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마음으로 자기는 반드시 자기 뿌리를 믿어야 한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3(남) 스님, 반갑습니다. 제가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견성(見性)에 대해서 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달마 조사 『혈맥론(血脈論)』에 의하면, 부처를 찾고자 하면 반드시 견성을 해야 된다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염불을 하거나 또 경을 외우거나 계를 지켜도 별로 이익이 없다고 또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경을 외우면 총명을 얻고, 계를 지키면 천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고, 보시를 하면 우리가 복된 과보를 받되 부처는 될 수가 없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렇다면 우리 수행하는 불자들이 반드시 견성을 해야 된다고 생각이 되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본래 마음이라는 것은 체가 없고 모양도 빛깔도 없어서 우리가 볼 수가 없는데, 그 작용하는 거는 우리가 이렇게 말하고 보고 듣고 하는 걸로 알 수는 있습니다.

아, 그냥 걸을 뿐이지
왜 그 발자취를 마음으로 뭉쳐 들고 다니는가.
내일 살 걱정 하지 말라.
하루살이로 살라.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제 주인이 마음이고, 또 저를 지금까지 형성시켜 온 것이 그 마음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알고 수행하는 자체가 견성인지 아니면 저희들이 참,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그 어떠한 다른 경계가 있어서 말씀을 하신 건지 그 점이 상당히 궁금해서 스님께 가르침을 구하고 있습니다.

큰스님 그렇게 잘 알면 성불을 오히려 못 하죠. 하하하. 잘 아는 것이 앞을 막아서요. 또 몰라도 안 되고요. 그러니까요, 자기가 지금 이렇게 움죽거리게 된 것은 자기가 과거에 살던 자기이기 때문이니까 과거 자기는 ‘부(父)’가 되죠. 그리고 지금 현재에 형성된 자기는 ‘자(子)’가 되죠.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부가 저절로 되고, 생각을 냈다 하면 자가 되는 거죠. 그냥 가만있으면 자동적으로 부가 되고, 생각을 냈다 하면 자동적으로 그냥 자가 되는데, 다시 말해서 가만히 있으면 자가 부로 하나가 되고, 또 생각을 냈다 하면 부가 자로 와서 하나가 되니 부다 자다 할 것도 없는 자기 주인공을 진실히 믿어야 하는 겁니다. 진실히 믿고 잘하든 못하든, 알든 모르든, 경을 보든 안 보든…, 즉 말하자면 경을 보면 ‘아, 이건 부처님이 말씀해 놓으신 거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따로가 되죠. 따로가 돼요!

그런데 내가 말하는 것은, 삼천 년 전 부처님이 말씀해 놓으신 거든 현재에 말씀하신 거든 ‘내’가 없으면 어떤 것도 다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로부터 있는 거니까요. 내가 있기 때문에 책을 볼 수도 있고, 내가 있기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있고, 이렇게 천차만별의 작용을 하면서 살고 있죠. 그러면 그렇게 작용하는 나를 누가 형성시켰는가? 그 바로 자기란 놈이 형성시켜 놨잖아요. 그렇죠?

질문자3(남) 예.

큰스님 자기란 놈이 형성시켜 놨으니까, 그 형성시킨 자기란 놈이 바로 부가 되는 겁니다. 자기, 참자기가 되는 겁니다. 그런 거니까 형성된 자의 마음은 바로 부의 마음과 둘이 아닌 까닭에, 꼭 나무는 제 뿌리를 믿어야 한다 이런 겁니다. 나무는 제 뿌리하고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흙에 덮여서 그 나무가 제 뿌리를 못 보게 된 것을 무명에 덮였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도 바로 무명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영혼의 근본 뿌리를 자기가 못 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잘 알고 모르고 그걸 떠나서 진실하게 물러서지 않는 마음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 현실에서 작용하는 일체를 나오는 자리에다가 되맡겨 놓으면, 바로 입력이 된 데다가 다시 맡겨 놓으면 과거의 입력이 없어지고 새 물로 대치해서 쓸 수 있는 그런 입력이 되죠.

질문자3(남) 스님! 두 번째로, 제가 선원에 나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느낀 점과 체험한 것을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원에 나오기 시작해서 한 7개월 정도 됐을 때, 제 엉덩이에 밤알만 한 종기가 10개 이상 났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나를 공부시키는 기회구나.’ 하고서 밀어붙였어요. ‘주인공! 당신 몸이니까 당신이 낫게 해야지.’ 하고, 병원에도 안 가고요. 그전 같으면 아마 병원에 가서 마이신을 맞는다, 뭐 한다 난리를 쳤을 텐데, 그 자리에다 맡겨 놓고 그냥 밀어붙였어요. 그랬더니 이상하게 종기가 그렇게 크면서도 아픔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한 10여 일이 지나더니 그냥 스스로 나았거든요. 그 뒤로는 몸이 어디 좀 아프거나 하면 그냥 주인공 자리에다가 맡기면 스스로 낫기 때문에 사실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법이 좋다는 것을 저는 아주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데 습이 너무 많아서 그 삼독심(三毒心)이, 미워하고 시기하고 욕심내고 이런 마음이 저도 모르게 제 마음자리를 비집고 들어와요. 그럴 때는 혼자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책감도 가지고 그러는데 그럴 때마다 주인공 자리에다가 ‘야! 너 5년 전하고 지금하고 한번 비교를 해 봐! 그때하고 지금의 너하고 얼마나 다르냐? 그러면 내가 공부가 된 게 아니냐?’ 이렇게 말하면서 제 몸을 밝게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가는 게 큰스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올바른 법을 잡고 끌고 가는 것인지,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큰스님 올바르게 이끌어 가고는 있습니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습성이 발광을 하고 나올 때에, 왜 거슬립니까? ‘으응!’ 비죽이 한번 웃어 보세요. ‘허! 너….’ 하고 그 어떠한 생각이 나오든지 거기서 나오는 줄 알면 그냥 웃어 버릴 수가 있고, 또 ‘나는 그렇게 해도 속지 않아! 주인공에서 화해서 나오는 것이니까.’ 하고 놓을 수 있습니다. 그 습성들은 화해서 변해서 모습을 바꿔 가지고 자꾸 들러붙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자꾸 건이 생기죠. 그런 거를 가지고 거기에 끄달리면 어떡합니까? 끄달리면 속는 거지. 예를 들어서 팥죽 얘기를 가끔 하는데요, 팥죽 솥에 팥죽이 끓는데 방울방울이 따로따로 있습니까? 한 솥의 죽방울이지. 그러니까 ‘죽방울은 그 죽솥에서 나오는 거니까. 뭐, 다른 데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나가는 것도 아니니까.’ 하는 생각을 하면 비죽이 웃음이 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 걱정될 게 하나도 없죠, 뭐!

질문자3(남) 아직 공부가 덜 돼서….

큰스님 예를 들어서 아주 묘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내가 있기 때문에 그런 모든 게 닥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그놈이 일거일동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걱정할 게 없어요. 즉 말하자면 나는 모든 중생들을 커버하면서 이끌어 가는 어떠한 회사의 중역일 뿐입니다. 그 회사의 건은 그 회사의 주인이 다 하는 거기 때문에, 그 회사 중역이 이끌어 가는 소임을 맡았다고 그래서 회사 전체를 걱정할 필요는 없죠. 그런데 왜 걱정을 합니까? 나 할 일만 하면 되죠. 그렇게 걱정을 하면 그 묘법이라는 게 홱 돌아서 바로 구정물이 생기게 돼 있고, 또 한생각이 더럽고 깨끗한 거를 떠난 청정이라면 그냥 한순간에 깨끗한 물로 대치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5년이다, 10년이다, 또는 1년이다, 몇 달이다 이런 생각도 말고 공부하십시오. 왜냐하면 잘했다 못했다, 내가 부처가 꼭 돼야지 하는 욕심을 갖는다면 정말 부처가 못 됩니다.

질문자3(남)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큰스님 예. 그러니까 꾸준히 그냥 ‘나는 자유인이 되겠다.’ 이렇게 아주 소박하게 해 보세요. ‘나는 자유인이 되겠다!’ ‘자유인이다.’ 하면 부처라는 이름인데, 부처라고 구태의연하게 이름을 부를 필요가 뭐 있습니까? 내가 자유스럽게 살면 됐지. 그러니까 내가 자유인이 꼭 돼야 세세생생에 자유스럽게 살지, 내가 지금 벗어나지 않는다면 세세생생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는 거를 생각하시구요. 감사합니다, 하여튼. 하하하….

그래서 여러분한테 닥치는 것은 모두 여러분이 공부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죠.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일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자궁암이 심해서 아주 힘든 사람이 있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병원에 입원할 처지도 못 되고 그냥 하혈을 하고, 병원에서는 수술해도 안 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애들은 여럿이고 셋방은 들었지, 남편이 벌이를 해서 조금씩 들여오는 것도 근근이 육신을 다 놀려서 하는데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생각을 해 보십시오. 진짜 사랑하니까 자식들한테도 얘기 못 하고 부부끼리도 얘기 못 하는 그 슬픈 마음이야말로 어디다가 댈 수도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보고 나가면서도 그냥 벽에다가 머리를 대고선 은근히 울고 그냥 쓱쓱 씻고 나가는 그 마음이 말입니다, 얼마나 처절했겠습니까? 그렇게 당해 보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누구도 모를 겁니다, 아마. 식구도 아무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래도 자기가 움죽거려야 자식들과 가정이 살 수 있으니까 움죽거려야만 합니다.

그러면서 날더러 뭐라고 그러는 줄 아십니까? 하하하…. “나는 죽든지 말든지…,” 저 자식들을 길러 내야 하니까 죽든지 말든지 당신 알아서 하라 이거야. 허허허…. 자기는 죽든지 말든지 자식을 꼭 길러야 한다는 거죠. 그러고는 “스님, 내가 ‘주인공!’ 할 땐 스님과 더불어 같이 생각하고 부릅니다. 나는 그 빽밖엔 없습니다.” 아, 그러고는 쓱쓱 닦고 그냥 나가고, 뭐, 오래 앉아 있지도 않아요. 그러더니, 어느 날 턱 오더니 막 울어요. 그래서 “왜 울어? 애들 길러 내지 못하게 생겼어?” 이러니까, “길러 내게 생겼어요!” “그래, 어떻게 됐어?” 그러니까 “다 나았어요! 이제 다 나았는데요, 병원에 가 볼 돈도 없으니까 근근이 조금씩 모아서 한번 어떤가 하고, 그것도 내가 못 믿어서 그렇죠. 가 보니까 아무 지장이 없대요.” 아, 이러는 거야. 그러니 세상에, 또 나았으면 가 볼 필요는 뭐 있어, 글쎄? 그것도 놀란 가슴에 그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방편이겠죠.

하여튼 그런 사람도 있는가 하면 저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람도 있는데 천차만별로 많은 사람들한테 나는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도 그렇게 해서 나았어! 그 사람도 그렇게 해서 잘됐어!” 이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은 내가 혼자 안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 잘 들으셔야 합니다. 오는 사람이 없다면 나도 없고, 내가 없다면 올 사람도 없죠. 그런데 내가 혼자 했다고 할 수가 있나요? 그 말 자체를 잘 들으셔야 합니다. 수십만의 의식들이 같이 동원해서 작용한 겁니다. 내 몸의 모든 생명들이 같이해 주고, 그 몸의 생명들이 같이해 주고, 동일하게 한마음 한뜻이 돼서 작용을 했기 때문에 불이 들어온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성불하기 이전에 우리가 소박한 마음, 진실한 마음, 진실한 믿음으로 자기는 반드시 자기 뿌리를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하고, 제 뿌리는 제 나무를 도와서 푸르르게 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아셔야 합니다.

질문자4(여) 3년 전에요, 아이를 낳고 5개월쯤 있다가 안면 마비가 와서 병원에도 가고 약도 많이 먹었어요. 그래 가지고 큰스님께 상의해서 천도재도 여러 번 했는데, 천도재 다 지내고 나서 한번 말씀하시기를 “네가 물리가 터져야 그 병이 나을 텐데!” 하셨어요. 내가 물리가 터지면 낫는다고 하셨으니까 나으리라 믿고 공부를 했는데, 아직도 못해 가지고 지금도 그대로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벌어야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어요. (울먹이면서) 그런데….

큰스님 그런데 말이야, 말끝에 내가 먼저 말하는 건 안됐지만, 나가서 벌어먹여 살리게 한 놈도 그놈이고, 가난하게 사는 놈도 그놈이고, 믿는 놈도 그놈이고 안 믿는 놈도 그놈이야, 다! 모든 것을 하나로 일치시켜서 확고하게 믿고, 죽든 살든 거기에 놓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봐, 나는.

옛날에 이런 일도 있었지. 다리가 아픈 놈이 와서 빨리 고쳐 달라고 야단법석인데, 끌고 온 놈이 또 빨리 낫게 해 주시라고 “빨리빨리” 그러는 거야. 그래서 “빨리 낫게 해 주면 이 공부를 어떻게 하라고 빨리 낫게 해 줘?” 이랬는데, 그냥 그렇게 그렇게 해 가지고 가더니만 아, 다리가 나아서 겅중겅중 뛰어다니니까 이제 등한시하는 거지. 그래서 “그것 봐라! 등한시하잖아?”라고 하니까 다시금 다잡아서 그 공부를 한다고는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미지수야. 그러니까 당신도 신날도 안 꼬았어! 만약 100%라 하면 당신은 20%, 30%밖엔 안 갔으니까. 그렇지만 한순간에도 100%가 될 수 있어.

질문자4(여) 그래서요, 한 3개월 전 꿈에 저의 시어머님이 닭을 두 마리 주셨어요. 그런데 그 뒤로 둘째 아이를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 내 몸 하나 한마음으로 이끌지 못하면서 애를 가져서 똑바른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낳았으면 엄마가 바르게 키워야 되는데 자식을 바르게 키우지 못할 바에야 이 애를 안 낳으리라 마음을 먹고….

큰스님 아이구! 믿지 못하시는 까닭에 그러십니다. 하하하…. 모두가 믿지 못하는 게 그냥 그렇게 많으니 그게 나을 수가 있나?

질문자4(여) 그랬는데 한 달이 지나니까 마음이 편안하고 ‘먹고사는 것도 다 알아서 해 줄 텐데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정말 이 세상에 바른 아이를 낳고 바른 엄마가 되기 위해서 더 큰 어떤 것도 감수하겠다고 마음먹고, 부끄럽지만 법회 때 큰스님께 질문을 해서 정말 내가 그 자리에서 꼭 물리가 터지게 하든지 아니면 나를 깨닫는다는 공부를 꼭 하고 돌아오리라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법회 있을 때 질문하게 해 달라고 관하고 오늘 왔는데, 또 다행히 저만 왔어요. 남편이 같이 왔으면 싫어할 텐데요. 이렇게 법당에 오게 돼서 너무너무 감사하고요, 어떠한 채찍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정말 바른 엄마가 될 수 있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큰스님 아, 그렇게 잘하면 돼! 하하하…. 그렇게 진짜로 믿어 봐! 이거는 말로만이 아니야! 진짜야! 그 맛을, 어휴, 그 맛을 알면 너무도 좋을 거야. 그 맛을 알면 하늘을 쳐다보고 백 번을 울어도 시원치 않을 것이고 땅을 치고 백 번을 웃어도 시원치 않을 것이야. 열심히 해 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인데, 뭘 그렇게 꽉 잡고 자기가 걸어온 발자취를 짊어지고 애를 써, 그렇게? 응? 아, 그냥 걸어올 뿐이지, 그 발자취를 마음으로 왜 또 뭉쳐 들고 다녀? 그럴 필요가 없어! 우리 살림살이 살아나가는 거는 우리가 걸음 걸어오듯이 살고 가는 거야, 지금. 발자취를 놔 버린 채 걸어 다니는 거와 같은 거야. 내일 살 걱정 하지 마라. 하루살이로 살라고. 그냥 하루살이로 살란다고 또 다 갖다 팔아먹고, 끓여 먹고 이러지 말고, 하하하…. 다 맡기고, 내가 가진 게 뭐 있어? 내 몸뚱이도 가진 게 없어. 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야. 내 마음도 내 것이 아니고. 그런데 거기에 뭐가 있다고 그냥 그걸 부여잡고 쩔쩔매? 좀 그렇게 놔 봐! 오늘 중으로라도 그렇게 놔 봐! 가 봐.

질문자5(남) 큰스님, 저희 인간은 우주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주의 영향을 받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간 큰스님께서 우주와의 관계를 여러 번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마는, 아직도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 또 힘이 있다면 그 에너지와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 이 점을 좀 여쭈어 보겠습니다.

큰스님 이렇게 비유를 해 봅시다. 발전소를 우주라고 한다면 인간의 능력은 바로 그것을 용도에 따라서 꺼내 쓸 수 있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소비자가 없어도 아니 되고, 그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그 능력 자체가 없어도 안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용도에 따라서 끌어 쓰기 위해 에너지라는 이름이 생긴 거지, 용도에 따라서 꺼내 쓸 수 없다면 어떻게 에너지라는 이름이 나왔겠습니까? 그러니까 우주의 근본이 발전소라면 거기에서 우리가 용도에 따라서 꺼내 쓰는 그 전력이 에너지입니다. 그러니까 에너지와 사람의 능력과 그 발전소가 둘이 아니게 같이 직결이 돼 있으니까 자유자재로이 꺼내 쓸 수 있다. 작으면 작은 대로 꺼내 쓰고 크면 큰 대로 꺼내 쓸 수 있다. 그 꺼내 쓸 수 있는 용량은 한계가 없다는 거죠. 여러분이 다 한계가 없이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권리도 가지고 있고요. 하하하….

질문자6(남) 큰스님께서는 항상 한마음 법으로써 저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한마음이라는 것은 나의 절대 생명이요, 그리고 공존의 생명이요, 시간을 초월해서 영원하고, 공간을 초월해서 무한하고, 인간을 초월해서 신령하다. 너무 크기 때문에 허공과 같고 무(無)다. 항상 주인공 자리에 되돌려 놔라. 여여하게 되돌려 놓고 공부를 해라. 그러면 모든 것이 풀릴 것이다.” 하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큰스님의 말씀으로밖에 여겨지지 않고, 내 옆에 있는 내 도반들의 말로 들리지, 제 말로는 하나도 마음에 새겨지지를 않았습니다. 좀 크게 꾸지람 주십사 하고 왔습니다.

큰스님 본래 말입니다, 본래 인생은 온 게 없기 때문에 갈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 말마따나 서까래는 서까래대로 쓸 수 있고, 기둥은 기둥대로 쓸 수 있고, 포함해서 새끼손가락 하나라도 없으면 병신이듯이 우리 전체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은 다 쓸 수 있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되고요, 한생각을 잘하셨다면 그대로 해 나가시면 되겠죠. 뭐, 길게 생각하고 짧게 생각하고, 또 오래됐고 오래되지 않았고 그걸 떠나서 지금 현재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런 거니까 그저…. 그런 말씀 하시는 거 보니까 한자리를 하신 것 같은데요? 하하하….

또 질문하실 분 있으면 질문하세요. 여러분이 다 이익 되게끔, 지어서 할 필요도 없고….

질문자7(남) 큰스님,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놓고 갈 수 있는 주인공 자리를 배웠기 때문에 요즘 마음 편안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음자리에 놓고 잘 돌아가는데 딴 식구들에게 걸리는 점이 보일 때는 참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도량이 부족해서 마음을 가족들한테 못 내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제 그릇을 키울 수 있을까 하고 여쭤 보고 싶습니다.

큰스님 식구들이 잘못하든가 빗나간다든가 하더라도 항상 모든 것을 자기 주인공에다 놓으세요. 즉 말하자면 그쪽의 주인공이나 내 주인공이 같거든요. 식구들은 벌써 식구라는 가설이 돼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데에 가설이 돼 있죠. 그 가설이 돼 있기 때문에 자기 주인공에다가 놔도 그쪽의 주인공까지 다 밝아집니다. 그러니까 자기 주인공한테 ‘저 사람이 저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도 너밖에 없어!’ 하고 모든 것을 놓고 인의롭고 부드럽게, 부드러운 행동과 부드러운 말을 해 준다면 거기도 아주 밝아질 겁니다.

질문자7(남) 그리고 제가 스님 앞에서 이렇게 질문까지 하게 됐는데 이 편안한 마음을 내세에도 가지고 갈 수 있을는지요?

큰스님 오늘 만약에 남을 도와서 좋은 일을 하고 내 마음이 즐거웠다면 내일까지도 즐겁죠. 그런 인연을 맺었다면 더불어 같이 보이지 않는 데서 모두 빈손으로 돌봐 주게 되고, 없는 손이 와서 돌봐 주게 되고, 또 없는 손이 있는 손으로 둘이 아니게 포함이 돼서 귀인이 돼 가지고 다 돌봐 주고, 가는 족족 이렇게 돌봐 주게 되죠. 이거는 기정사실입니다, 모두 모르셔서 그렇지. 그러니까 일체가 다 음파가 통해서 나를 도와주게끔 되는 거죠. 내가 혼자가 아니니까요. 그러고도 내 마음의 다스림이 이 육체 안의 모든 생명의 의식들에게 통해진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쁘게 통하게 하지 마세요. 모두가 인의롭고, 자유스럽고, 슬기롭게 대치할 수 있는 그런 과감한 용기와 그 믿음을 가지고 해 나가실 수 있다면 여러분에게 어떠한 병고가, 죽을 병고가 온다 하더라도 그건 대치할 수 있습니다. 또 질문있으시면 하세요.

사회자 오늘은 이것으로 큰스님의 법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3년 11월 7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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