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이해의 길 16

붓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뇌를 느끼고 29세에 출가하여 6년간의 처절한 고행 끝에 깨침을 이루었다. 중생 싯다르타가 깨친 사람, 즉 붓다가 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이는 불교의 처음이자 끝이라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붓다란 깨친 사람(覺者)을 의미하는데, 불교는 깨친 붓다(佛)의 가르침(敎)이기 때문이다. 이후 그의 삶은 진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 나누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열반에 들기까지 45년 동안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깨친 진리를 전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연기, 3법인, 4성제, 8정도는 전체 가르침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평가를 마지막 모습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갈 때 보자.’는 말을 하곤 한다. ‘잘 가신 분’이란 의미의 선서(善逝)가 붓다의 명호 가운데 하나인 것도 이를 보여준다 할 것이다. 어쩌면 죽는 순간은 한 사람의 전체 삶이 압축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예수나 공자, 소크라테스 등이 모두 그랬다. 그렇다면 붓다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붓다는 80세에 이르러 죽음을 예감한다. 그는 몸을 겨우 가눈 채 병든 몸을 이끌고 쿠시나가라 교외에 있는 말라(Mala)족 땅에 이르렀다. 그리고 사라쌍수 아래에서 머리를 북쪽으로 향한 채 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는 제자들을 향해 마치 벗이 벗에게 말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말한다. 질문이 없자 스승은 널리 알려진 마지막 가르침을 이렇게 전한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신을 등불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붓다는 열반에 들었다. 아주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때 사라쌍수 에서는 때 아닌 꽃비가 내렸고 하늘에서는 미묘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담담한 표정으로 스승 붓다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제자들도 있었고 슬픔을 참지 못해 목 놓아 흐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사슴이나 토끼, 지렁이 등도 함께 슬퍼했다고 전한다. 깨친 이는 평화롭게 진리의 세계로 떠났지만, 그렇지 못한 중생들에게 이별의 고통은 쉬이 감당키 어려운 일이다.

붓다는 떠나는 마지막까지 자신과 진리를 등불 삼아 정진하라고 당부하였다. 흔히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으로 알려진 마지막 가르침을 통해 불교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알 수가 있다. 물론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이지만, 이를 통해 각자 스스로 깨침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모든 경전은 깨침을 향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붓다가 마지막까지 자신과 진리를 등불 삼으라고 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불교의 본질인 깨침은 자신과 진리에 의지해서 정진할 때 비로소 맛볼 수 있는 종교적 체험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은 모두 진리를 깨칠 수 있는 바탕, 붓다의 성품(佛性)을 본래 갖추고 있다는 것이 불교적 시각이다. 많은 선사들이 부처를 ‘절대 밖에서 구하지 말라(切莫外求)’고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붓다의 명호 중에 ‘여래(如來)’란 말이 있다. 진리(如)의 세계에서 오셨다(來)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여래여거(如來如去)의 줄임말이다. 글자 그대로 진리의 세계에서 오셨다가 진리의 세계로 가신 분이라는 뜻이다. 붓다는 35세에 큰 깨침을 이루고 진리의 세계로 갔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다시 중생들의 세계로 오신(如來) 분이다.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진리라는 정신문화를 바라문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대중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그의 역사적 소명이었기 때문이다. 그 본분을 모두 마치고 다시 진리의 세계로 가신 것이다.

이제 붓다의 DNA를 물려받은 자식(佛子)으로서 우리의 할 일만 남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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