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덕(71·포교사단 부산지역단 자문위원)

심재덕 포교사는… 1995년 2월 조계사불교대학을 수료하고 포교사 품수를 받았다. 이후 부산 천마재활원에서 포교활동을 이어왔으며 부산·경남지역단 청소년천마팀장, 부산·경남지역단 감사, 부산·경남지역단 국장을 거쳐 포교사단 중앙임원 및 부산·경남지역단장을 역임했다. 2012년에는 포교사단 부단장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부산지역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상은 조계종 포교원장 표창장을 두 차례 받았으며 통일부 장관 표창장, 부산 시장 표창장, 중소기업 중앙회 표창장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8월 조계종 포교사단 제17회 팔재계 수계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상을 수상했다.

불연공부수행
어릴 적부터 조모와 함께 신행
성인 돼서도 불교적 삶 유지
1993년 조계사불교대학 입학
부산서 서울 오가며 불교 공부
2년 과정 수료 1기 포교사 품수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법을 펼치지 않고 바로 열반에 들었다면 오늘날 불교는 존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불교는 부처님이 성도했을 때가 아니라 초전법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을 첫 포교라고 본다면 포교가 불교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포교는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자 불교를 지탱하는 근본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포교는 승속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할 가장 적극적인 신행이다. 부처님의 전도선언이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부처님의 전도선언을 평생의 원력으로 살고 있는 이가 있다. 심재덕 포교사단 부산지역단 자문위원이다. 심 위원은 부처님의 말씀을 만나 행복했고, 자신이 느낀 행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포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지적장애인 포교와 수계법회를 여는 등 불법을 가까이 하기 어려운 곳을 찾아 전법을 실천해왔다. 산술적인 성과보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고루 전해지기를 바라며 살아온 포교사 심재덕의 포교사 인생은 어느덧 20년 세월을 훌쩍 넘겼다. 쉼 없는 그의 길을 조명한다.

 

불연, 포교사가 되다

심 위원은 어렸을 때부터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어깨에 쌀자루를 지고 산을 넘었다. 경남 고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운흥사에 공양미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심 위원은 할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운흥사 도량에 들어서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졌다. 향냄새와 목탁소리가 좋았고, 부처님의 품 안에 안긴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심 위원은 자신이 불공의 덕으로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심 위원의 집안은 대대로 손이 귀한 집안이었다. 심 위원은 심 위원의 부모가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린 후에 얻은 아들이었다.

부처님에 대한 인연은 자연스럽게 심 위원의 삶 속에 스며들었고, 삶의 중심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룬 후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늘 그의 삶 속엔 부처님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심 위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 더 깊이 배우고 싶었고 바르게 믿고 싶어졌다.

그렇게 공부에 대한 갈증을 안고 살아가던 심 위원은 1993년 어느 날 신문 광고를 통해 서울 조계사 불교대학 수강생 모집광고를 보게 됐다. 통신반으로 운영되는 강좌여서 부산에 사는 심 위원에게도 수강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바로 서울로 올라가 조계사 불교대학 수강신청을 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서울로 올라가 강의 교재테이프를 받아 내려왔다. 그리고 받아온 교재를 통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1993년 조계사불교대학 통신반 2년 과정을 수료했고, 수료 후 포교사 1기가 됐다. 심 위원은 자신이 포교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심 위원은 포교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진리인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사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고귀합니까? 출가는 하지 못했어도 재가자가 부처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스님들이 법을 잘 펴시도록 돕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제 삶이 다하는 날 까지 포교사로 살아 갈 이유입니다

심 위원은 조계사불교대학 2년 과정을 수료한 후 바로 부산 범어사에서 포교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심 위원은 지난 8월 24일에서 25일까지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에서 봉행된 조계종 포교사단 제17회 팔재계 수계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상을 수상했다.

지혜·자비 겸수해야 참불자수행·포교 매진


포교사의 길
범어사·포교사회서 활동 시작
2013년 조계종 재가자 선혜품수
2009년 부산·경남지역단장 취임
2012년 조계종 포교사단 부단장
1996년 천마재활원 포교 나서
매일 아침·저녁예불 하루일과
2019년 조계종 총무원장상 수상

심재덕 위원은 2009 부산·경남지역단 단장으로 취임했다.

쉼 없는 공부, 지역단장이 되다

심 위원은 1999년 조계종 포교사단이 정식 창립하기 전인 1995년 포교사들의 모임인 포교사회서 활동을 시작했다. 범어사로 무작정 나선 심 위원은 범어사에서 당시 포교국장이었던 지종 스님을 만났다. 지종 스님이 심 위원에게 먼저 이야기한 것은 포교와 수행에 관한 일지였다.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었다. 수행으로 삶을 다듬는 것이 먼저였다. 심 위원은 공부할 도량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법회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포교사로서 갖추어야할 소양을 쌓으며 포교사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심 위원은 이후에도 공부를 계속 이어갔다. 포교사로서의 역할을 보다 충실히 하기 위해서였다. 1회 포교사전문화교육이수, 포교사전문화교육청소년교육과정이수, 동국대학교물교문화대학원 불교학 전공 석사, 부교문화해설분야 전문포교사품수, 고심정사 불교대학 경전반 공부 등 심 위원은 쉼 없이 공부했다. 이후 201312월에는 조계종 재가자 최고 지도자 단계인 선혜품수를 받았다.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포교사가 일반인 보다 모르는 내용이 많아서야 되겠습니까? 물론 아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배워서는 안 됩니다. 더 좋은 지혜로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 법을 알려주기 위해 부족함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심하되 지혜로워야 합니다.”

꾸준한 공부와 활동으로 단원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심 위원은 조계종포교원 포교사단 중앙임원을 역임하고 2009년 부산·경남지역단(이후 경남지역단 분리)의 단장으로 취임한다. 당시 행정적으로 다소 혼란스러움 속에 있었던 조직의 수장을 맡은 심 위원은 원칙과 소신으로 조직을 정비했다. 심 위원은 2011년까지 부산·경남지역단을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에는 조계종 포교사단 부단장을 맡아 포교 일선에서 활동하며 포교사들의 활동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일선 포교사들을 위한 지원에도 최선을 다했다.

천마재활원에서 포교하는 심 위원.

장애인 등 포교 불모지 개척

불자는 지혜와 자비,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고 했다. 심 위원은 지혜를 위한 배움의 길을 쉬지 않으면서 자비행에 바탕을 둔 포교활동을 이어갔다. 심 위원은 1995년 조계종 포교사 품수를 받으면서 다음해인 19962월부터 지적장애인을 위한 천마재활원에서 포교활동을 이어갔다. 심 위원은 정식으로 포교사 활동을 하기 전부터 지역 봉사팀에서 활동했고 자주 방문했던 천마재활원에서 장애인들에게 특히 지적 장애인에게도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천마재활원에서 평소 봉사를 한 것도 있어 인연이 되었는데,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그 아이들이 반야심경을 줄줄 외웠다는 겁니다. 지능은 일반인과 다소 차이가 있어 생활에 어려움이 다소 있기는 했지만 부처님 말씀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면 그들도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고 그래서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포교하는 일보다 수십 배의 노력이 더 필요했다. 가장 간단한 합장부터 절하기까지, 법회는 쉽지 않았다. 심 위원이 배우고 익힌 것을 조금도 풀어낼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심 위원은 괜찮다고 했다. 불법을 전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이었지만 심 위원은 그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읽어주고 미소 지어주며 친구가 되었다. 손을 잡아 주며 그들과 한 마음이 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부처님의 법은 어느 곳에서나 고루 전해져야 한다고 그는 믿었고, 그런 그는 포교사로서 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종교 활동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원생들을 강압적으로 불러 모은다거나 억지로 듣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법회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몰려옵니다. 원생이 48명인데 40여 명이 법회를 찾습니다. 지난 6월에는 원생들을 위한 수계법회를 봉행했습니다. 범어사 포교국장인 효산 스님과 포교사단들이 수계법회를 하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계의 삶을 아이들이 지켜나가고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일반인보다 행복한 삶입니다.”

현재 심 위원은 고려일진이라는 자동차 부품 회사의 사장이다. 부산인적자원개발원의 부산형 착한기업에 선정되기까지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둘이서 부품을 조립했던 창립 시기에서 현재 20여 명의 직원이 일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심 위원은 천마재활원에 있는 장애인을 위해 직업재활 훈련소로 공장을 내어주기도 했다.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고 회사로 오는 법부터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법회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자립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직업재활훈련을 하면 바리스타부터 도자기 만들기까지 많은 훈련을 합니다. 불자로 안전하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제가 가진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 위원은 그들을 위해 사회복지가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포교뿐 아니라 능숙하게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중의학도 전공했다. 아프고 병들고 약한 사람들, 특히 장애인들이 부처님을 찾을 때 약사여래불과 같은 마음으로 치료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중소기업의 대표이자 포교사로 바쁘게 생활하는 그는 이 모든 활동의 원동력은 부처님을 닮고자 하는 수행시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아침 540분이면 심 위원은 일어나 부처님을 예경하는 예불로 하루를 시작한다. 참선과 함께 불자로서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후 7시에서 8시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예불을 올리며 하루를 점검한다. 7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온 수행이다. 회사 집무실에는 틈틈이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도 마련되어 있다.

신행수행은 모든 활동의 중심입니다. 저를 바로 잡고 살아갈 수 있게 하며, 더 나은 불자가 되도록 하지요. 저는 성격이 급하고 화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내면을 부처님 앞에서 비추고 하심하면서 참회하는 생활이 중심이 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을 해 낼 수가 없었을 겁니다.”

심 위원은 포교를 위해선 지혜를 갖추고 자비심으로 활동하는 신행생활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포교는 삶, 발자국이 되다

심 위원은 지난 824일에서 25일까지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에서 봉행된 조계종 포교사단 제17회 팔재계 수계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실천하고 화합하는 포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배 포교사들에게 남기는 당부였다.

신년법회 모습

포교사의 길은 무주상보시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건 불법의 가치를 알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죠. 좋아서 배우게 되고 배우면 나누고 싶고 나누기 위해 실천하는 삶이 곧 포교입니다. 포교사에게 포교는 곧 삶입니다. 수행으로 하루를 살고 미소 하나만으로도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1기 포교사로 첫발을 내디뎠었던 선배 포교사는 기본을 강조했다. ‘포교사라는 단어 하나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은 그는 수많은 후배들이 뒤따라야 할 발자국이 됐다.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이유라고 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또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중생들의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세상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떠나라. 둘이 함께 같은 길을 가지 마라.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바른 뜻과 문장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여라. 완전하고도 청정한 수행의 삶을 보여주어라.”

부처님의 전도선언(傳道宣言)이다. 바로 포교사의 삶이자 목표이다. 심 위원이 고요하게 걸어온 길이다. 모두가 함께 가야 할 길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