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전도몽상(顚倒夢想)

‘전도몽상(顚倒夢想)’은 〈반야심경〉에 있는 사자성어다. 중생들의 생각은 매우 잘못 되어서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하고 거꾸로 보고 있으며, 또 몽상(夢想)에 불과한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명구는 중생들의 자존심을 다소 자극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자존심을 건드려서 분발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글자 풀이부터 하고자 한다. ‘전도(顚倒)’는 ‘위치나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뒤바뀌어져 있다’는 뜻이고, ‘몽상(夢想)’은 ‘꿈같은 헛된 생각’,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 즉 모든 존재와 사물, 그리고 현상은 공(空)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은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실존하는 것,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 속에는 ‘정신을 좀 차려라’, 또는 ‘현실(공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지금 눈에 보이는 갖가지 현상과 현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모두가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임시적인 것, 가상적인 것, 즉 ‘가유(假有)’라고 한다. 현상은 ‘참(眞)’이 아니고 ‘망(妄, 허망한 것, 영원한 것이 아닌 것)’으로서, 언젠가는 부서지고 무너지고, 죽게 되고, 사라지게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참이 아닌 허망한 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반야심경〉은 불교에서 가장 많이 독송하는 경전이다. 아침저녁 예불이나 법회 등 행사 때 독송하는 짧은 경전인데, 그 의미는 매우 심오하고 넓어서 반야심경을 100% 이해한다면 공부를 상당히 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반야심경〉은 반야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경전이다. 자신은 바른길을 가고 있다고 하지만, 법안(法眼)을 갖춘 사람의 눈으로 보면 엉뚱한 비불교적인 수행, 사이비 수행을 하고 있고, 결과적으로는 많은 시간과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또 어리석으면 자신이 본 것을 최고라고 여겨서 고집불통이 된다.

〈반야심경〉에는 “대승의 보살도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거하기 때문에 마음에 집착과 구속됨이 없고, 집착과 구속됨이 없기 때문에 공포심(恐怖, 두려움)이 없다.

이 반야바라밀다(반야 지혜)의 지혜는 잘못된 생각, 뒤바뀐 생각, 몽상 같은 생각들을 멀리 물리치게 하며, 끝내는 니르바나(열반)를 성취하게 한다. 그리고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반야지혜, 공)를 의지하기 때문에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 삼약삼보리를 얻는다(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고 하여, 반야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생은 커다란 전도몽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분명히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일인 줄 알면서도 욕망에 눈이 멀어 ‘설마’하면서, 또는 요행을 바라면서 강행한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좀 통제할 줄 알아서 조금 덜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실수와 실패로 끝없이 인생을 반복한다,

그런데도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정견(正見, 바른 견해)이다. 정견은 팔정도의 하나로서 안목, 또는 정확하고 명석한 견해, 혹은 판단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선에서는 ‘정안(正眼)’,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고 한다. 임제록에서는 ‘진정 견해(眞正見解, 참으로 바른 견해)’라고 한다.

정견은 쉽게 설명하면 ‘안목(眼目)’ ‘바른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보는 바른 눈’인데, 안목이 없으면 ‘참(眞, 진실)’이 아닌 것을 ‘참’으로 오판한다. ‘참’과 ‘참’이 아닌 것은 부처님 말씀이나 경전, 또는 〈임제록〉 같은 선어록에 기준하면 된다. 잘못된 지식이나 생각에 빠지면 결국 진실에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오판하는 일이 적지 않다. 누구나 돌이켜 보면 “과신, 고집(주장), 환상, 자기 착각, 에고 등으로 오판만 하지 않았어도 이보다는 잘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는 불교출판을 하고 있는데 그간 여러 차례 오판을 했다. 그 결과 많은 고생을 했는데, 인생도 마찬가지다.

오판을 하게 되는 이유는 욕심, 욕망 때문이다. 욕심이 시야를 가려서 판단을 흐리게 한다. 오판을 자주 하면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가 끝나게 된다. 마음을 비우면 비교적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된다.

수행도 마찬가지인데, 특효약은 정안(正眼) 밖에 없다. 각자 정안, 안목, 정법안을 갖추는 것이 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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