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사회 뒤흔든 조국 장관 문제
정의론 다시 생각해 볼 계기돼

현대 정의론, 계몽주의와 연결
완전한 정의·제도 구축에 초점
한국 주류 정의론 밀접히 관계

센의 ‘연기적 정의이론’에 주목을
완벽한 정의·제도, 현실상 불가능
실현가능 선택 속 不正義 줄여야
연기적 현실서 실천적 정의 탐구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의 청문회에서 표출된 일련의 과정은 이 땅의 사람들을 열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법무장관에 임명된 후에도 열병은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 이슈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친구도 거침이 없어졌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라고 하면서.

매스컴들은 조국 열병의 원인과 처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개인의 도덕성과 가치관에 중점을 둔 개인 윤리적 차원과 사회구조와 제도의 도덕성에 관심을 가진 사회 윤리적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지금 한국의 집권 세력은 정의의 아이콘으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였고 정의의 레토릭으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앙에 조국 장관이 있었다. 조국 장관 청문회의 과정에서 정의는 특정집단과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고, 동시에 조롱과 냉소의 대상으로 되고 말았다. 그것이 왜곡된 것이라 하더라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정의는 인류 관념사에 제일 큰 주제이다. 오늘날의 현대 정의론은 유럽 계몽주의의 전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전통은 완전한 정의와 공정한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존 롤스의 정의론이다. 한국에서의 주류 정의론도 이 틀에 서 있다.

하지만, 필자는 유럽 계몽주의의 전통에서 비켜서서 비서구사회 특히 인도와 타 지역의 지성사에서 나온 광범위한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는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정의이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센은 인도 출신으로 불평등과 빈곤연구의 대가이자 후생경제학의 거목으로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산스크리트어에 해박하며 십대부터 붓다의 지혜에 매료되어 자신의 정의이론에 접목시키고 있다.

센은 완전한 정의와 완벽한 제도에만 골몰하는 주류 정의이론을 실제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 가상의 이론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성향을 가질 위험성을 지적한다. 그는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여 가치판단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교접근을 통해 부정의를 제거해 가는 실천적 방식으로 정의를 촉진하자고 제안한다.

센에 의하면 정의를 정의하는 기준은 다원적일 수밖에 없으며 부정의를 제거하고 방지할 완전한 제도의 구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완벽한 정의를 추구하기보다는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며 실현가능한 선택지들을 비교하면서 부정의를 줄여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라 주장한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 세계에서 무엇이 완전한 정의이고 무엇이 완벽히 공정한 제도인지 판별하는 이론은 필요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주류 정의론에서는 계속 아트만(Atman)을 찾고 있고, 그 아트만은 정치적 깃발로 기능할 것이다. 센의 정의론에서는 아트만이 없다. 제행무상의 연기적 현실 속에서 실천적인 정의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센의 이론은 기존의 편협한 이론을 대체해야 할 실천적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필자는 센의 최근 저서 <정의의 아이디어(The Idea of Justice)>를 읽으면서 센의 정의론을 연기적 정의론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센은 왜 우리는 밤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우리가 밤잠을 설치며 고민할 때 정의의 실현이 가까이 다가온다고 절규한다. 정의는 결코 점령해야 할 고지가 아니라 이 대지에서 실현할 과제이다. 정의는 어느 집단이나 계층의 독점물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할 대상이다. 그래서 정의는 바른 민주주의에서 자란다. 밤잠 설치며 고뇌하는 정의론자가 이 땅의 정치판에 있기는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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