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명상하다

조안 할리팩스 지음/이성동 김정숙 옮김/민족사 펴냄/1만 5500원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마이애미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하버드 신학교 · 하버드 의과대학 · 조지타운 의과대학 및 여러 학술기관서 죽음과 죽음 과정에 대해 가르침을 준 불교도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조안 할리팩스가 약 50년 동안 임종의 현장에서 일하며 터득한 죽음에 관한 명상의 정수가 담긴 책 〈죽음을 명상하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다. 임종에 직면한 사람과 접촉한 저자의 오랜 경험, 전문 돌봄 집단과 임종자의 가족들에게 가르친 내용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죽음 앞에 용기로 마주한 사람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는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을 주고, 각 장의 끝에 누구나 따라해 볼 수 있는 명상 방법을 제시해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통합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로써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완벽한 우리의 삶에 대해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고마운 책이다.

“Being with Dying: 죽음과 함께하는 삶” 프로젝트
이 순간, 가장 생생히 살기 위해 죽음을 명상하다

어린 딸을 잃은 슬픔으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웁비리라는 여인에게 붓다는 이렇게 설했다. “웁비리여. ‘지바’라는 이름을 가진 8만 4천의 딸들이 장례의 불에 불타고 있다. 당신은 어느 딸을 위해서 울부짖고 있는가?”

붓다는 웁비리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이제 그만 잊고 딸을 놓아주라고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그 대신 웁비리의 개인적 비탄이 고통을 겪는 모든 어머니들에 대한 보편적 연민으로 변화할 수 있는 지점을 보여 준다. 이 책의 저자 조안 할리팩스는 붓다의 이런 가르침에 주목한다. 개인적 상실의 고통은 어떻게 보편적 연민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질문이다. 이것을 마음에 담고 이 책을 읽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고, 소중한 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모든 이들이 인생이라는 동전의 양면인 삶과 죽음의 경험에서 회한과 비통함뿐만 아니라 궁극적 치유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노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는 ‘존엄사’ ‘안락사’의 문제, 즉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은 그런 논의의 결과다. 회생 가능성이 없고 사망에 임박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이 제도는 ‘존엄사법’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많이 변화했다. 의료 시스템에 모든 걸 내맡겨 버리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이들도 많아졌다.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할 때다.

죽음. 평범한 삶을 무너뜨리는 시한부 선고,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죽음, 끔직한 사고, 자살……. 우리에게 죽음은 늘 괴로움과 동일시된다. 또 죽음을 삶의 패배, 극복해야 할 질병, 물리쳐야 할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죽음이라는 생생한 진실을 부인하고, 죽음이 주는 성찰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 자신은 절대 죽을 리가 없다고 느끼고 행동한다. 대부분이 자신의 죽음은 물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도울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조안 할리팩스는 불교도, 의료인류학자로서 약 50년간 임종의 현장에서 일하며 죽음과 삶의 문제를 화두로 삼으며 수행해 왔다. 그녀는 죽음과 삶을 분리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죽음과 함께하는 삶(Being with Dying)’의 가치를 되새긴다.

“죽음을 부정하는 것은 바로 삶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반드시 괴로움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자연스러운 통과의례이고, 인생의 완성이며, 심지어 궁극적인 해방이라고 여기면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고 수행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죽음을 하나의 통과의례로 보자고 제안한다. 죽음 없는 삶은 없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언젠가 죽는다. 또 죽음은 들이마시고 내쉬는 이 한 호흡 속에, 매순간 생성 소멸하는 세포의 삶 속에 현현한다.

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다. 죽음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죽음을 연습하라”고 했고, 중세 유럽의 기독교 수도승들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잊지 말라)”를 가슴에 새겼다. 불교 경전에서는 “모든 명상 중에서 최고의 것은 죽음 명상이다”라고 했고, 무상과 무아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거의 50년 전, 저자가 말기 치료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그녀가 목격한 미국식 ‘좋은 죽음’이란 그저 소독과 약 그리고 각종 의료기기가 구비된 병원 시설과 연계되어 있는 ‘제도화된 죽음’일 뿐이었다. 저자는 이런 제도화된 죽음에서 결여된 것이 바로 연민과 지혜라고 보았다.

그리고 연민과 지혜의 힘을 키우는 과정이 바로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명상 수행을 제안한다. 그 모든 과정의 시작점에서 염두에 둘 것은 바로 죽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 고독, 수치심과 죄책감을 덜어내는 일이다. “제가 계속해서 염려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임종에 직면한 본인이 주변화되는 것, 그리고 임종자가 체험하는 두려움과 고독, 또 죽음의 파도가 삶을 덮칠 때 의사와 간호사, 임종자와 가족이 느끼는 수치심과 죄책감이었습니다.”

임종 과정서 소외되고 두려움과 고독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임종자, 그리고 임종자를 죽음이라는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내지 못했다는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의료진과 임종자의 가족. 이 책에서는 죽음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또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이들이 죽음의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 지침과 실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임종에 직면한 사람과 접촉한 저자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책의 내용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생생하다.

명상 수행은 특별한 정신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곤하고, 화나고, 무섭고, 슬프고, 또한 단순한 저항감과 하고 싶지 않은 기분 등 이 모든 것과 함께 있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 일어나도 상관없다. 다만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뿐이다.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임종, 사망, 돌봄, 애도에 대처하는 필수적인 토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힘을 키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명상 수행이다. 무상의 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명상, 다른 말로 삶에 대한 명상이다. 이를 통해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 완벽한 이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죽음을 명상하는 세 가지 지침

이 책에서는 죽음을 명상하는 세 가지 중요한 지침으로 “알지 못한다는 것(not-knowing)을 알기” “가만히 지켜보기(bearing witness)” “연민에 가득 찬 행동(compassionate action)”을 제시한다. 이 세가지 실천적 지침들은 임종에 직면한 사람, 사랑하는 이를 잃고 비탄에 잠겨 있는 사람, 돌봄을 제공하는 의료인과 의료관계자들과 함께한 저자의 50년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고, 여전히 누군가의 임종의 순간을 같이 할 때 저자의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주고 있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서, 이 세 가지 지침이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어떻게 수행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①‘알지 못한다는 것(not-knowing)’을 알기

“임종과 함께하는 여행”의 시작 단계에 필요한 지침이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선고 받고, 전쟁이나 총기 사고 등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 죽음은 기존의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 ‘지도에 없는 땅’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단계에서는 ‘죽음은 어떻게 느껴질까? 괴로운 것일까? 혼자가 되는 것일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가 없어지면, 나를 그리워할까? 죽음은 고통스러운 걸까? 죽은 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등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질문들이 싹을 틔운다.

②‘가만히 지켜보기(bearing witness)’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문턱을 넘어설 때의 지침이다.

이때까지 버팀목이 되어 주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이 단계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내려놓는 것,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이것은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것과 함께 하고, 죽음의 과정이 자유롭게 일어나는 불가피한 과정을 받아들인다. 자신을 현실에 맡기고, 죽음의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잘 죽어야 된다는 생각조차 포기하고,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알아차리면서 가만히 지켜보는 일.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를 넘어서는 힘을 얻는다.

③‘연민에 가득 찬 행동(compassionate action)’

임종의 세 번째 단계이자 최종 단계는 죽음과 직접 맞닥뜨리는 경험이다. 죽음으로 가는 사람과 그 사람을 보살피고 떠나보낸 후 애도의 과정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 이는 치유 경험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는 심신 모두의 걱정거리와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음으로써 치유를 경험하고, 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은 상실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성숙해짐으로써 치유를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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