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값이 올라가겠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연일 전해지니 사람들은 돼지고기값 폭등을 우려한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살처분으로 돼지의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 폭등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의 지극히 당연한 걱정이긴 하지만 돼지의 입장에서는 치사율 100%의 병이 퍼지고 있는 것이니 생명이 달린 문제이고, 돼지농가의 입장에서는 애써 길러온 돼지를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절박한 처지다.

동물 전염병이 확산될 때면 방역 대책으로 나오는 살처분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무척 살벌하다. 광우병과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도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수많은 소와 돼지가 살처분 됐다.

살처분은 당하는 동물만큼이나 그 현장을 지켜봐야 하는 공무원, 수의사 등 사람에게도 고통을 준다. 사체를 묻거나 또는 살아있는 생명이 묻히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정신적 고통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심각하다. 또한 구덩이를 파고 비닐을 깔고 묻는 일반 매몰 방식을 취하면서 살처분으로 인한 매몰지 오염도 피할 수 없다.

2017년 자료에 의하면 가축 매몰지 오염에 비상이 걸렸다. 전국에는 4500여 곳에 이르는 매몰지가 있다. 그 중의 수많은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되기도 하고 미처 분해되지 않는 사체 일부가 땅밖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토양이 검게 썩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염병은 막았지만 살처분은 토양·수질 오염 등의 환경 문제를 야기하면서 또 다른 환경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3년이면 자연분해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매몰지 관리 기준을 3년으로 정해 놓았지만 규정보다 많은 돼지를 묻었기 때문에 분해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 문제는 더욱 장기화 되고 있다. 추가 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침출수를 빼내는 오염방지 시설도 갖추어야 하고 미생물을 활용한 자연 발효나 사체 소각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실행이 쉽지 않다고 한다.

급속도로 퍼지는 동물 전염병이 돌 때마다 엄청난 수의 생명을 매장하면서 어쩌면 우리의 생명 가치도 함께 묻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물 전염병 발병 원인이 축약식 축산에서 기인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가장 축약적인 축산환경이다. 게다가 극단적 이윤 추구를 위해 사료비를 낮추기 위해 오염된 음식물을 사료로 이용하면서 광우병, 구제역이 생긴 것만 봐도 이윤 추구만을 쫓아가는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제 2, 3의 광우병 발생 가능성을 안고 사는 셈이다.

동물 복지를 무시한 축산 방식이 전염병을 불러오고 그 전염병을 막기 위해 또 다시 동물 복지를 무시한 살처분이라는 대책으로 일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돼지들을 묻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이제라도 동불 복지를 고려한 축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동물 백신 개발, 방역 확대 등 전염병 예방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먹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을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끝없는 욕심이 있는 한, 축산 동물을 먹이로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있는 한, 무분별한 살처분은 계속될 것이고 이는 우리가 예기치 못하는 환경 피해로 돌아올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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