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떠나는 심리적 출가
글쓰기로 떠나는 심리적 출가
  • 김성수 마음과학연구소 대표
  • 승인 2019.09.27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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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습관 살피기와 부모공부

늘 반복되는 특정 언행·행동
알아차릴 때 벗어날 수 있다
부모와 나 빗대 과거 돌아보며
마음의 자립능력 강화시키자

내 습관, 현미경으로 살피기

내가 무심코 하는 언행(言行)은 대체로 역사와 전통이 있다. 노트북을 타이핑할 때 새끼손가락을 절대 쓰지 않거나, 아침에 바지를 입을 때 오른발부터 집어넣기, 젓가락이나 펜을 잡는 위치까지. 이런 동작은 아무리 서둘러도 별로 오차가 없다.

습관은 자신의 무의식이 토스트 기계에서 부지불식간에 튕겨 올라온 식빵 같은 사건이다. 내 안의 게릴라처럼 내면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행동이다. 생명의 최초 메커니즘인 호흡조차도 게릴라처럼 몰래몰래 자동적·습관적으로 출몰한다. 습관은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밤늦은 맥주집에는 술꾼들의 언어 습관, 술 습관, 몸 습관, 생각 습관, 감정 습관들이 난무한다. 순수 무의식의 향연이다. 그들은 했던 말을 또 하고, 똑 같은 반응을 반복하고, 같은 잔에 같은 자세로 같은 양의 술을 따라서 같은 순간에 잔을 부딪치곤 한다.

게슈탈트 심리치료를 개발한 독일의 심리학자 퍼얼스는 인간의 무의식은 물에 떠있는 비치볼처럼 100%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정교한 기계처럼 자동화돼 있고 습관적으로 굴러가는 물질이며, 이미 내면의 무의식이 일상의 언행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동적·습관적 행위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참고로, 사람이 100% 습관적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동물 차원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일까. 퍼얼스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처방책을 내놓는다. ‘알아차림(awareness)’이라는 심리기제가 그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주좌와(行住坐臥)알아차림할 때 신경증적 삶에서 벗어나 건강한 인격으로 생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 MBSR(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프로그램)로 유명한 존 카밧진도 명상에 대하여 탈 자동화 하는 것’ ‘탈 습관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내 습관, 현미경으로 살피기는 이처럼 습관화되고 기계화된 몸과 마음의 메커니즘을 문자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자신의 하루 중에서 생각이나 감정, 행동의 켯속에 배어있는 온갖 습관을 스스로 드러내보자는 제안이다. 습관을 자각(알아차림)’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습관에서 벗어나거나 적어도 그것을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번 깨알같이 적어보자.

- 아침부터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이행했던 자신의 언행, 깨알적기

- 생애 거의 모든 순간에 발동하는 자신의 습관들, 세세히 적어보기

- , 언어, 감정, 생각, 음식, 대화, 시간관리, 잠 등등, 항목을 세분화하여 적어보기

- 일상 속에서 마음이 주로 어디 혹은, 누구에게 가 있는지, 마음의 움직임 발견하기

내 습관, 현미경으로 살피기명상에 가까운 행위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자신이 주로 취하는 태도를 떠올려 적어보는 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자세, 잠에서 덜 깬 몸을 일으켜 어디로 가는지이런 과정을 하나하나 적어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런 반복과 기계적 행위 패턴을 깨뜨려보고 싶지 않은가.

사람과 동물의 차이 중 하나는, 자극에 대한 반응의 시점이다. 동물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외부 자극에 거의 간극 없이 반응한다. 자연상태에서 동물은 배가 고프면 먹으려 들고, 화가 나면 으르렁댄다. 인간은 이러한 습관체를 두고 본능이라는 표현으로 종()의 선을 긋는다. ‘본능습관의 차이가 보이는가. 소위, ‘의미 치료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은 이런 정의를 내린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인간은 그 공간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다.’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공간은 일종의 자극과 반응의 완충 지대다. 이것을 두고 재기발랄한 심리학자들은 반응 유연성’, ‘반응 탄력성이라는 심리용어를 달아준다. 누군가 당신에게 바보새끼!’라고 했다 치자. 당신은 이때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분노심을 지켜볼 것인가. 당신이 후자 쪽이었다면, 그것은 즉각 반응하려는 충동의 주인이었음을 의미한다. 습관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을 지켜봄으로써, 의미 있는 공간 확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내가 무심코 하는 습관 하나하나를 꼼꼼히 주시하며 적어보는 일. 그 일은 곧 자동화, 기계화, 습관화된 나의 삶을 어루만지며 사랑해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부모와 나의 닮은 점, 다른 점

사람에게 부모란 무엇일까. 나를 낳아주고 재워주고 입혀주신 분이라는 식의 관념 발언 생략하고, 곰곰이 되물어보자. 나에게 부모는 뭔가. 선뜻 생각나지 않는다면 적절한 은유를 활용해도 좋다. 강물 같은 존재? 설악산? 바다? 사자? 생각나는 단어 위에 부모의 실루엣을 겹쳐보면 잘 맞는 옷 같을 때도 있다. 때로는 이런 의문에 붙들리기도 한다. ‘, 단도직입적인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 가령, ‘나는 누구인가이런 질문이라면 구체적으로 누구 삼촌, 누구 아들, 누구 동생, 누구 남편하면서 나열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분명한 사실은, 부모는 한때 내 생명의 원천이었다. 우주 자체였고 지붕이었으며, 천둥 번개 속에서도 아늑하고 따스한 둥지였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밀월의 기억은 지우다만 연필자국처럼 희미하다. 내 욕망의 첫 파괴자, 내 분노의 첫 촉진자, 생애 최초의 좌절 유발자, 오염된 사랑의 첫 수혈자, 수치심과 모욕감과 두려움을 가르치면서도 그러한 줄 모르는 무지몽매자.

당신도 그러한가.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 말이다. 없는 셈 치자니 억울한가? 이제 와서 차마 그 옛적 상처들을 들이대는 것이 민망하여 슬그머니 놔버리고 싶지만, 아주 없는 것으로 돌리기에는 내 안팎에 새겨진 상처들이 쉬 나아지지 않는 걸 어떡하나. 생애 첫 줄에 피딱지로 엉겨 붙어 대한민국 헌법 11처럼 내 생애 전체에 드리워져 있는 이 그림자를 어떡하나. 세월이 흘러 이제 나 또한 그 당시 부모만큼 낡고 곰삭은 몸이 됐지만, 내 아이에 대한 자기변명은 뻔뻔해지고 부모에 대한 용서값은 언제나 생애 이전으로 원위치 할는지.

그런데 웬걸! 이런 사연은 삶의 반전일까 아니면, 자연스런 회전일까. 작년에 아흔 살이 되신 어머니는 요즘 들어 당신 아버지 이야기를 심심찮게 꺼내곤 하신다. 외조부 얘기를 꺼내는 어머니의 표정은 아빠 자랑하는 어린 딸의 살짝 상기된 느낌이기도 하고, 진한 비아냥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구순 노인네의 쪼글쪼글한 볼에 피어나는 분홍 미소는 나의 외조부를 지금 옆 자리에 모셔놓은 것처럼 애틋하기도 하다. 나는 그 표정과 언어에서 젖먹이처럼 투명해진 생명을 보는 듯하다. 각도만 잘 맞추면 성게나 고동 따위가 들여다보이는 맑은 바다처럼 싱긋 웃고, 열없어 하고, 히히거리는 구순 노인네의 표정은, 발칙하고 통렬하다. 어머니의 영혼은 전에 없이 투명해졌고, 안팎으로 굴절이 없어졌다. , 당신은 다시 우주나 지붕, 아늑한 둥지, 그 어디쯤을 넘나들고 있나보다.

구순 노인네가 육순 초반에 타계하신 당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엊그제 벌어진 일처럼 실감나게 전개되는 그 이야기는 대부분 동어반복과 중언부언 투성이다. 나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 동안 외조부 이야기가 거의 없었음을 기억한다. 뭐지? 어머니는 구순이 되어서야 당신의 부모공부를 시작하신 것일까. 당신의 헌법 11을 이제야 꺼내드는 이유는 뭘까. 언제해도 해야 할 공부였기 때문이 아닐까.

부모와 나의 닮은 점, 다른 점을 챙겨보자는 의도는 분명하다. 당신의 의식은 모든 순간 부모의 그림자와 겹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부모와 외형이 닮아가는 것에서 당신의 부모는 자신을 기어이 드러낸다. 목소리가 닮거나, 마음 씀이 닮은 것으로 드러낸다. 순간적인 동작이나 얼굴 표정 전체에서 드러낸다.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유사해질 확률도 높다. 이 무슨 조화일까. 간단하다. 당신은 벗어나고 싶은 대상을 반복, 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백곰 실험과도 유사한 원리다. 눈을 감고 남극 대륙의 백곰을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주문에 거듭 노출될수록 백곰을 빈번히 떠올리는 이치와 같다.

굳이 벗어날 의도가 없을 때, 당신의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 당신은 벗어날 힘을 갖춘다. 그런 점에서 부모와 나의 닮은 점, 다른 점을 드러내보는 것은 그 자체로 부모 공부. 문자로 적어서 드러내는 것 자체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결단이다.

-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의 장단점,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장단점을 하나하나 적어보기

- 당신이 딸이면 어머니와 나의 닮은 점·다른 점을, 아들이면 아버지와 나의 닮은 점·다른 점 적어보기

- 내 부모의 생김새, 말투, 태도, 습관, 잘 쓰는 말, 표정, 걸음걸이,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 등을 하나하나 서술하기

- 무심코 하는 나의 말, 행위 등과 겹치는 부모의 말, 행위 등을 떠올려 적어보기

- 내가 흥분할 때 나오는 말과 부모가 흥분했을 때 나오는 말, 적어보기

나와 어머니가 닮았음을, 나는 스스로 잘 알지 못한다. 아들의 음성과 그 아버지의 음성을 구별할 수 없어서 실수했다는 친구를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 취급하는 건 위험하다. 나와 부모, 어느 한 구석 닮은 데가 없다는 믿음은 곧 부모의 정신세계까지 답습하고야 말겠다는 반동적 속다짐일 수 있다.

부모공부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부모의 그늘로부터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존재로 성장하기 어렵다. 생애 첫 호흡과 먹이, 생애 첫 상처와 행복, 생애 첫 울음과 웃음, 생애 첫 기쁨과 두려움. 이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환경이 어디 있을까. 부모는 오늘 당신과 생리적 연결고리로서 실존하는 게 아니다. 그는 오래전에 스쳐간 환상이다. 부모는 당신의 삶 전반에 걸쳐 최초의 체험이 집중돼 있는 근본 조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부모와 나의 닮은 점, 다른 점을 드러내는 것은 나의 근본 조건을 벗어나 삶의 우주를 개척하러 떠나는 심리적 출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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