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즉심시불(卽心是佛)

즉심시불(卽心是佛)은 ‘마음이 곧바로 부처(卽心是佛)’라는 뜻이다. 선불교를 상징하는 유명한 사자성어로서, 글자 순서를 바꾸어서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고도 많이 쓴다. 동의어로는 ‘즉심즉불(卽心卽佛, 마음 그 자체가 그대도 부처)’, ‘즉심시불(卽心是佛, 마음 그대로가 바로 부처), ‘시심즉불(是心卽佛, 이 마음이 곧 부처)’, ‘시심시불(是心是佛, 이 마음 이것이 바로 부처)’ 등이 있다.

스님들의 법문에서 ‘이 마음이 곧 부처(즉심시불, 심즉시불)’라는 말씀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부처(佛)’란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경배하는 부처님이나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 또는 역사상 실존했던 붓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대명사로서 ‘부처’를 가리킨다.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나 인격화된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불교적 진리의 대명사로서 ‘부처’이다.

‘그대의 마음’, 또는 ‘그대의 마음 그 자체가 바로 부처’라는 뜻인데, 각도를 바꾸어 설명한다면 ‘본래 청정했던 그 마음(불성)을 되찾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탐진치 등 세속에 오염되어 있는 청정한 마음(불성)을 복원, 회복시키는 것, 그것이 곧 니르바나의 길이고, 깨달음의 길이고, 불교적 인격, 인간상을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

마음이라고 하는 존재는 참선수행 등 모든 수행에서 핵심적인 주제이다. 그런데 막상 ‘마음이 부처’라고 하여 그 마음을 찾으려고 보니 막연하기가 이를 데 없다. 마음속에 무엇을 찾고 무엇을 깨달으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설마 육체 속에 마음은 어디쯤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그런 것을 찾으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이 곧 부처(진리)다’, ‘마음을 찾으라’ 또는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 속에는 대략 두 가지 정도의 뜻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본래 깨끗한 마음(본래청정심, 불성, 진여심)을 찾으라는 뜻이고(이것이 본의임), 다음은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번뇌심, 탐진치, 분노와 증오 등 희로애락에 매달려 있는 그 마음을 반조해 보라는 뜻이다. ‘번뇌가 곧 보리(진리)’라고 유마경에서 설한 바와 같이, 자신의 치성한 그 마음을 반조하다보면 실체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수행했는데, 막상 ‘분노’, ‘화’, ‘욕망’ 등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런 수행은 인생에서 경제적, 시간적으로 낭비이다. 수행이란 결국 ‘마음 다스리기’이고, ‘분노나 화 다스리기’인데, 소소한 일에도 화를 내면서 자신의 마음도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런 수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 예로 오늘날 환경오염, 대기오염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모든 국가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사회 이후 점점 증가하고 있는 환경 파괴와 오염은 지구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글로벌 사회는 환경오염을 막고 오염되기 이전의 상태(청정)로 돌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불성,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마음’을 진여, 또는 ‘진여 일심’, ‘진심’, ‘직심(直心)’이라고 하고, 화엄에서는 ‘법신’, ‘법성’ 등으로 표현한다, 표현만 다를 뿐 모두가 동의어인데, 우리가 진정으로 깨달아야 테마는 그대의 마음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청정한 마음, 곧 불성을 깨닫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즉심즉불, 즉심시불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이다.

한 납자(스님, 수행승)가 마조선사에게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째서 즉심즉불을 설합니까.” 마조선사가 말했다.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는 것이다.” 젊은 납자가 물었다. “울음을 그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설하시렵니까.” 마조선사가 말했다. “비심비불(非心非佛,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이니라.”

마조선사는 항상 ‘이 마음이 곧 부처’라고 설했는데, 그 뒤의 문제를 거론하자 이제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한 것이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왜일까? 마음을 찾는데 너무 집착할까 염려해서다.

또 어느 날 대매법상이 마조선사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즉심시불이다.”

‘그대의 마음이 곧 진리(부처)’이므로 부질없이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그대의 마음에서 찾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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