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싱크대와 욕실 샤워기는 오래 전부터 절수용으로 교체해 사용해 왔다. 변기 물을 한 번 내릴 때마다 13L의 물이 소비된다는 걸 알고는 변기 속에 벽돌 한 장도 넣었다. 평소 화장실을 사용할 때면 아들과 나는 볼 일을 보고 한꺼번에 물을 내린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나도 화장실 가고 싶었는데 잘됐다라면서 줄을 선다. 그러면 아들까지 볼일을 본 뒤에야 물을 내리는 식이다. 그럴 때면 아들은 지구를 아낄 수 있다며 기뻐하곤 한다. 이렇듯 소소한 물 절약에도 불구하고 우리집 물 사용량은 전년 대비, 혹은 전월 대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집에서 아들이 키우는 물고기의 수조가 많아지고 화초들의 화분이 커지면서 물 사용량이 나날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하루 물 사용량은 얼마나 될까? 관리비 고지서를 찾아 한 달 물 사용량을 가족 수로 나눠 보았다. 지난달 기준으로 한 사람 당 하루 176L의 물을 썼다. 2L 페트병으로 계산하면 한 사람이 88병의 물을 하루에 쓰고 있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평소 고지서를 볼 때는 톤으로 표기된 단위 앞에 그게 얼마나 많은 양인지를 가늠하지 못했는데, 페트병의 개수로 수치화되니 조금은 감이 잡힌다.

88개의 페트병을 집 어딘가에 세워두었다고 상상해보라. 하루에 내가 쓰는 물 양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서울시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이 286L라는 것이다. 무려 2L 페트병 143개를 하루에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사용량은 도쿄 200~250L와 뉴욕, 런던 100~200L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다.

이렇게 많은 물 소비량에 대해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한무영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물맹이라는 단어를 썼다. 글자를 모르면 문맹이듯 물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물맹이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자신의 물 사용량을 체크하고 공공기관부터라도 절수형 변기, 빗물 저금통 설치 등을 통해 탈물맹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물 절약과 빗물 활용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한 교수는 서울대와 스타시티라는 건물에 빗물 저장고를 설치해 빗물을 활용해 왔다. 스타시티 건물 지하에 있는 3,000톤의 빗물 저장고는 인근 지역 홍수 방지, 조경수 활용, 화재 등 비상시에 사용돼 두루 주변을 이롭게 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는 빗물인 셈이다. 이 건물 세대 당 수도 요금이 한 달 평균 100원에 불과하다고 하니 빗물이 곧 돈이고 자원이라는 한 교수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계적으로 깨끗한 물은 부족해지고 우리나라도 물 부족을 겪고 있는 지금, 촐촐히 내리는 가을비 한 방울 한 방울이 새삼 아깝게 여겨진다. 잦은 태풍으로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이 가을, 빗물 저장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집 베란다에 가득한 화분들도 빗물을 흠뻑 마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집에 빗물 저장고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물 절약을 생활화해서 물맹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조금 더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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