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이해의 길 13

“손님, 삶이 고통입니다.”

적지 않은 치아를 뽑고 임플란트를 심을 때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치과의사가 한 말이다. 이러한 육체적 고통도 힘들지만, 마음의 고통은 훨씬 더 심하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경전에는 아들을 잃고 괴로워하는 키사 고타미라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붓다에게 찾아와 자신의 아들을 살려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며 애원했다. 그때 붓다는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집에서 겨자씨 한 톨을 얻어오면 아들을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여러 집을 돌아다녔지만,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붓다는 왜 그녀에게 무모하게 보이는 처방을 내렸을까?

사성제의 두 번째는 집성제(集聖諦)다. 이는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인데, 어떤 요인들이 모여서(集) 고통을 낳는지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갈애(渴愛)나 탐진치(貪嗔痴) 삼독(三毒)으로 설명한다. 갈애는 목이 마를 때 물을 찾는 것과 같은 타오르는 욕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삼독이란 무엇인가를 욕심(貪)내는데, 그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화(嗔)를 내며 어리석은(痴) 인간의 모습을 가리킨다. 그런데 갈애와 삼독도 집착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집착으로 인해서 괴로움이 발생한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집착이 일어나는 구조를 이해하면, 이를 현실적으로 극복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집착은 마음속 생각과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에 발생한다. 특히 그 대상이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클수록 집착은 더욱 강해진다. 예컨대 주식투자로 큰돈을 잃었다고 해보자. 돈을 날려버린 현실을 쿨하게 인정하려고 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투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더욱 더 돈에 집착하게 된다. 현실엔 돈이 없는데, 마음속에는 잃어버린 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과 생각 사이의 괴리가 집착을 낳고 집착이 괴로움을 낳는 것이다.

돈을 날려도 이렇게 괴로운데,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키사 고타미에게 있어서 아들은 삶의 전부였다. 그런 아들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어떤 것도 그녀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붓다는 냉정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오라는 것이었다.

붓다는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붓다는 여인의 고통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었다. 물론 여인의 고통은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붓다가 본 것은 여인의 마음이었다. 현실에서는 아들이 죽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직 살아있는 엄청난 괴리를 붓다는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는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즉 죽은 아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으로 아들을 보내주어야만 고통도 끝나는 법이다.

이처럼 생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집착을 낳고 이는 우리들 삶에 참을 수 없는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현재를 있는 그대로 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 속에 자신을 가두면서 괴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해봤던 사람이 수없이 떨어지면서도 계속 선거에 나오는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다. 현실은 국회의원이 아니지만, 마음속엔 국회의원의 기억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줄이지 않는 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간극을 줄일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마음이 현실을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이 마음을 따라가는 일이다. 전자가 행복의 길이라면, 후자는 고통의 길이다. 앞의 길이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처방을 내리는 경우라면, 뒤의 길은 지금 당장의 고통만을 면하게 해주는 진통제일 뿐이다. 그 이유가 다음 호에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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