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영화 속에 담긴 불교의 향기

인생도 영화와 같다면…

나는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다. ‘시네마 천국’과 같은 어린 시절 영화에 관한 추억이 있지는 않아도 극장은 내게 놀이터와 같은 곳이었다. 초등학교 때야 입장이 되질 않으니(입장료도 없었지만) 마음대로 출입할 수는 없었다. 대신 입구 위에 걸린 대형 광고판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종교의 궁극적 목표 같아
탈종교성 옅보이는 영화
불교 새 시대 지평 넓혀야

지금은 기계로 출력을 하지만, 내 어릴 적에는 소위 말하는 ‘간판장이’들이 직접 붓으로 그린 광고가 걸렸다. 상영 중인 영화와 다음에 개봉할 영화 그림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며 관객을 유혹했다. 내 기억에 가장 오랜 영화관 이름은 ‘계림극장’이다.

지금은 헐린 서울운동장 야구장 쪽 사거리에 있던 이 극장은 지금 생각해도 고색창연한 느낌을 주었다. 극장 맞은편에 서서 두 편의 영화 광고를 보면서, 저 영화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을지 상상하는 즐거움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때로 꽤나 에로틱한 장면이 연출된 광고도 있긴 했지만, 그것이 내게는 현실의 갑갑함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그려보는 유일한 통로였던 것 같다.

상계동에 살 때, 그때는 완전한 촌 동네였던 그곳에도 ‘상계극장’이 있었다. 아주 낡은 재 개봉관이었지만, 비가 와서 질척질척한 비포장길을 걸어가 극장 앞에서 서성거리던 시절이 아득한 꿈처럼 그려진다. 물론 이 두 영화관은 다 헐려 자취조차 남아 있지 않다.

대학 때는 학교 앞에 개봉관 ‘대한극장’이 있었는데, 길 건너편 골목에 죄인처럼 숨어 있던 극장을 잊을 수 없다. 이름조차 기억에서 지워진 그 극장은 동시상영관이었다. 강의가 비는 시간이면 친구나 선배들과 함께 가 몇 시간씩 때우곤 했다. 내 인생처럼 나는 삼류영화관이 취향에 맞았나 보다.

그러다가 2년 전 쯤에 남해에도 영화관이 생겼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관은 예전 강당을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극장 구경에 굶주린 나는, 얼씨구나 매일 가야겠다고 별렀지만, 웬걸 생각만큼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읍을 떠나 면으로 거처를 옮긴 탓도 있었지만, 개봉하는 영화가 몇 편 되질 않았다.

아무래도 찾는 이가 많은 작품만 골라 상영하니 내 입맛에 맞는 영화가 드물었다. 게다가 요즘엔 극장을 가지 않아도 영화를 감상할 방법이 많아졌다. 집에 케이블 티브이를 설치하지는 않았지만, 적은 돈을 들이고도 다운을 받아 볼 수 있는 사이트가 많아진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거기에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부터 알프레드 히치콕의 서스펜스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포진하고 있어 선택의 폭이 훨씬 넓다.

여하간 남해군에 개관한 극장에서 본 영화는 2년 동안 두 편에 불과하다. 한 편은 아이들이 가자고 보채서 본 애니메이션이었고(나는 거의 잤다.) 또 한 편은 몇 달 전에 본 할리우드 액션영화였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존 윅’ 제3편이었는데, 앞의 두 편을 재미있게 감상한 데다(그냥 시간 죽이기 용이다.) 다른 일로 영화관이 있는 건물에 갔다가 마침 시간이 맞아 봤다. 관람료도 여느 극장의 반밖에 되질 않아 자주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쉽게도 다짐에만 그치고 있다.

나는 한 번 그 영화가 마음에 들면 거듭 보는 편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 영화’가 한두 편은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명화라고 손꼽는 작품이야 나만의 보물창고라고 할 순 없을 터이고, 남들은 몰라도 나만 즐기는 그런 영화 말이다.

내게 그런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과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이 있고, 감독은 누군지 몰라도 즐겨보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과 ‘사랑의 파도’, 그리고 ‘프랭키와 자니’는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열어본다. 다 남녀 사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우울하고 쓸쓸한 세상에서 외로운 남녀가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완성하는 모습은 내게 큰 위안을 준다. 그런 사랑이 현실에서 이뤄지기를 꿈꾸면서…

부처님 가르침이 영화로 담기면

사람의 삶이 불완전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보니 종교적인 구원을 주제로 한 영화도 많다.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배경이 된 영화는 셀 수도 없다. 중학교 때 ‘십계’란 영화를 단체 관람했는데(내 모교가 미션스쿨이었다.) 웅장한 스케일에 감동도 주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서양 사람들 뻥도 심하게 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를 다룬 영화라면 뭐가 있을까? 먼저 떠오르는 게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겠다. 나도 이 영화를 꽤 오래 전에 봤다. 그때는 인상 깊게 감상했는데, 아름다운 영상과 영화의 흐름이 어지간히 느리게 진행되었다는 느낌 외에 달리 떠오르는 인상은 없다. 이번 기회에 새로 보려고 했는데, 사이트에는 없어 아쉬웠다.

얼마 전 남해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윤용진 감독의 ‘할’이라는 영화를 빌려보게 되었다. ‘喝!’. 고승이 미망에 빠진 승려를 깨우침으로 이끌고자 외쳤다는 그 한 마디 외침. 나는 이 ‘할’이 일종의 극단적인 욕설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지만, 깨달음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서 망설이는 수도자를 ‘각(覺)’의 세계로 밀어 넣는, 수류탄의 안전핀과 같은 치명적인 언어임에는 틀림없다.

이 영화는 설정 자체가 황당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고아로 자란 두 형제가 있다. 형은 가톨릭 신부고, 동생은 독실한 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톨릭의 신에게서 구원을 얻지 못한 동생이 어느 날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다. 형은 말리지만, 동생은 부처를 만나 의문을 풀어보겠다면서 불문(佛門)에 귀의한다.

스승인 노승(老僧)과 함께 구도 여행을 떠나는 승려 우천. 사바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두 스님 사이에는 대결이 아니라 깨달음의 문을 열려는 진지한 대화가 오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두(話頭)가 등장해 아주 새로운 의단(疑團)은 아니었어도,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화두가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고민이 무엇인지 되새겨볼 시간을 가졌다.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 종교는 다르더라도 궁극의 목표는 같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길은 달라도 다다르고자 하는 지점은 동일하다는, 일종의 탈 종교적인 개방성을 추구한 작품이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성경 구절과 영화의 시퀀스는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금방 의미를 간파하기 어려웠다. 감독이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 있을 테니, 시간을 두고 몇 차례 더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노승이 젊은 제자에게 던지는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해결될 문제는 걱정할 게 없고, 해결 안 될 문제는 뭐 때문에 걱정하느냐.”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요즘 내 처지 때문인지 귀에 쏙 들어왔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감상하면서 자기만의 언어를 길어 올리길 권한다.

근래 본 또 한 편의 불교 영화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티벳에서의 7년’이었다.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아서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지적 허영에 들뜬 서양의 지식인이 티베트를 찾아가 살면서 불교적 지혜를 깨닫는, 그저 그런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다. 1939년 오스트리아, 나치의 먹구름으로 암흑이 짙어가는 시절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1912-2006)는 히말라야의 한 거봉을 등반하기 위해 임신한 아내를 두고 먼 길을 떠난다.

그런데 등반도 실패했지만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영국과 전쟁이 벌어지면서 영국군에 의해 수용소에 갇히고 만다. 끊임없는 탈출 시도 끝에 그는 동료와 함께 티베트에 정착하게 되고, 달라이 라마와 만나 서구 문명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가 된다.

전쟁이 끝나고도 티베트에 남은 하러는 중국공산당에 의한 티베트 침략이 노골화되는 때 아들을 찾아 오스트리아로 돌아온다. 독립국가였던 티베트는 중국의 무력 유혈 침략으로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로 중국에 편입되었고, 달라이 라마는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해 지금도 티베트 해방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티베트를 중국령으로 만든 왕조는 사실상 청나라인데,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다. 이것을 근거로 한족은 티베트를 지금도 강제 점령하고 있다. 그 아픈 고난의 역사가, 티베트 인들의 독립을 향한 강고한 투쟁과 피의 역사가 절실하게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공자 다룬 영화는 별 재미가 없다
유교의 창시자 공자나 그의 가르침을 주제로 한 영화는 없을까? 공자는 지독한 실용주의자이고(한편으로도 무식할 정도로 관념론자이기도 하지만) 영화 역시 실용성이라는 점에서 둘째로 가라면 서러워할 예술 장르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오브제가 만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작품은 찾기 어렵다.

뒤지고 뒤지다가 후메이 감독의 ‘공자:춘추전국시대’란 영화를 발견했다. 2010년에 제작되었는데, 배우 주윤발이 공자 역을 맡았다. 2시간이 넘는 이 영화가 아주 재미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엔 과장과 왜곡이 철철 흘러넘쳤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공자의 진면모가 심하게 훼손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었다.

한때 공자는 중국에서 타도되어야 할, 원수와도 같은 인물로 취급되었다. 모택동이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중국 인민을 개돼지처럼 악용한 ‘문화대혁명’ 때 공자는 비공비림(批孔批林)의 철퇴를 맞아 천하에서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역적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공자를 우주적인 성인(聖人)으로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물론 공자는 그만한 대접을 받을 인물이기는 하지만, 감탄고토(甘呑苦吐)하는 얼빠진 후손들을 지금 공자가 본다면 누군가의 주장처럼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동이족(東夷族), 한국인이다.”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내 고등학교 동창 중에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가 있다. 제법 영화를 잘 만드는 친구인데 흥행에서는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개봉하는 작품이 있으면 우리 함께 보러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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