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선리연, 21일 인환 대종사 추모학술대회
원적 1주기…생애·사상 조명
“선정과 학문 통해 선교일치”
2백여 대중 참석… 스님 추모

조계종 원로의원을 지낸 인환 스님〈사진〉의 생애와 사상을 학술적으로 살펴보는 학술대회 열렸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은 10월 21일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만해홀에서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추모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인환 스님 원적 1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학술대회에서는 인환 스님의 생애와 선학·율학 연구에 대해 조명하는 연구 논문들이 발표됐다.

인환 스님의 제자로서 회고록 인터뷰를 진행한 최동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생애와 스승 원허 스님과의 불연’을 통해 스님의 생애 전반을 개괄적으로 살폈다.

최 교수는 인환 스님을 “계·정·혜 삼학을 연구하고 실천한 율승, 선승, 학승”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인환 스님은 자교오종(藉敎悟宗)으로서 선의 실천을 교리적 바탕에 뒀다. 계율과 선정의 실천을 불교학연구와 일치시켜 선교일치를 실현했다”면서 “또한 캐나다에 대각사를 개산해 북미포교를 했고, 교수 은퇴 이후에는 포교사로서 법회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그는 연구자이면서 교수였으며, 포교사이자 전계사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인환 스님이 보여준 폭 넓은 수행 이력은 스승인 원허 스님의 영향이라는 게 최 교수의 분석이다. 지계행은 인환 스님이 은사 원허 스님을 따른 것으로, 원허 스님 역시 안성 청룡사 용허 율사의 영향을 받았다. 평생 수좌들 지원에 헌신했던 원허 스님이 지계청정의 모범이었던 점은 청담 등 마하연을 방문했던 많은 스님들이 증언한 바 있다.

또한 원허 스님은 학승은 아니었으나 불교계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금강산불교회를 조직하고 김태흡과 석전 박한영 등의 연구자를 지원했다.

최 교수는 “인환 스님은 연구와 학술발표는 활발했으나 법맥제자 양성과 도량 개산 등은 하지 않았다. 유품도 학술 관련 서책과 문서로 이는 스승 원허의 무소유와 관련이 있다”면서 “원허 스님은 표훈사와 낙산사 주지를 역임했으나 옷 가지 1~2벌만 남겼다. 인환 스님은 그런 스승의 무소유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선학 연구와 사상’을,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가 ‘호암당 인원 대종사의 계율학 연구와 사상’을 각각 발표했다.

한편, 인환 스님은 1931년 원산 출생으로 6.25한국전쟁 중 남한으로 피난왔다가 불문에 귀의하게 됐다.1952년 선암사에서 효선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인환 스님은 1953년 선암사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6년 해인사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4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75년 ‘신라불교 계율사상 연구’ 논문으로 일본 도쿄대 문학박사를 취득한 후 1982년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부임해 1996년 정년퇴임까지 불교대학장, 불교문화연구원장, 정각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됐으며, 그해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서울 삼각산 경국사 환희당 한주로 주석해오던 스님은 지난해 10월 26일 원적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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