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 스님 로터스월드 이사장(수원 보현선원 회주)

 

성관 스님은… 동국대를 졸업해 동대학 교육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또한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문화사회부장·문화부장·호법부장을 비롯해 달라이라마 방한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수원사 주지 등을 역임한 바 있다. 2016년 8월에는 제20회 만해대상 시상식에서 평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3년전 창건한 수원 보현선원 회주, 조계종 여래마을 회주, 청수사 회주, 로터스월드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자비(慈悲)란 타인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베푸는 혜택이란 의미다. 세계적인 최빈곤 국가로 꼽히는 캄보디아에 17년 이란 적지 않은 세월동안 자비 실천을 해 온 수행자가 있다. 그 주인공은 2002년 창립부터 현재까지 사단법인 로터스월드를 이끌고 있는 이사장 성관 스님이다. 불교계 대표 국제개발구호NGO 로터스월드는 2004년 법인으로 등록했지만, 2년 전인 2002년 이미 캄보디아 지원사업에 착수했다. 그 점을 감안하면 로터스월드 역사가 내년으로 꼬박 18년을 맞는다. 이처럼 로터스월드가 국제구호NGO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픈 사람을 보고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자비를 무위자연으로 실천해 온 성관 스님의 원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창간 25주년 특집을 맞아 자비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성관 스님이 회주로 있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보현선원을 10월 9일 찾았다. 〈편집자주〉

▲로터스월드는 이제 명실공히 불교계 뿐 아니라 국내의 대표적인 캄보디아 국제NGO로 꼽힙니다. 2006년 씨엠립에 아동센터를 설립하고 단발성 구호사업이 아닌 체계·지속적인 후원을 실시한 것이 가장 큰 밑거름일 텐데요. 혹시 여러나라중 굳이 캄보디아 서 구호 사업을 펼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스님=1996년 캄보디아를 방문한 것이 계기였지요. 당시 수원포교당(현재 수원사) 주지로 있을 때 4명의 도반들과 함께 캄보디아 씨엠립을 방문했죠. 부푼 마음으로 공항에 내렸는데 그야말로 ‘폐허’와 다름없었어요.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잔혹한 참상이 그대로 널려 있었습니다. 거리엔 ‘1달러’를 외치며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로 넘쳐났고, 얼마나 굶었는지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빠짝 말라있었어요. 남은 생 동안 살아갈 방향을 찾은 순간이었죠. 시주의 은혜를 갚는 길은 그 방법뿐이라고 생각했지요.

2006년 씨엠립에 아동센터 건립
“교육 지속 가능해야 빈민 줄어”
연간 4회 무료 진료 및 개안 수술
리더는 변화 읽고 비전 제시해야

▲실제로 불교계에선 로터스월드를 롤모델(role model)로 삼아 국제구호활동을 펼치려는 단체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캄보디아서 본격적인 구호활동은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스님=6년 후인 2002년 실천불교전국승가회 2대 의장을 맡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제 3세계에 대한 구호활동을 선창하자 회원 스님들이 모두 동의하며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동센터 건립을 첫 목표로 삼고 방법을 찾아 나섰지만 예산 편성, 인력 확보, 부지 선정 등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죠. 좋은 일은 함께해야 한다며 신도들의 후원을 독려하자는 여론도 있었지만 단호하게 ‘No!’라 말했습니다. 힘들어도 우리 역량만큼만 시작해 점차 기반을 다져나가야 지속적인 구호활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튼튼해야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법이죠.

▲아무리 원력이 있어도 말 안통하는 외국인데, 캄보디아 정부의 적극적 협조 없이는 구호사업 펼치기가 힘들었을 텐데요. 비결이 있으시다면요.

스님=모든일에는 원력이 세워지면 최선을 다해야 시절인연의 기회도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03년 기업인 및 지인들과 캄보디아를 방문했는데 현지서 컴퓨터 지원 요청을 받았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퇴역 후 먹고 살게 하려고 컴퓨터 기술을 배우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지서는 지원 약속을 해놓고 돌아와서는 흐지부지 된거에요. 약속해 놓고 안 지키면 국가적인 신뢰가 깨질 수 있다고 판단해 제가 사비로 지원했죠. 그 신뢰가 바탕이 됐고 캄보디아 현지 대사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캄보디아 정부가 앙코르와트 유적 인근 1만 2천여평을 30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 땅이 유적 인근서 캄보디아 정부가 소유한 마지막 땅이라니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죠.

▲2014년 부터는 라오스 캄무안주 봉싼마을을 시작으로, 2015년 방비엥 니케마을에 도서관과 도서지원 사업을 하는 등 구호 활동 대부분을 교육 시설 확충에 신경쓰시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는요?

스님=모든 것은 ‘교육’서 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수백 개의 화장실을 짓고 맑은 물을 위해 우물도 팠지만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은 구호활동은 자립심을 저하시키고 오히려 의존성만 키우게 합니다. 교육이 지속 가능해야 빈민들이 줄어듭니다.

교육은 인간이 어려움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타인으로부터 배우든, 스스로 깨닫든 상관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쉼 없이 정진하라’ 하셨지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방관하는 사이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소통할 수 없게 되고, 종국엔 단절될 것입니다.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캄보디아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성관 스님.

 

▲2007년부터 건양대 김안과병원과 협력해 아동센터 내에 안과병원을 설립하고, 연간 3~4회 무료 진료 및 개안수술을 진행 중인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스님=사실은 아주 작은 인연서 비롯됐죠. 어느 날 김안과병원이 해외의료봉사를 위해 우리 캄보디아 아동센터를 찾아왔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성주(당시 병원장)·김용란 부부와 함께 여러 의사들이 왔어요. 원래 스리랑카를 가려고 했는데 내전으로 힘든 상황이었고, 필리핀으로 가려니 현지 국제구호NGO와 전화가 닿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발길을 돌린 것이 캄보디아였어요. 독실한 불자인 김성주·김용란 부부는 그 인연을 계기로 지금까지 매년 3~4차례 20~30명의 대규모 봉사단을 꾸려 로터스월드 아동센터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역시 불자인 김안과병원 설립자인 김희수 선생의 후원이 순풍에 돛을 달아준 셈이 됐죠.

▲평소 가슴에 새기시는 말씀이 있다면요…

스님=‘가승은 입성하고 진승은 하야 한다’는 제 은사 스님의 가르침입니다. 항상 저에게 참 수행자처럼 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현재의 시류에 휩쓸려 살아가면서 출세와 관력에 목말라 하는 가짜 수행자가 되지말고, 모든걸 내려놓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진실한 수행자가 되라는 경책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매일 가슴에 품고 새기며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접견실 책꽂이를 둘러보니 유독 문명과 역사를 다룬 책들이 많은데요. 요즘 즐겨 읽으시는 책좀 소개해 주시죠.

스님=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 하라리 책들을 주로 읽습니다. 문명과 역사에 대한 식견은 인문적 소양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항이죠. 생태학자로 퓨리처상 수상자이며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제럴드 다이아몬드의 책도 좋아합니다. 총균쇠를 읽어보았는데 전문지식을 포함 함에도 정말 재미있게 잘 쓴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불교계를 포함한 사회의 리더들이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님=지도자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고, 미래세대를 위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죠. 그러려면 끊임없이 소통하고 독서 등을 통해 자기계발에 힘써야 합니다. 여기에 자기 수행을 통해 포용력과 자비심을 갖춘다면 금상첨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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