밖을 향해서 던졌던 목소리를 안으로 들여온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환경’이었다. 1993년 9월, 정토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만일결사’에 들어간다. 유 위원장이 이끌었던 불교사회교육원은 불교환경교육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생태학교’라는 이름으로 ‘환경’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다. 그리고 1999년 ‘에코붓다’로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바꾼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시작된 정토회는 북한동포 돕기, 쓰레기 제로 운동, 아프칸 지원사업, 빈그릇 운동, 4대강 살리기 24시간 릴레이 기도 등 많은 사회적 이슈를 이끌며 새로운 사회, 올바른 사회 구현을 위한 실천을 이어갔다.

정토회 밖으로
유 위원장은 2001년부터 정토회 공양주 소임을 맡는다. 또 한 번의 새로운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2002년 9.11테러를 기점으로 내전이 끝난 아프카니스탄의 긴급구호와 개발지원사업을 위해 카불 지원팀장으로 파견되어 2005년 8월까지 구호와 마을개발지원활동을 펼친다. 아프칸에서 복귀한 유 위운장은 가난한 나라에 대한 긴급구호활동과 개발협력정책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한국정부의 ODA정책에 대한 논문, 발표, 강연. 토론등의 활동을 이어가며 불교내의 해외개발NGO들의 활동을 돕고 설립을 지원하고 개발구호의 실천적 이론을 개발 학습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2005년 8월부터 2010년까지 6년 동안 정토회 법륜 스님이 주도하여 설립한 동북아의 평화와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정책연구 민간기구 ‘평화재단’의 기획실장으로 활동했다.

유 위원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얻은 깊은 지병으로 2010년 요양을 위해 정토회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필요로하는 곳에 잘 쓰이는 것이 보살의 삶”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여러 사회단체를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한살림 마음살림위원회, 전국귀농운동본부 귀농정책연구소, 국민농업포럼, 지역아동센터, 고양시자원봉사센터, 지혜공유협동조합 등이다.

다시 불교환경연대
불교환경운동의 중심이었던 불교환경연대는 2010년 수경 스님의 칩거로 침체기를 맞는다. 2015년 9월, 칩거 중이었던 수경 스님은 침체된 불교환경연대가 더 이상 가라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수경 스님의 생각 속에는 유정길이 있었다. 그가 맡아야 할 직책은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2016년 조직을 정비한 불교환경연대는 새롭게 시작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 위원장이 운영위원장으로 함께한다.

“그 동안 불교환경연대가 사회적 문제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불교 자체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데는 다소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복귀한 유 위원장은 회원 수를 늘리는 등 불교환경연대의 복원과 더불어 불교자체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기 시작했다. 생명살림 실천운동, 녹색불교 만들기 운동 등의 커다란 실천 속에서 숲과 국립공원 지키기, 강살리기 방생운동, 녹색사찰만들기, 사찰숲생태활동, 생명살림 생활실천, 환경법회, 교육 등을 펼치고 있다. 이 모든 실천은 유 위원장이 새롭게 눈 뜬 ‘환경’의 패러다임에서 비롯된다. 먼 길을 돌아 자신이 만들고 떠났던 자리로 다시 돌아온 유 위원장의 앞으로의 계획은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불교환경연대의 활동에 마음을 모아주십시오”였다. 불교환경연대 사무실의 모든 사무가구는 녹색이었다. 몸속까지 녹색일 것 같은 유 위원장의 합장한 두 손에서 녹색의 내일을 본다.

 

아프칸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정길 위원장.
정토회 에코붓다 도반들과 함께(윗줄 우측 첫 번째 유정길 위원장, 두 번째 법륜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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