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에 쓴 부부상담 칼럼에
“스님이 결혼 상담이냐” 악플
설리 자살 사건에 다시 떠올라

반사회성·인지공감 강한 악플러
타인 괴로움, 자기 영향력 착각
두 번째 악플 화살 맞지 않아야

감정·생각은 내가 아님을 인식
부정적 감정 인지하고 다스려야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한 번은 부부상담에 관한 관계치료사로서의 경험을 적었다. 주말 판이라 독자들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인터넷 판에 실린 글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내용이 스님이 무슨 결혼 상담이냐는 등의 부정적인 댓글이 주를 이루었다. 설왕설래는 며칠을 두고 계속되었고 처음 경험한 격한 익명의 독자들 반응에 놀라 며칠 동안 가슴앓이를 한 기억이 있다.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설리는 세상에 큰 화두를 던졌다. 무자비한 악플 테러와 이를 방기한 사회적 무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악플은 인신공격형·낚시형·광고형·장난형 등의 유형으로 나누어지는데, 익명이란 그늘에 숨어 개인적인 스트레스 해소나 연예인·주변인에 대한 감정 표출의 차원, 또는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악플을 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언론의 자극적 보도가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악플에 대한 관점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악플은 특수한 행동이 아니며 모든 이가 잠재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회심리학적 관점과 특정한 성격 장애나 병리적인 심리 역동을 가진 이들이 보이는 문제 행동의 한 가지라는 정신병리학적 관점이 있다.

특히 정신병리적 특성의 연구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악플러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월등한 점수를 보인 두 가지 부분이다. 그것은 반사회성 성격영역과 인지공감능력영역이다.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는 반사회적 성향에 타인의 고통은 알지만 느끼지 못하는 인지적 공감능력이 더해지면, 피해자들이 받을 고통을 예상하고 더 효과적으로 상처를 입힌다. 때린 곳을 집요하게 더 때려서 상처를 내고 그 상처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잡아함경>에서 사물을 대하면 좋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어리석은 범부의 속성이라 진단하고, 그들은 그것에 매달려 원망하기도 하고 애착하기도 한다고 그들의 행동 경향을 언급하고 있다. 악플러의 공격을 당했을 때의 대처방식에 대해 부처님은 상윳따니까야 <화살(살라)>을 통해 사람이 화살을 맞을 수는 있지만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아야 한다고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악플러에 의해 첫 번째 화살에 맞았을 때 쓸 수 있는 명상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마음에 일어난 부정적 감정을 인지하고 손을 꼭 쥐고 이렇게 외친다. “멈춰!” 이어서 손가락을 하나씩 펴면서, “하나, , 이라고 숫자를 센다. 호흡을 하면서 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고 나서 다음 문장을 따라한다. “감정은 감정일 뿐 내가 아니다.”, “생각은 생각일 뿐 내가 아니다.”

악플러는 괴로움을 증폭시키는 사람들의 아픔을 먹고 자라는 특성이 있다. 바로 자가 증폭 장치에고(Ego)’를 떼어내는 순간,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지혜로운 이의 삶을 살게 된다.

악플은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형태의 구업(口業)’이다. SNS에서 이뤄지는 거짓말, 이간질, 욕설과 비방은 구업이기도 하지만 바도 신·의업과도 연결된다. 악플은 구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말, 행동 모두에 걸쳐서 악업을 짓는 행위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어딘가에서 악플을 달고 있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올린 악플 하나가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옭아매는 악업의 사슬이 된다는 점을 알길 바란다. 어렵다면 방금 악플을 소리내어 읽어보라. 얼굴이 붉어질 것이다. 더불어 좋은 말을 하는 것이 복덕을 짓는 구도인 점도 함께 인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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