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까?

무착 스님 지음/정화 풀어씀/북드라망 펴냄/1만 8천원

이 책은 대승불교 초기 대표적 경전으로 대승불교의 인식론과 실천론의 기반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섭대승론〉을 오늘날 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풀어 쓴 책이다. 〈대승기신론〉과 〈육조단경〉 등을 우리말로 옮기고, 〈중론〉 〈금강경〉 〈반야심경〉 등에 대한 강의를 책으로 펴내는 등, 불교철학의 대중적 수용을 위해 힘쓰는 정화 스님은 이 책에서 아뢰야식, 의타기성, 변계소집성, 원성실성 등 난해한 불교유식론의 핵심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부처님이 설하신 연기설을 바탕으로 생명계 전체가 하나의 수레이자 큰 수레(大乘)임을 깨닫고 자리이타(自利利他: 자신과 남을 모두 이롭게 함)의 보살행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무착 스님은 인도 북서부 간다라국의 프라쟈프라(현재 파키스탄 페자르)서 태어나(생몰연대는 대략 AD390~480년 경으로 추정), 설일체유부(정신계와 물질계를 구성하는 ‘75가지의 요소(法)’가 실재한다고 주장한 불교의 부파)로 출가했다. 출가 이후 교파 가르침을 학습하고 선정수행에 매진한 결과 욕망을 여읜 선정의식(삼매)을 체화했으나, 〈반야경〉서 주창한 공을 이해할 수가 없어 절망감에 싸인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 시기에 아라한과를 성취한 빈두루 스님을 만나 그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한 결과 심신탈락의 경지, 곧 자아의식이 사라진 해탈의 경지를 이루면서 자리의 바탕이 되는 자수용지(自受用智)를 성취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미진한 구석이 있는 듯하여 더욱 가열차게 선정수행 한 결과 삼매 상태서 미륵보살을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배운다. 〈대승기신론〉 등에서는 이 같은 경험을 마음이 만든 사건인 줄 모르고 실재 사건이라 여긴다면, 귀신 장난에 놀아난 것이라 이야기 한다.

삼매 상태서 미륵보살을 자주 만나 그의 가르침을 들었다는 것은 공(空)에서 세계상(有)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세계상(有)이 조건 따라 사라지는(空) 경험을 하게 되면서 공도 공이 아니며 유도 유가 아닌 것을 체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종이라는 이름에 해당되는 종이로서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닥나무, 햇빛, 물, 흙, 사람의 노력 등이 더해진 결과 종이라는 이름을 갖는 종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현상으로서의 종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有), 실체로서의 종이는 없다(無)는 것이다.

삼매 체험을 통해 연기, 곧, 유식을 관통하는 지혜를 성취하게 되면서, 곧 자리의 자수용지와 이타(利他)의 타수용지(他受用智)를 성취하게 되면서,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조직적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섭대승론〉 이다. 대승이란 생명계 전체가 하나의 큰 수레와 같다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생명활동이 우주와 생명 역사가 종횡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우연이 필연과 같은 흐름에 개입되면서 필연이 우연으로 변하고 우연이 필연을 낳기도 하면서 생명흐름이 상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 및 말과 행동이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면서도 그 속에 생명계의 역사가 들어 있기에, 하나의 생각도 생명계의 역사를 드러내는 사건이 된다. 자아는 ‘중첩된 자아’(無 我)이면서 ‘되어 가는 자아’(無常)라는 것이다. 아집이 부질없는 집착이며 번뇌의 뿌리가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잘못 설정된 자의식과 자존심으로 상처받기에는 자신의 생명 활동이 너무나 존귀하다. 그러므로 대승경론에서는 분별된 자아에 기초해 자신을 보는 인지 습관을 내려놓고, 대승으로서의 자신을 보는 사유를 생각 생각으로 이어 가는 지혜수행이 다른 무엇보다 앞서 실천해야 할 삶의 덕목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혜수행으로 인식의 토대를 바꾼다는 측면에서는 체득해야 할 경지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사유의 내용으로 보면 일상이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최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사유를 이어 감으로, 지혜수행이 완성된 삶의 덕목을 실천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