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파사현정(破邪顯正)

‘파사현정(破邪顯正)’은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도리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삿된 가르침, 잘못된 가르침을 타파하고 바른 가르침, 정법을 높이 선양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불교를 비난하는 이교도들의 행동 또는 불교 내에서도 정도가 아닌 사도(邪道)를 설하는 이들을 비판함과 동시에 붓다가 설한 정법의 진리를 확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邪)’는 ‘바르지 못한 것’ ‘정도가 아닌 것’ ‘사도(邪道)’ ‘사견(四見)’을 가리킨다.

파사현정은 조선시대 숭유억불시대 때 극에 달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승이라고 할 수 있는 함허(涵虛, 함허득통, 1376~1433) 스님은 억불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끝없이 배척을 당하자 스님은 <현정론(顯正論)>을 지었다. 불법의 바른 진리를 알리고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책이었다. ‘바른 진리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곧 ‘파사현정’인데 삿된 것을 깨뜨린다는 ‘파사(破邪)’를 넣지 않고 ‘현정론(顯正)’이라고만 한 이유는 당시 조선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유학자, 유생들의 비난과 횡포를 염려한 것이었다. 곧 ‘파사’를 공자와 주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파사현정’이라는 말은 중국의 고승 길장(吉藏, 549~623) 스님의 <삼론현의(三論玄義)>라는 책에 처음 나온다. 길장은 “삼론(三論)에 비록 세 가지가 있지만, 의(義)는 오직 두 가지의 길뿐이다. 첫째는 현정(顯正)이요, 둘째는 파사(破邪)이다. 삿됨을 깨뜨려 아래로 가라앉은 것을 건져내고, 바름을 드러내면 그 위로 큰 법이 홍포된다”고 했다.

파사현정은 불교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마찬가지다. 지금 사회는 옳지 못한 것, 잘못된 것이 횡행하고 있다. 갖은 편법, 부조리가 합법적으로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다.

한 예로 조선 말기에 우암 송시열의 위패를 모신 ‘화양동 서원’은 악명 높았던 서원이다. 묵서(墨書, 붓으로 쓴 세금징수서)라는 것을 발행하여 괴산 일대를 사실상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전국 유생들에게 화양동서원 유지 명목으로 묵서를 보내서 별도로 세금을 징수했다. 유생들로서는 화양동서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국세와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부조리, 부패는 사실상 그 문화적 DNA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고 할 수 있다. 오래된 문화적 적폐이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갖은 언어적 폭력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는 이상사회로 가는 올바른 길이지만 ‘대중의 의견’, ‘다중의 의견 존중’이라는 민주주의를 악용하여 ‘머리 숫자’로 사회 전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중의 견해, 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군중심리를 악용하여 옳지 못한 것을 주장, 선동하는 이들도 많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무작정 추종하는 박수부대도 있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의 최상위계급인 바라문들을 비판했다. 예컨대 바라문 교도들은 청정을 위하여 갠지스강에 목욕을 하는 문화가 있었는데(이것은 오늘날도 이어져 온다), 부처님은 “마음이 청정해야지, 목욕을 한다고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올바른 청정이 아니다”고 말씀하셨다. 파사현정을 위하여 부처님께서는 일생동안 고군분투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원색적인 표현이나 주장을 하면 무작정 추종하는 이들이 많다. 괴변에 가까운 원색적인 논리를 전개하면 그 말을 자세히 고찰,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옳소’하면서 찬동한다. 한 사람이 찬동하면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미처 생각해 보지도 않고 댓글을 달고 퍼 나른다. 일인허전 만인실전(一人虛傳 萬人實傳)이다. 한 사람이 엉터리 정보, 가짜 뉴스를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덩달아 따라가는 것이다. 가짜(邪)가 우리 사회를 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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