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백년대계본부 ‘깨달음과 보살행’ 주제 토론회

탈종교화 따른 종교 신뢰 하락
神 아닌 인간행위에 관심 높아
보살행 강조하는 불교엔 기회
보살원력 가치 대중에 알려야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화합과혁신위원회 기획위원 제4차 토론회.

부처님이 강조한 지혜와 자비로 각각 대변되는 깨달음과 보살행. 국내에서는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돈점논쟁을 비롯해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라는 주장으로 촉발된 깨달음 논쟁까지, 깨달음과 관련된 논쟁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정작 함께 주목받아야 할 보살행은 마치 후순위의 가치인 것처럼 평가되는 경향이 짙은 한국불교에 깨달음 지상주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조계종 백년대계본부(본부장 정념)930일 서울 견지동 전법회관 3층 대회의실서 깨달음과 보살행, 보살행과 깨달음이라는 주제로 화합과혁신위원회 4차 기획위원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는 수많은 수좌들이 선방에서 수행하지만 보살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세간의 목소리에 깨달음이 무엇인지 되짚고,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첫 발제자로 나선 명법 스님(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은 최근 철학에서 논의되는 인간성의 개념에 주목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간과 기계인간의 차이가 모호해지고, 믿음과 신앙이 새롭게 정의되는 현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가치 중 하나가 인간행위라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명법 스님은 신을 전제하지 않는 신앙은 인간행위에 주목한다. 인간행위는 바로 타자를 향한 열린 행위라며 불교에는 보살도에 이 같은 가치가 녹아 있다. 모든 중생을 완전한 열반의 경지로 이끌겠다는 보살도는 타자에 대한 믿음이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깨달음과 보살도는 동전의 양면이고, 서로를 성취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깨달음도 1960년대 전후세대가 주장한 자아중심적 해석이 아니라 보살도를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하다. 승가공동체 복원과 함께 사부대중공동체의 새로운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2016년 초 급부상한 깨달음 논쟁과 관련해 불교에서 깨달음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서 교수는 깨달음은 이해라는 일각의 주장을 부정하면서 깨달음은 불교가 불교여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핵심 가치라고 역설했다.

서 교수는 깨달음을 이해의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종교성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나 학자가 가장 종교적이고, 헌신적 보살행을 해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깨달음의 가치를 <법화경> 화성유품의 화성(化城)에서 찾았다. 화성은 존재하지는 않지만 험난한 역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사막의 신기루 오아시스와 같다. 깨달음에 대한 도달 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깨달음이 있기에 이를 향한 원력을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깨달음은 탈종교화 시대에 버릴 전통이 아니라 오히려 부각해야할 대목이라며 육방예경 교훈처럼 깨달음의 의미를 전환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을 주문했다. 육방예경 교훈은 한 장자의 아들이 의미를 모른 채 부친의 유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서남북과 위아래를 향해 절하는 모습을 부처님이 보고 각 방향의 의미와 윤리를 설한 이야기다.

서 교수는 깨달음 지상주의에 대한 문제는 수행의 양태나 잘못된 수행문화를 고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광덕 스님이 보현행으로 보리 이루리라고 설했던 것처럼 보살행으로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방향의 해석이 한국불교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역시 현재 한국불교가 지나치게 깨달음을 강조한다는 데 공감하면서 현대인들이 종교에 깨달음이나 해탈, 영생보다 개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위로를 바란다는 2014년 대국민여론조사를 제시했다.

고명석 연구원은 모든 존재와 나 자신이 둘이 아님을 이해하고, 이는 모든 존재에 대한 이타행으로써의 보살원력의 길이 된다“<반야심경>에서 언급되는 보살행 그 자체가 한없이 자유롭고 공포도 없는 위없는 깨달음으로 이어지기에 대승불교는 공에 대한 통찰과 이타적 보살행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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