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선지식들에 수학… ‘萬派朝宗’ 세우다

선가오종 최초로 조동종 창종
남전·운암 등 선지식에 배워
동산서 가르침 펴니 문하 모여
‘조도·현로·전수’ 수행 과정 강조

중국 강서성 의풍 동산 보리사에 있는 동산양개의 탑. 당우 안에 양개의 탑이 봉안돼 있다.

#어머님께
“… 제가 부모님 곁을 떠난 이후, 수행 길로 접어든지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 엎드려 바라옵건대 어머님께서는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닦는데 뜻을 두고, 공(空)에 귀의함으로써 이별의 정을 품지 마십시오. 어머니, 문가에 기대어 저를 기다리지도 마십시오.… 재가인들은 자기 몸을 수양하고 효도를 행함으로써 천심(天心)에 합하지만, 승려는 불가에 있으면서 도를 사모하고 선을 참구함이니, 정진으로서 어머니 은덕에 보답할 것입니다.”

 #아들 스님께 
“나는 너와 어느 전생의 옛적부터 인연이 있다가 비로소 어미와 아들로 맺어졌다. … 네가 태어난 뒤, 마치 보배처럼 너를 사랑하니 똥오줌의 악취도 싫어하지 않았으며 젖먹일 때도 수고로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네가 성인이 되면서부터 외출했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대문에 기대어 언제까지나 기다리곤 했다.… 아들은 어미를 버릴 뜻이 있으나 이 어미는 아들을 버릴 마음이 전혀 없다. 네가 출가한 이후로 내 마음이 늘 슬퍼 눈물이 나고, 괴롭고 괴롭구나. 맹세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였으니 곧 너의 뜻을 따를 것이다. 나는 네가 세속의 왕상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네가 목련존자 같이 나를 제도하여 고해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위로는 불과(佛果)에 오르기를 바랄 뿐이다.”

위 내용은 조동종의 종조(宗祖) 양개와 모친이 주고받은 편지이다. 스님들의 기본 교육과정 교과목 가운데 제일 먼저 배우는 책이 〈치문(緇門)〉인데, 이 책에 실려 있다. ‘훌륭한 인물은 3대에 나온다’는 말이 있다. 불교사에 동산 양개와 같은 대 선지식을 길러낸 어머니의 기개가 묻어 있다.   
                               
동산 양개의 행적        
선종 5가 가운데 현재까지 법맥이 온전히 전하고 있는 선이 임제종과 조동종이다. 조동종(曹洞宗)이라는 종명도 제자 조산의 ‘조(曹)’와 스승 동산의 ‘동(洞)’을 합쳐 명명한 것이다.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는 절강성(浙江省) 회계(會稽)사람으로 속성은 유(兪) 씨다. 양개는 처음에 고향의 작은 절에 출가하였다.

〈반야심경〉을 다 외우자, 스승이 다른 경전을 암송하라고 하였다. 양개가 외우지 않겠다고 하자, 스승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반야심경〉에는 눈·귀·코·혀·몸·뜻 6근이 없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승은 양개에게 ‘나는 그대의 질문에 답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라고 고백한 뒤, 양개를 오설산(五泄山) 영묵(靈默, 747~818)에게 데리고 가 지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인연으로 양개는 영묵을 의지해 삭발했다. 양개는 영묵의 문하에서 3년을 머문 뒤 행각을 떠나고 싶었다. 영묵은 양개의 마음을 알아채고, 말했다.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면, 남전(南泉, 748~834) 화상에게 가서 배우라.”   
“한번 떠나면 있었던 인연도 다하리니, 외로운 학은 다시는 옛 둥지로 돌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양개는 남전 문하에 들어 참알할 뒤 다시 위산(쓳山, 771~853)을 찾았다. 양개는 위산에게 물었다.

“무정이 참다운 설법을 하는지요? 그렇다면 저는 왜 듣지 못하는가요?”
“부모가 낳은 입으로는 그대에게 설해 줄 수 없다.”
“그럼 저는 누구에게 여쭤야합니까?”
“운암을 찾아가라.”

위산의 안내로 양개는 운암 담성(雲巖曇晟, 772~841)을 찾아갔다. 양개는 스승인 운암 이외에도 영묵·남전·위산 등 당대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이렇게 선지식을 찾아 오랫동안 행각하는 것을 ‘발초첨풍(撥草瞻風, 풀포기를 헤치며 스승을 찾아다님)’이라고 한다.

이 점은 후대 수행자들의 귀감으로 조동종의 특징이기도 하다. 양개는 운암 문하에 머물러 가르침을 받았다. 스승 담성이 입적하기 전, 양개가 스승에게 물었다.

“무정설법(無情說法)을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무정설법은 무정이 듣는다.” “스님께서도 들었습니까?”
“내가 들었다면 난 법신을 이루니, 그대는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저는 스승님의 설법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하면서 어찌 무정 설법을 들으려 하는가?”

이에 양개가 무생물인 산천초목국토가 모두 진여(眞如)의 법을 설한다는 스승의 말을 들은 뒤, 깨달음을 얻고 게송을 지었다.

‘신이하고 신이하다. 무정이 설법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 귀로서 들으려 해도 소리가 없고, 눈으로 들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얼마 후 스승 운암이 입적하기 직전, 양개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입적하신 뒤에 누군가 ‘화상의 초상을 그릴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 무어라고 대답할까요?”

“다만 그에게 ‘다름 아닌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면 된다.”

스승이 입적하고 3년이 흘러 양개는 사형 선산과 함께 스승(운암 담성)의 제사를 지내러 위산으로 길을 떠났다. 가는 길녘, 담주에 이르러 큰 개울을 건너게 되었는데, 양개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 문제 의식에 크게 깨달았다. 그러면서 다음 오도송을 남겼다.

“절대로 밖을 향해서 찾지 말라. 밖에서 찾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질 뿐이다. 나 이제 홀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나리라. 그는 지금 진짜로 나이지만 나는 이제 그가 아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에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그를 만나리라.”

양개의 대오(大悟)는 운암 입적 이후로 본다. 이후 선사는 대중설법을 하면서 스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승 운암이 나를 위해 법을 설해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여길 뿐이다.”
양개는 그의 어록에서 ‘양의공수(良醫拱手, 훌륭한 의사는 단지 팔짱만 끼고 있음)’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즉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의지를 발휘해 본래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도울 뿐이지, 지나치게 베푸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배움에서도 제자 스스로의 ‘체구연마(體究練磨, 직접 실천하면서 부딪쳐 깨달아가는 것)’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니 교육에는 스승의 친절보다 스스로의 발심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새기게 된다.

양개는 회창파불(845년) 때, 잠시 환속했다가 46세에 다시 출가하였다. 강서성 의풍(宜豊) 동산(洞山)에 들어가 법을 펼치니 양개 문하에 수행자들이 운집하였다. 양개는 열반하기 전 목욕을 한 뒤,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들었다. 제자들이 통곡을 하자, 다시 눈을 뜨고 말했다.

“구도자들은 덧없는 것에 무심해야 한다. 사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이요, 죽는 것은 쉬는 일이다. 그러니 슬퍼할 일이 아니다. 나의 입적에 법석 떨지 말라.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구도자답게 침착하기 바란다. 임종 때 소란 피우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뒤, 다시 열반에 들었다. 양개의 탑은 의풍 동산 보리사(普利寺)에 모셔져 있다. 탑명은 혜각보탑(慧覺寶塔)이며, 탑에 10여인의 제자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데, 조산 본적과 운거 도응이 기재되어 있다. 본적이 조동종의 종풍을 체계화했다면, 선풍을 흥성시킨 데는 도응이라고 본다. 본적의 법맥은 단절되었으나 현재의 조동종 법은 도응의 법맥이다.

우리나라 나말여초 9산선문 가운데 이엄(利嚴)이 도응을 참문하고 법을 이어와 932년 황해도 해주에 수미산문(須彌山門)을 개산하여 조동종풍을 펼쳤으나 발전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도오겐(道元, 1200~1254)에 의해 조동종계의 묵조선이 유입된 이래 일본 선종 가운데 최대의 종파가 됐다.

조동종의 선풍
조동종의 선풍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평가된다. 명나라 천은원수(天隱圓修)는 조동종의 선풍을 만파조종(萬派朝宗, 모든 종파의 근본)이라고 표현하였고, 다른 기록에서는 임제종은 장군과 같은 기개가 있는 반면, 조동종은 선비와 백성 같은 순박하면서도 철학·논리적인 선풍이라고 평가하였다. 널리 알려진 공안 두 개를 소개한다.

어떤 승려가 동산 양개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마 삼근(麻三斤)이니라.”

어느 날 한 제자가 물었다. “매우 춥거나 너무 더우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추울 땐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 곳이다.”

즉 ‘추울 때는 추위를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가 되고, 더울 때는 더운 것을 그대로 받아 들여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삶은 늘 변하기 마련이며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고난 그 자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즐겁고 기쁜 일이 생겨도 그 기쁨을 관조해서 자만에 빠지거나 들뜨지 말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동산삼로(洞山三路)
조동종은 수행할 때나 중생들을 제도할 때 지침으로, 조도·현로·전수를 제시한다.  

첫째, 조도(鳥道)는 새가 허공을 날 때 일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날아가는 것에 비유한 것인데, 곧 수행자는 일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둘째, 현로(玄路)는 유무(有無)·옳고 그름·아름답고 추함·상하(上下) 등 일체 차별적인 견해나 이분법적 분별심에 떨어지지 말고, 늘 고요한 삼매를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셋째, 전수(展手)는 조도와 현로 수행법으로 인해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이에 머물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생 교화에 힘쓸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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