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조수한국 2

[評唱 2]

宗師家見僧 便問便勘. 看他是箇漢 別機宜 辨賓主. 一問便知落處. 這僧棗樹見來 似有衲僧氣息 便問 “近離甚?處” 僧云 “漢國” 樹云 “漢國天子還重佛法也無” 僧云 “苦哉 賴?問著某甲 問著別人則禍生也” 棗樹是作家宗師也 不忙却道 “作箇甚?” 僧云 “人?不見有 何佛法可重” 這僧擔一擔禪來. 棗樹當時若便打 免見雪竇點檢. 也好老婆心切 却問 “?黎受戒來多少時” 這??漢 却云 “二十夏” 棗樹云 “大好 不見有人” 捉他空處便打. 是則是 犯手傷鋒了也.

종사(宗師)는 스님을 보면 바로 질문을 던져 바로 감변해 낸다. 종사가 이 사람이 교화하기에 알맞은 근기인가(機宜)를 구별하고 손님과 주인(賓主)을 가려내는 것을 보라! 한 번 물으면 바로 낙처(落處, 핵심)를 아는 것이다. 조수를 보러 온 이 스님에게 납승의 기백이 있는 것 같아, 바로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한나라에서 왔습니다.”

“한나라 천자는 불법을 중하게 여기는가?”

“(말하기가) 괴롭습니다. 다행히도 제게 물으시는군요.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면 화를 입으셨을 것입니다.”

조수는 작가종사라서 느긋하게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는데?”

“사람이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불법을 중하게 여기겠습니까?”

이 스님은 소위 일담선(一擔禪)을 한 짐 짊어지고 왔던 것이다. 조수가 당시에 만약 바로 쳤더라면 설두의 점검을 면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수는) 참으로 노파심이 간절해서 다시 물었다.

“스님! 계 받은 지 얼마나 됐지?”

이 어리석은 사람이 말했다.

“20년 되었습니다.

”조수가 말했다.

“대단하다! 사람이 있는 것도 보지 못하다니!”

그리고는 저 스님의 허점(空處)을 잡아 바로 쳤다. 옳기는 옳지만, 손도 다치고 칼끝도 상했다.

雲門勘僧 極是手親眼辨. 一日問僧 “?是甚處人” 僧云 “新羅人” 門云 “?將什?過海” 僧云 “草賊大敗” 門云 “??什?在我手裏” 僧云 “恰是” 門云 “一任[跳-兆+?]跳” 又北禪問僧 “近離什處” 僧云 “資福” 北禪云 “福將何資” 僧云 “兩重公案” 禪云 “?什?在我手裏” 僧云 “一任和?收取” 禪便休去. 看他古人句中辨別 臨時折倒 始?勘僧.

운문(雲門, 운문문언 864~949)이 스님을 감변하는 것은 지극히 수친안변(手親眼辨, 眼辨手親, 안목이 뛰어나고 솜씨가 능숙)했다. 하루는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신라사람 입니다.”

“그대는 무엇으로 바다를 건넜는가?”

“초적이 크게 졌습니다(草賊大敗).”

“그대는 어째서 내 손안에 있는가?”

“흡사 그런 것 같습니다.”

“날뛰려면 마음대로 날뛰어라.”

또 북선(北禪, 寂悟空, 운문의 제자) 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자복(資福)에서 왔습니다.”

“자복은 어떻게 지도하는가?”

“양중공안(兩重公案)이군요.”

“어째서 내 손안에 있는가?”

“화상께 일임하겠습니다, 거두어주십시오.”

(그러자) 북선이 바로 쉬었다.

저 고인이 말 속에서 변별하는 것을 보라!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꺾어버리고 넘어뜨려야 비로소 스님을 감변한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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