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나는 매일 출퇴근길에 카레이서처럼 차를 달렸다. 출근길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아침 회의 시간에 맞추려고, 퇴근길엔 하원한 아이를 혼자 두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달렸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퇴근길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았지만 그 때의 습관이 좀체 사라지지 않아 나도 모르게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지구를 위해서 자전거를 타자고 환경 칼럼을 쓰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거야?’ 하고 질책해도 어쩔 수 없다. 차가 없다면 나의 여건상 직장 생활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엄청난 양의 탄소발자국을 지구에 남기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

탄소발자국은 개인 또는 단체가 직접, 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료, 전기, 생활용품 등이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 발생요인은 출퇴근 교통수단이니 출퇴근 교통수단 중 가장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자가용 사용자로서 나도 지구에게 엄청나게 미안하다.

이처럼 탄소발자국은 생활의 전 영역에서 남는다. 요즘 식당에서 컵 대신 사용되는 종이컵 하나의 탄소발자국은 얼마일까? “저는 종이컵입니다. 몸무게는 고작 5g이지만 탄소발자국은 11g입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종이컵이 자기를 소개하는 말이다. 종이컵은 몸무게보다 두 배는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1년간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종이컵은 약 120억 개이고 여기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은 약 132,000톤에 달하며, 이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나무 4,725만 그루를 심어야 한다. 또한 일회용 컵을 분해하는 데 20년이 걸린다. 내가 쓴 종이컵은 쓰레기통에 버려진지 오래지만 11g의 어두운 탄소발자국은 지구에 그대로 남겨진 것이다. 탄소발자국이 많아질수록 오존층은 얇아지고 기후 온난화를 불러온다. 오늘 내가 한 잔의 커피나 물을 마시기 위해 무심코 사용한 종이컵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지구 환경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 끼치는 종이컵의 영향을 생각한다면 종이컵으로 가던 손이 머그컵이나 텀블러로 향하지 않을까? 설거지가 번거롭다고 종이컵을 내놓으려다 유리컵을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결국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탄소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방법은 없다. 발을 내디뎌 걷는 내 행위에서도 이산화탄소는 발생하고 있고, 휴대폰, 과자 한 봉지, 컴퓨터, TV 등 모든 것이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탄소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면 줄이는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 차선책이 최선책이니 순간의 편리를 위해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줄이고 가능한 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을 사용하고, 쓰지 않는 전등은 끄며,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나무 수십 그루를 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오늘 하루 내가 남긴 탄소발자국이 지구를 뜨겁게 만든다는 걸 잊지 않고 일상의 사소한 불편을 감수해 나갈 때 그것들이 모여 변화가 되고 지구를 위하는 우주적인 실천이 될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자신의 뒤에 남는 탄소발자국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의 이 글 역시 종이에 인쇄되어 나오기까지도 탄소발자국을 남기니 지구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실천을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 빚을 조금은 탕감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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